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사망, 테러 가능성 있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11.27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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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이라크에서 사망한 삼성엔지니어링 직원 유족 주장

지난 8월3일 이라크 현장에 근무하던 삼성엔지니어링 직원 차 아무개씨가 사망했다. 회사 측이 작성한 ‘직원 사망 사고(차×× 선임) 경과보고서’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차씨는 8월3일 밤 8시50분쯤 이라크 바그다드 남동쪽에 위치한 바드라(Badra) 현장을 떠났다. 다음 날 오전 9시로 예정된 이라크 석유장관과의 미팅을 위해서였다. 경호 차량을 포함해 두 대의 차량이 현장을 출발했다. 차씨는 김 아무개 소장과 최 아무개 공무팀장, 현지 경호원 등 4명과 함께 뒤쪽의 방탄 승합차에 탑승했다. 하지만 차씨가 타고 있던 차량은 아지지야(Aziziyah) 지역 인근의 고속도로를 지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오른쪽 앞 타이어가 펑크 나면서 차량이 5~6번 굴렀고, 차씨는 열린 차문으로 튕겨져 나가 사망했다. 나머지 탑승자는 가벼운 부상(찰과상)만 입었다. 이때가 밤 10시45분쯤이었다. 보고서에는 ‘차 선임이 중간 휴식 이후에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시돼 있다.

지난 8월 사고로 이라크에서 아들을 잃은 차 아무개씨가 아들 부부의 사진을 보며 허탈해하고 있다.작은 사진은 사고 당시 촬영된 현장. ⓒ 시사저널 구윤성
차씨 유족 “회사 발표 신뢰할 수 없다”

시사저널은 10월 중순 이라크에서 발생한 직원 사망 사고의 원인이 석연치 않다고 보도했다. 당시 삼성엔지니어링 측은 “단순한 교통사고였으며, 이라크 현지의 경찰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제1304호 참조). 후속 취재 과정에서 차씨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차씨의 아버지는 “회사의 발표를 신뢰할 수 없다. 삼성에서 아들의 죽음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차씨의 아버지는 그 근거로 사고 직후 촬영한 차량 사진을 제시했다. 삼성 측의 발표와 달리 사고 차량 앞쪽의 타이어는 모두 멀쩡한 상태였다. 

사고 당시 차씨와 동승했던 직원들과 나눈 대화 내용도 처음으로 공개됐다. 30분 분량의 녹음 파일에는 사고 당시 상황이 자세하게 언급돼 있다. 2열 왼쪽에 앉은 차씨는 안전벨트를 착용했고, 3열에 앉아 있던 최 아무개 공무팀장이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는 말이 관심을 끈다. 삼성이 작성한 사고 보고서와 상이하기 때문이다.

삼성엔지니어링 측은 “초기에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현장에 있던 직원이 경황이 없어 뒤쪽 타이어 펑크를 앞쪽으로 착각했다.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는 뒤쪽 타이어로 정정해서 진술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공무팀장이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것은 맞다”면서도 “사고 당시 최 공무팀장은 3열에서 자고 있었는데 깨어나 보니 2열의 좌석 사이에 끼어 최악의 상황을 면했다고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족들의 주장은 달랐다. 차씨의 아버지는 “현장 사진을 보면 운전석의 문이 완전히 뜯겨져 있다”며 “차량이 5~6바퀴를 굴렀는데 문이 뜯긴 쪽에 앉은 운전사와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직원은  큰 상처를 입지 않았고, 안전벨트를 착용한 아들만 밖으로 튕겨져 나가 사망했다니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차씨의 아버지는 테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삼성과 경호업체가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말을 맞췄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사고 초기 ‘시속 80㎞로 차량이 주행하다가 전복됐다’고 보고서에 적시했다. 하지만 사고 현장에 있던 직원들의 증언은 달랐다. 사고 차량은 시속 100㎞ 이상으로 달리고 있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차씨가 “과속을 하지 말라”고 운전사에게 주의를 줄 정도였다. 중간에 휴게실에 들렀다거나 검문 절차를 거친 적도 없었다. 이 같은 정황을 감안할 때 사고 시간(현장에서 2시간)이나 장소(현장에서 120㎞ 지점) 또한 이해할 수 없다고 유족들은 주장한다. 차씨의 아버지는 “사건을 확인하고 삼성 캠프에 있던 긴급대응팀이 추가로 인근 경찰서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전후라고 들었다”며 “1시간 15분 정도의 거리를 사고 차량이 두 시간이나 달려왔다는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삼성엔지니어링 측 “절차대로 처리”

심지어 앞서 가던 경호 차량도 뒤차의 사고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차량은 사고가 발생한 후 한참이 지나서야 사고 지점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차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튕겨져 나간 장소는 사고 차량과 불과 7m 거리였다. 그럼에도 현장에 있던 직원들은 5분 동안이나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며 “나중에 현지 주민이 아들을 발견했고, 전복된 차량 또한 주민이 일으켜 세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도 삼성엔지니어링 측은 “사고 지점이 고속도로였기 때문에 과속을 했다. 이전에 지나온 지역은 비포장도로가 많았기 때문에 2시간 정도 걸리는 것이 맞다”며 “이라크 현장에 확인해본 결과 긴급 대응팀이 현지 경찰서에 도착하기까지 시간도 1시간 50분 정도 걸렸다”고 해명했다.

삼성엔지니어링 직원 사망 사건은 의문투성이다. 사고 경위부터 사망 시간, 경호업체 대응, 삼성의 후속 처리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규명된 게 없다. 심지어 사고 현장조차 보전되지 않았다. “삼성엔지니어링 측이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며 유족들이 실체적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엔지니어링 측은 “은폐는 말이 안 된다. 절차대로 후속 처리를 했다”는 입장이다. 이라크 보건국도 8월4일 차씨가 교통사고에 의해 사망했다는 보고서를 발급했다. 현재 이라크 현지 경찰도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사고를 낸 삼성엔지니어링의 경호업체인 B사는 사고 당일 불구속 수사를 조건으로 현지 경찰에 2000만 이라크 다나르(약 1만7197달러)의 보석금(bail money)을 냈다.

한국의 수사기관도 이라크 경찰과 별도로  수사 중이다. 하지만 목격자들이 사실상 차씨와 동승했던 삼성엔지니어링 직원과 경호업체 직원뿐이라는 점에서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하는 데 애를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차씨에 대한 부검 결과를 넘겨받았다. 국과수는 ‘사고 차량을 확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확한 사인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견을 경찰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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