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엔 ‘먹물’들의 욕망이 담겨 있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11.27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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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나온 잡지 분석한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한국의 현대사를 알 수 있는 유물 전시장에 가보면 당시 사람이 즐겨 보던 책을 전시해놓은 코너가 있다. 그 속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잡지다. 자극적인 제목, 선정적인 사진이 담겨 있어서다. 특히 시사 잡지에는 당시 정치 상황이나 사회상을 알 수 있는 제목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내용을 보고 싶지만 여러 유물 중 하나로 흘낏 보기만 하고 돌아오기 바쁘다.

그런 독자를 위해 한국 근현대 문학사와 문화사 연구를 확장시켰다는 평을 받는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가 1945년부터 지금까지 반세기가 넘는 한국 현대 문화사를 잡지를 통해 엿본 결과물을 내놓았다.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이다.

천 교수는 2년여 동안 한국 잡지사를 개괄하고 도서관과 박물관을 드나들며 수백 종의 잡지를 검토했다. 1945년 12월1일 발간된 ‘백민’을 시작으로 ‘민성’ ‘개벽’ ‘사상’ ‘현대문학’ ‘씨알의 소리’ ‘뿌리깊은 나무’ ‘새마을’ ‘문학과 지성’ ‘야담과 실화’ ‘선데이서울’ ‘보물섬’ ‘키노’ ‘페이퍼’ ‘월간 잉여’ 등 민족지·정론지·문학지·노동지·오락지·예술지·만화잡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126종의 잡지를 살폈다. 그러는 중 각 잡지의 창간사가 당시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 연합뉴스
잡지 창간사로 읽는 한국 현대 문화사

천 교수는 시대의 문제의식이 잘 반영되었는지, 우리 문화사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었는지,  독특하거나 흥미로운 문장인지 등에 따라 신중히 가려낸 창간사를 통해 당시의 문화적·문학적·역사적 지형도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잡지를 창간하는 일에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퍼뜨리고 싶다는 욕망, 잡지를 중심으로 앎과 삶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이 관여한다. 이 욕망은 권력욕이나 인정 욕망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먹물’에게 그렇다. 그래서 창간사에는 어떻게 세상을 ‘취재’ ‘편집’해서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창간 주체의 방향이 천명된다. 고로 대개 창간사는 ‘선언’이다.”

천 교수는 잡지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지식인은 지식인이 아니며 잡지를 갖고 싶어 하지 않는 출판인은 출판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지식인 잡지의 창간사를 보면 우리나라 참여적 지성의 전통이 무엇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잡지사(史)는 문화의 연표다. 잡지는 신문 등 일간지에 비해 자본이 적게 들고, 분야와 독자가 한정돼 있으며, 뜻이 통하는 단 몇 사람의 주체만으로도 발간할 수 있다.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사회 환경 아래 특정한 독자층의 이익 내지 기호를 대변하는 누구나 창간 가능한 매체. 그래서 잡지는 어떤 매체보다 쉬이 시류를 타고 사조에 즉각 반응하며, 태어나기도 사멸하기도 쉽다. 과거 속에 사라진 잡지는 정치 또는 문화적인 압력을 제 안에 새긴 채 표준화석처럼 당대를 증언하고, 살아남은 잡지는 그 자체로 문화사에서 적자일 수 있었던 이유를 증명한다. 역사, 특히 현대사를 논할 때 잡지가 주요 사료가 되어온 이유는 그래서다.”

70년 전 광복 이래 이념과 자본, 권력 쟁투가 일으킨 큰 파랑에 따라 잡지는, 시대마다 모습은 다를지언정, 앎과 각성의 매개체로서 지성사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잡지의 본질이 말하고 듣고 나누는 것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디지털 매체의 발달로 종이 매체의 영향력이 급격히 축소되어가는 지금, 잡지도 지성사도 종말을 앞두고 있을까. 천 교수는 ‘잡지’ 이면의 ‘잡지스러운 것’을 말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세계를 문자와 활자, 문학이란 행위로 포착해 해석하고 변혁하려는 노력은 계속된다. 그 방법은 언제나 특정한 지적 장치와 유형으로 틀 지워져 있다. 종이 잡지는 그 틀의 하나였던 것이다. 영원한 플랫폼이나 ‘매개’(미디어)는 없다. 당장의 패자처럼 보이는 네이버나 페이스북, 구글도 지금과 같은 형태와 위세를 영원히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미디어 역사, 나아가 문화사의 법칙이다. 그러니 ‘잡지스러운 것’도 끝없이 모양을 바꾸고 다른 ‘매개화’를 겪을 것이다.”

잡지 통해 현대사의 ‘제목’ 엿봐

광복 후 70년 동안 잡지는 수난과 번영이 교차하는 영욕의 세월을 보내왔다. 종이의 생산과 분배는 언제나 이 땅 출판문화의 중요한 물질적 변수였다. 책을 만들 만한 질 좋은 종이가 언제나 풍부했던 것도 아니고, 제지업이 종이 수요를 충분히 감당한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한국 출판·언론계는 일제 강점기부터 1970년대 초까지 늘 종이 부족에 시달렸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박정희 정권 때는 물론, 심지어 1990년대에도 신문 용지나 교과서 용지 수급에 실패한 상황이 있다. ‘용지난’은 이제는 사어가 되다시피 한 말인데 옛 신문과 잡지에는 꽤 자주 ‘용지난’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그래서 지배 권력은 종이 공급을 언론·출판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이용했다. 1940년 동아일보·조선일보를 폐간시킨 조선총독부의 핑계도 ‘용지 부족’이었다. 물론 미군정도 용지 공급을 통제했고, 미군정 법령 제88호의 표면상 제정 명분도 용지 부족이었다. 반면 ‘신천지’ ‘민성’ 등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발간될 수 있었던 것도 일제가 남긴 풍부한 재고 용지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천 교수는 1970년대를 기억하거나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한창기가 쓴 창간사를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권유한다. ‘뿌리깊은 나무’의 창간사는 1970년대 후반에 바라본 한국 문화의 ‘현재’에 대한 총론이라 할 만하다며.

“우리의 살갗에 맞닿지 않은 고급문화의 그늘에서 시들지도 않고 이 시대를 휩쓰는 대중문화에 치이지도 않으면서, 변화가 주는 진보와 조화롭게 만나야만 우리 문화가 더 싱싱하게 뻗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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