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눈먼 자들’이었다”
  • 김지영(女)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5.04.21 17: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월호 참사 1년을 말하다…소설가 박민규 단독 인터뷰

“세월호라는 배가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소설가 박민규는 지난해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졌다. 그의 글이 담긴 <눈먼 자들의 국가>는 일주일 만에 3만부 판매를 돌파하고, 3쇄까지 찍었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난 현재,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를 만났다. 10년이 넘는 작가 생활 동안 언론과의 인터뷰는 이번 시사저널이 다섯 번째라고 한다. 그만큼 그는 작품 밖에서 만나기 어려운 작가로 통한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박민규 작가는 역시나 동그란 뿔테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얼굴이 알려지는 게 싫어 인터뷰를 할 때는 늘 눈을 가린다고 했다. 말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느리다.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가수 전인권씨가 오버랩된다. 박 작가는 “지난 2년 동안 사회가 갑자기 우경화되고 퇴행했다. 지켜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었다”며 “세월호 참사 역시 매우 다르게 받아들이고 (잘못) 해석하는 자신과 같은 40~50대 또래가 각성하고 생각을 달리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인터뷰를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박민규씨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카스테라> 등으로 문학계의 기린아로 우뚝 섰다.

 

ⓒ 시사저널 최준필
세월호에 대해 쓴 <눈먼 자들의 국가>가 화제가 됐다. 쓰게 된 계기가 있었나

작가들은 ‘이게 이야기가 돼? 안 돼?’에 굉장히 민감하다. (세월호 침몰은) 이야기가 되지 않는 사건이었다. 다른 작품들보다 쓸 때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저는 정말 맘이 아팠을 때가 유가족 어머니들이 나와서 말씀하실 때 눈빛을 보는데 예전에 일본 후쿠오카 원전 터졌을 때 ‘신도 부처도 없다’는 속담에 나온 그 눈빛이더라. 이 불쌍한 사람들. 신도 부처도 없는 이 사람들 주변에 인간이라도 있어야 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썼다.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눈먼 자들’이란 누구인가

우리 모두다. 비단 정권·정부·정치인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국 사회가 달려온 방향 안에서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눈먼 부분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근대라는 과정이 생략된 국가다. 국민은 중세 봉건주의로 살다가 식민 시대가 끝나고 어떤 절차 없이 민주주의·자본주의라는 체제를 막연히 시작했다. 근대라는 그 벽이 우리가 쌓아올린 게 아닌 이미테이션인 상태로 여태 이 나라가 운영되다, 그 빈 공간이 완전히 드러난 사건이 바로 세월호다.

세월호 사건으로 드러난 속이 빈 대한민국 근대화의 실체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문제는 대형 교회의 문제와 같다고 본다. 대형 교회들이 큰 성전 짓고, 세습하고, 물질을 추구한다. 거기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면 나서서 목사를 ‘쉴드’쳐주는 교인이 있다. 결국엔 어떤 재판 과정을 통해 잘못이 객관적으로 인정된다고 해도 결국엔 (비판을 제기한) 사람들이 한 교회에 있을 수 없게 된다. 이 사람들이 나가면 그들의 주장이 옳다 해도 대부분 교인들은 이 교회를 계속 다닌다. 왜? 여기가 더 큰 교회이기 때문에. 이분들은 교회에 아무 일 없기를 바라고, 계속해서 더 잘살고, 번듯하길 원한다. 그걸 개개인들이 다 추구하고 있다.

현재 대통령은 팬덤이 강한 목사, 유가족은 이단 취급을 받는 신자, 이에 무관심한 국민은 목사를 방어하는 신자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비단 세월호뿐 아니라 늘 그래왔다. 선거하면, 정책이나 진보·보수 이념의 문제가 아니잖나. 내가 사는 고향이 어디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예수 믿어야 천국 간다’는 슬로건과 ‘보수를 찍어야 나라가 잘산다’는 슬로건은 어떻게 보면 같다. 천국이 없다는 걸, 더 잘살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이 1년 동안 답보 상태인 이유가 여전히 더 잘살 수 있다고 믿는 국민들 때문이라는 말인가.

아주 큰 부분이다. 여러 국민을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무의식적으로 ‘세월호가 경제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여긴다. 계속 경제가 지지부진한 것 같고 불안하고, 그러니까 빨리 덮고,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생각한다. ‘경제 신화’라고 하잖나. 신화적인,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신앙심이 생겨난 것도 그런 이유다. 일반 교인들이 기도하다가 방언이 터지듯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은 경험을 했던 거다. 보릿고개 넘기고 하다가 빌딩 들어서고 이런 놀라운 걸 보신 거다. 개척교회에서 열심히 헌금도 하고, 큰 교회를 지었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이 교회가 세계 예루살렘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더 잘살려고 했을 때 그 위에 있는 국가들을 한번 보자. 얼마나 큰 국토와 자원과 국민 수를 보유한 나라인지. 아니면 조금 작은 나라라면, 수백 년 동안 식민 지배를 통해 축적한 부가 있는 나라들이다. 더 잘살 수 있다는 신화를 버려야 한다.

