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경영 문턱 못 넘어 반기업 정서 불러왔다”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6.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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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용호 전 청와대 정책실장 “굿 컴퍼니가 대한민국 미래”

시사저널이 주최한 ‘2015 굿 컴퍼니 컨퍼런스’의 기조연설을 맡은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비롯해 공정거래위원장과 국세청장을 역임했다. 기업들의 페어플레이를 관리·감독하는 공정위원장과 국세청장은 ‘저승사자’로 통한다. 백 교수는 공정위원장을 역임하다 국세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공정위원장은 장관급, 국세청장은 차관급이라는 점에서 백 교수의 이동을 의아하게 여기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기업 페어플레이의 심판으로서 백 교수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그는 이번 강연을 통해 지난 정부 주요 요직을 거치면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굿 컴퍼니’가 돼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 구체적이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백 교수는 연설 제목도 ‘굿 컴퍼니가 대한민국의 미래다’라고 정했다. 그는 우선적으로 굿 컴퍼니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2015 굿 컴퍼니 컨퍼런스’에서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소비자 요구의 변화

 

“굿 컴퍼니란 윤리경영과 경제적 이익 간 균형을 통해 내외부 고객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유지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하는 기업이다.” 

 

굿 컴퍼니에 대한 사회적 정의는 시대마다 바뀌어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굿 컴퍼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회사 정도로만 받아들여졌다. 이제는 일자리 창출을 넘어서 윤리적 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그 개념이 확대됐다. 백 교수는 굿 컴퍼니에 대한 사회적 정의가 바뀐 방증이 ‘경제민주화를 위한 입법’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자율에 맡겨두었거나, 비도덕적이라고 비난을 받는 데 그쳤던 기업 행위들이 이제는 ‘경제민주화’라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 법률로 규제되고 있다. 예컨대 대기업 총수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방지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이 개정돼 계열사 간 신규 출자와 계열사에 대한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가 금지되었다.”

 

그는 윤리경영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가 소비자들의 요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양적·물질적 풍요로움을 추구하던 생활양식이 질적·정신적 욕구 충족으로 변화하면서 좀 더 높은 윤리 수준을 기업에 요구한다는 것. 대표적 사례로 그는 화장품업체의 동물실험에 반대한다거나, 제3세계 근로자들의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해 공정무역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를 꼽았다. 과거에는 윤리경영이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었다면, 이제는 ‘이익 창출의 기반’이 됐다고도 했다. 백 교수는 ‘존슨 앤 존슨’의 사례를 들었다.

 

“1982년 주력 상품이던 타이레놀을 복용한 몇몇 환자들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는 미국식품의약국(FDA)과 경찰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타이레놀 제품을 회수했다. 조사 과정에서 결백함이 증명되었지만, 회사는 제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포장을 바꾸고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데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러한 결정은 이윤 추구에 앞서 국민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책임 있는 행동의 본보기로 여겨지고 있다.”

 

존슨 앤 존슨의 사례는 세션 1의 강사로 나선 김병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도 언급했다. 백용호 교수는 굿 컴퍼니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세 가지를 언급했다.

 

첫 번째로 꼽은 것은 ‘준법경영’이다. 2015 굿 컴퍼니 컨퍼런스의 주제 중 하나인 ‘Compliance’와 일치했다. 그는 공정위원장과 국세청장을 역임한 관료답게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려는 노력은 공정거래법·세법 등 관련 법령을 준수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확고한 인식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국내 많은 기업이 준법경영의 문턱을 넘지 못해 반(反)기업 정서를 초래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굿 컴퍼니의 세 가지 조건


두 번째 조건은 직원들의 신뢰, 즉 ‘내부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굿 컴퍼니 컨퍼런스의 두 번째 주제인 ‘Reputation’과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 로사 전 교수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보다 직원에게 존경받는 기업이 강하다”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직원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는 회사, 즉 일하기 좋은 회사가 업무 효율도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직원들의 신뢰를 높이는 것은 기업 내부 고객을 만족시키는 윤리경영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거래업체를 협력 파트너로 만드는 전략’이 굿 컴퍼니의 마지막 조건이라고 했다. 이는 기업의 ‘Performance’ 영역이다. 그는 영국의 한 신문사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활용했다.

 

“영국의 한 신문사에서 영국 끝에서 런던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을 공모했다. 수없이 많이 쏟아진 답 중에서 1등은 ‘좋은 동반자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좋은 동반자와 함께 가면 가장 빨리 갈 뿐만 아니라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기 때문이다. 경제 활동도 마찬가지다. 좋은 동반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여행의 성격이 달라지듯 이익을 혼자 독점하느냐, 아니면 동반 성장하느냐에 따라 열매의 크기와 가치도 달라질 수 있다.”

 

백 교수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굿 컴퍼니가 많이 생길 수 있고, 이런 회사가 많이 생길 때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적 기업 두 곳의 최고경영자 발언을 소개하며 기조연설을 마무리했다. 그가 소개한 두 최고경영자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좋은 기업과 위대한 기업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좋은 기업은 훌륭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위대한 기업은 훌륭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윌리엄 클레이, 포드 CEO)

 

“이익 추구를 위한 비즈니스 전략에 사회·환경적인 배려를 가미할 때 과감한 혁신과 경쟁 우위가 가능하다.”(칼리 피오리나, HP 전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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