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가계부 어디로]③ 재정건전성 빨간불에도 “증세 없다” 고집만
  • 이민우 기자 (woo@sisabiz.com)
  • 승인 2015.09.25 18:49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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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사진 = 뉴스1

내년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4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재정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명박 정부 때 이뤄진 대규모 감세가 지속된 결과물이다.

박근혜 정부는 ‘증세는 없다’는 구호만 되풀이했다.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며 올린 담뱃세로 인해 ‘꼼수 증세’ 논란에 휩싸인 채 말이다.

◇ 재정 건전성 '빨간불'

박근혜 정부는 2016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나랏빚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고해성사를 했다. 내년 국가채무가 사상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정부가 매년 경기 부양을 위해 국가 재정을 확장적으로 편성한 탓이다. '임기 내 균형 재정 달성, 국가채무 GDP 대비 35% 수준' 이라는 목표는 일찌감치 포기한 셈이다.

국가채무는 지난해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한 이후 불과 2년만에 다시 600조원을 넘어서게 됐다. 나라 빚이 불어나는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게다가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40%가 결국 깨졌다는 것은 더 큰 충격으로 여겨졌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해에는 국가채무가 731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국가 채무에 공기업이 지고 있는 빚을 합산할 경우 얘기는 더욱 심각해진다. 국가채무에 비금융공기업 부채를 포함한 공공부문 부채는 900조원(2013년 기준)에 육박한다. GDP 대비 62.9%에 이르는 규모다. 여기에 금융 공기업의 부채, 공무원·군인연금 등 정부가 미래에 지급해야 할 연금 충당부채 596조3000억원까지 더하면 국민 채무는 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정부는 불과 1년 전에 내놓은 ‘2014~2018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18년까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36%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어떻든 40%는 넘기지 않는다는 것이 암묵적인 합의였다. 그러나 3년 연속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두 차례의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하는 등 과감한 확장 정책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됐다.

◇ '증세 없는 복지' 도그마에 빠진 정부

상황이 이렇자 여당에서조차 '증세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유승민 의원은 원내대표를 맡고 있을 당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지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 부족분만 22조2000억원으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며 "135조원의 공약가계부는 더 이상 지킬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세금과 복지 문제를 논의할 여야 합의기구 설치를 추진하겠다"며 '증세 논의' 공론화를 선언했다. 그러나 정부는 한 때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그의 '충언(忠言)'을 외면하고 원내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도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머지않아 위험 수준에 도달할 위험성이 있다"며 "세원 확대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며, 비과세·감면 정비도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현행 재정제도가 유지될 경우 우리나라 재정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게 KDI의 지적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고집은 여전히 꺽이지 않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5일 국정감사에서 "비과세·감면 정비 등 재원을 확충하고 일자리를 늘려서 자연적으로 세수 증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증세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부가세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는 여당 의원의 지적에 대해서도 "부가가치세는 서민 물가나 그런 측면에서 변화를 초래할 수 있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 부족한 세수는 간접세로…'꼼수 증세' 논란

'증세는 없다'고 고집하던 정부는 지난해 국민 건강 증진을 명목으로 담뱃값을 올렸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으로 올 담배 판매량이 지난해(43억4000만갑)보다 34% 줄어든 28억6000만갑이 될 거라고 했지만 8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이미 21억갑에 달했다. 반짝 줄었던 흡연율도 지난해 수준으로 다시 올랐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담뱃세만 지난해(6조7400억원)보다 66% 늘어난 11조

자료 : 기획재정부 인용

1700억원을 거둬들이게 됐다. 당초 정부가 예측한 올해 담배 세수 9조6000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주민세 인상 문제도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주민세 인상을 추진하다가 국민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그러자 행정자치부는 주민세 1만원 미만인 지방자치단체에 교부세 감액 등의 불이익을 준다는 식으로 주민세 인상을 강요했다. 결국 시장·군수 협의회들은 정부의 압박에 못이겨 주민세를 속속 인상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서민에게 부담이 많은 간접세만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다. 간접세는 상대적으로 소득 불균형을 높인다고 해서 '역진세'로도 불린다. 정부가 부자와 기업들에게 불리한 소득세·법인세는 놔둔 채 서민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간접세 인상은 물가 인상의 주범"이라며 "소득 재분배 역할을 해야 할 조세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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