일본의 ‘스파이’ 활동은 공공연한 비밀
  • 이지호│일본 통신원 (.)
  • 승인 2015.10.22 14:10
  • 호수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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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전문 저널리스트 K씨의 단독 증언 “日 공안으로부터 ‘北 정보 제공해달라’ 제안 받아”

일본인 4명이 최근 수개월간 잇달아 중국에서 구속되어 현재 수감 중이다. 이들은 간첩 혐의를 받고 있다. 중·일 양국의 역사 및 영토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화하는 가운데, 일본인의 중국 내 장기 구속 사태는 양국 간 갈등의 또 다른 불씨가 되고 있다.

지난 9월30일 아사히(朝日)신문은 일본인 남성 2명이 스파이 혐의로 중국에서 구속됐다고 보도했다. 간첩 문제가 일본에서 세간에 드러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보도는 중·일 양국 정부에 의해 사실로 확인됐다.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오후 정례 브리핑을 하면서 아사히신문의 보도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지난 5월, 2명의 일본인이 중국 랴오닝성(遼寧省)과 저장성(浙江省)에서 중국 당국에 의해 구속됐으며, 같은 달 일본 정부가 이 같은 사실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스가 장관은 “그 이상의 상세한 정보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그는 “민간인 및 자국민 보호의 관점에서 일본의 재외공관이 이들을 적절히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중국 공안 요원들이 단속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日 공안의 韓·中 정보 수집 역사는 오래”

중국 외교부의 훙레이(洪磊) 대변인도 공식적으로 “스파이 행위를 한 혐의로 일본인 2명을 체포했다. 그 사실은 이미 일본 측에 전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수개월 동안 일본인을 구금한 이유에 대해 “중국 법률에 따른 것”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중국이 스파이 행위 때문에 일본인을 체포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일본 정부는 중국에 스파이를 보낸 사실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다. 스가 장관은 이날 “우리나라는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이는 모든 나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과연 이들은 중국 당국이 발표한 것처럼 일본 ‘공안조사청’이 보낸 스파이가 맞는 것일까. 아니면 일본의 주장대로 평범한 민간인의 개인적 취미 활동에 불과한 것일까.

일본 정부의 “일본은 스파이를 보내지 않는다”는 주장과는 달리, 일본의 첩보 활동은 사실 공공연한 비밀에 속한다. 시사저널은 일본에 거주하는 한 북한 전문 저널리스트 K씨로부터 이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증언을 들었다. K씨는 취재차 중국을 자주 방문하곤 했다. 그런 그에게 달콤한 유혹이 들어왔다. 일본 공안 관계자로부터 “필요한 만큼 금전적인 지원을 보장해줄 테니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달라”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이 같은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이런 제안을 받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이 같은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K씨의 증언이다.

“일본 공안 당국이 남북한과 중국 등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그 역사가 오래됐습니다. 정보 수집 활동은 국가 차원에서 어느 나라나 다 하는 거죠. 다만 그 활동이 합법적으로 공인된 것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범법 혐의가 구분되는 거죠. 남북한이나 중국 같은 경우는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나 정치·외교적으로 매우 민감한 나라이다 보니 고급 정보뿐만 아니라 전 방위적인 정보가 필요했을 겁니다. 한국인에게도 과거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정치적으로 망명 혹은 피신해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이런 정보 수집을 하게 한 전력이 있습니다. 물론 그 대가로 그런 사람들은 일본에서의 생활을 비교적 안락하게 할 수 있었죠. 지금은 중국과의 관계가 예민하다 보니 좀 더 적극적으로 민간인들에게 그런 정보 수집을 부탁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구속 중인 일본인 가운데 2명은 일본 공안조사청의 의뢰를 받고 중국 군사 정보나 북한의 동향 정보를 수집해왔다고 중국 당국의 심문에서 시인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가 “그들은 스파이가 아니라 민간인”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또 중국 측이 스파이 혐의를 적용하는 것도 모두 자연스럽게 설명되는 셈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9월30일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인의 중국 구속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 ⓒ AP연합

“국익 위해서라면” 일본 언론도 침묵

문제는 자국민 보호라면 아베 총리 주재로 비상대책회의를 열 만큼 적극적이었던 일본 정부가, 지금의 간첩 혐의 구속자에 대해서는 애써 쉬쉬하며 지나치게 소극적인 대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체포된 일본인들이 진짜 스파이 행위를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확신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일본인 구속자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공표하기보다, 언론에 공개된 사실에 대해서만 확인해주는 소극적 대응을 하고 있다.

일본 언론의 태도 또한 소극적인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해외에서 실종되거나 억울하게 구속된 자국민의 경우, 집요하게 달려들어 캐고 또 캐는 보도 행태와는 달리, 이번 중국에서의 스파이 혐의 보도는 아예 기사화하지 않는 매체도 많다. 특히 근성이 아주 강한 시사주간지의 행태는 더욱 이상하다. 이에 대해 일본의 한 유력 주간지 편집장은  “이미 언론계에 일본인 스파이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 일본 언론이 떠들면 떠들수록 일본에 이로울 게 없으니까. 국익 차원에서 자진해서 조용히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일본인 구속 문제가 단순히 평범한 민간인이 체포된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해주고 있다. 첩보 활동과 정말 무관한 일본인 민간인이 붙잡혔다면, 일본 정부가 이렇게 조용히 있을 수 있을까.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올해 초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60대 중국인 한 명이 방산 기술을 빼돌려 스파이 혐의로 붙잡힌 이래 공교롭게도, 일본인이 같은 혐의로 중국 당국에 의해 구속되는 일이 여러 차례 계속됐다는 점이다. 중·일 관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일본의 중국인 구속에 대한 대항 조치의 성격이 짙다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중국 매체 환추스바오(環球時報)도 “올해 초 일본에서 중국인 1명이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에 대한 반격으로, 중국이 최근 일본의 첩보 수집 활동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다시 중국과 일본 간의 힘겨루기의 장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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