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정체성, 공론화 거쳐야
  • 김태일 |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5.08.12 19:56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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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이라고 할 열린우리당은 ‘비상집행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두 차례에 걸친 선거 패배의 후폭풍이었다. 비상집행위원회의 임무는 혼란스러운 당의 전열을 정비해 그다음 해 초에 전당대회를 치르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비상집행위원회는 지금까지 10년 동안 되풀이되고 있는 ‘선거 패배 → 비상 체제 수립 → 전당대회 개최’라는 어두운 역사의 출발 같은 것이었다.

필자는 당시 얼떨결에 그 비상집행위에 참여했다. 교수 노릇을 하면서 한 주에도 몇 번씩 대구-서울을 오르내려야 했지만 보람은 있었다. 비상집행위는 지금으로 치면 최고위원회와 혁신위원회를 합쳐놓은 것이었으니 권한도 막강했다. 비상집행위원으로서 필자가 맡은 일 가운데 하나는 당의 정체성을 강령으로 다듬어서 전당대회에 올리는 일이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이 대표하고자 하는 가치의 범위가 너무 넓은 탓이었다.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이 대변하고자 하는 오른쪽의 가치를 제외하고,  민주노동당이 표상하는 왼쪽의 가치를 제외한 나머지 가치를 모두 대표하려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나머지 정당(residual party)’이라고 부르자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포괄 정당의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이 마땅치 않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는 당 내부 갈등을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난닝구-백바지’ 논쟁이 서로를 할퀴며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비상집행위는 신강령기초위원회를 만들어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정리하도록 했다. 당시 김영춘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이인영 의원이 부위원장을 맡아 이 작업을 이끌었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 이른바 ‘사회 통합적 시장경제’를 중심 개념으로 한 새로운 강령이었다. 김 의원의 뒤를 이어 신강령기초위원장을 맡은 필자는 이 강령안을 전당대회에 내놓기 위해 당 전체의 공론 과정에 올렸다. 국회의원·대의원·당원들에게 강령안을 회람하게 하고 의견을 물었다. 지역당 대회마다 따라다니면서 강령안을 설명했다. 열린우리당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정당의 정체성은 깃발이다. 깃발을 정하는 일만큼은 정당 구성원들 전체의 토론이 필요한 일이다. 그것도 치열한 논전을 거쳐야 하는 일이다.

지금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가 당내 특수 이해로부터 자율성을 가지고 혁신안을 만들어 발표하고 있다. 당내 특수 이해로부터 자율성을 가지고 ‘정당이성(政黨理性)’을 실현하는 것이 혁신위원회의 본질이고 소명이다. 그런데 정체성을 정의하는 일만큼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일만큼은 당의 주권자들의 진지한 공론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의 정체성, 즉 깃발을 정하는 일은 열린우리당 비상집행위 이후 새정치연합 혁신위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혼란스러운 숙제로 남아 있다. 그런데 유념해야 할 일은, 이 작업만큼은 새정치연합 혁신위가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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