유가족이 외치는 ‘진상 규명’은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는 5·18과 기본적인 성격이 같다. 내가 대학생 때,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한 진상 규명을 절실히 외쳤다. 5·18이 국가가 국민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거라면, 세월호 같은 경우는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거다. 의무다. 국가와 국민을 쉽게 부모와 자식으로 비유해보자. 이를테면 5·18은 부모가 아이한테 폭력을 행사해 아이가 죽음에 이른 경우다. 그런데 세월호는 지난해 뉴스에 나왔듯 신생아를 둔 엄마가 게임 중독이 돼 아이한테 먹을 것 주는 걸 방기하고, PC방에 가서 밤새 게임하다가 아이가 죽은 사건인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았다.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둘 모두 결과적으로 똑같이 많은 국민이 죽었다. 후자의 엄마의 경우 아이를 죽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다. 그거는 별개다. 의무를 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많은 국민이 죽었다면, 이 엄마처럼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을 진다는 건 징계와 처벌도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징계와 수위는 어느 정도가 돼야 할까.

그러니까 그 수위를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못 정한 거다. (이 사건을) 1년까지 끌게 된 이유도 그 책임의 수위 때문이다. 정말 놀란 것은 (침몰 후) 청와대 발표였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그 상황에서 이 사람들은 ‘일단 정치적인 피신처가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건 행정의 문제다. 행정이란 구조나 지휘체계 같은 부분을 얘기하는 거다. 행정이라는 영역엔 공터가 없다. 모든 게 서류로, 문서로, 법령으로 짜인 세계인데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면 국가 재난이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 행정은 공터라는 얘기다.

세월호 참사가 ‘정치’가 아닌 ‘행정’의 문제라는 뜻인가.

유가족들이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대통령과 정부의 진정성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왜 유가족이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가.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고 나서 나흘 만인가? 정부·여당의 최고위원이 느닷없이 종북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고 했다. 프레임을 짜고,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갑자기 조사를 받아야 할 해경을 해체하고, 누구의 동의도 없이. 그리고 (대통령은) 울고. 개인적으로 국가 지도자 우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여당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고 살려달라고 하고. 그건 행정적인 일들이 아니다. 감정에 호소한 정치적인 스탠스다. 모든 참사가 끝나고 진상 규명 과정에서 재판하고 진행되고 이런 부분은 선박의 침몰 사고에만 행정적인 절차가 적용됐다. 이제는 정치적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정말 책임져야 할 일이 되었다.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각하’라는 표현을 쓰면서 역사가 주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생각은 아직 유효한가.

글을 썼던 시점은 특별법 협상을 벌이던 때였다. 하여튼 뭐든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철없이(웃음). 지금도 순진해가지고 기대를 건다면, 용기를 가져주면 좋겠다. 대통령이. 왜냐하면 모든 게 대통령 중심 제도인데 이걸 풀 수 있는 분은 대통령밖에 없다. 얘들은 반정부 시위를 하다 죽은 것도 아니고, 실은 하라는 대로 다 따랐기 때문에 죽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에서 ‘어떻게’와 ‘왜’라는 부분이 지금 없다. 이걸 알아야지 가족들이 아이들을 가슴에 묻고 어떻게 할 수가 있다. 대통령이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왜 그 시간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는지 정말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하고 조사를 받고 어떤 일인지 밝히고, 책임을 진다면, 이 일은 국가 전복, 정권 전복과는 무관한 일이다. 진정성이 보인다면 유가족들의 마음이 굉장히 빨리 녹을 거라고 본다.

작가로서 세월호 사건은 어떤 의미인가.

굉장한 내면의 변화를 겪었다. 우리 역사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특히 현대사에 대해서. 근데 이 사건을 계기로 굉장한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지난 1년 동안 유가족에 대한 배·보상 문제라든지 등을 보면서 과거엔 어땠던가 확인하면서 정말 많이 놀랐다. 충격, 공포라고 할까. 적어도 그 현대사에 썼던 국가 책임소재들에 대해 많은 일을 다 덮고, 묻고, 망각하고(한숨). 전 그 슬픈 역사를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5·18의 진상 규명도 20년 정도 지나서야 겨우 이뤄졌다. 지난해 4·16부터 한국 사회는 제자리걸음이다라는 얘기를 하는데 진상이 덮이고 묻히고 잊힌다면, 이건 사실 4월16일부터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1980년대부터 제자리걸음이라는 얘기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 화두가 된 질문이 바로 ‘국가란 무엇인가’다.

 지난해 참사를 눈앞에서 목격한 국민이 다 같이 울부짖을 때 했던 질문이 “이게 나라냐”였다. 진실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질문의 답은 이미 나왔다. “이런 나라다.” 나 자신조차 전제주의적인 국가관이 있더라. 이번에 깨달았다. 개개인의 수준이 그 나라의 수준이 되는 거고, 개개인의 가치관이 그 나라의 가치관이 돼야 한다. 5000만명의 대한민국이 있는데 거기서 어떤 합을 얻을 것인가, 그리고 어떤 생각을 많은 수가 가질 것인가, 그리고 언론이 장악되고 통제되더라도 그 안에서 스스로 길을 찾고, 다른 세계관을 넓히고, 그 수가 얼마나 될 것인가. 이에 따라 우리가 그때 했던 질문,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진보적인 작가라는  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진보 아니다. 그냥 나라는 개인이다. 나는 진보다, 나는 보수다라는 스탠스만 유지한다고 이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니다. 정말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지나온 역사에 대해서 공히 반성해야 하는데 반성이 없었다. 한국인은 모두 피해자라고만 생각한다. 반성하지 않고, 그냥 이것은 나쁜 놈 때문이라고 해버리면 해결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정립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이제는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어야 하고, 그런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돼야 한다. 세월호가 그 전기가 돼야 한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나.

세월호에 관해 픽션을 쓰고 싶지 않다. 바라는 것은 유가족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진상이 규명되고, 그 논픽션을 많은 분이 읽고, 다 같이 반성하는 일이다. 진상이 규명되지 않는다면, 끝까지 덮고 묻는다면, 문학은 그때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