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동백꽃과 성소수자
  • 김인숙 | 소설가 ()
  • 승인 2014.11.1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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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남도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남도는 과연 남도라 이제 단풍이 제대로 물이 오르는 가을인데, 뜻밖에 동백이 제법 피어 있었다. 동백은 겨울에 핀다 하여 동백이지만, 봄에 피는 것은 춘백, 가을에 피는 것은 추백이라고도 부른다. 백련사의 동백 숲은 대부분 춘백이라고 하는데, 올해 유난히 꽃이 일찍 피어 거기 사는 사람들도 신기해했다. 

동백이 철을 잊고 핀 사연이야 동백만이 알 터이다. 철을 잊었다고 말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말일 뿐, 동백은 제 철 따라 그저 피고 질 뿐일 터인데, 동백이 가을에 핀 것을 일찍 피었다고 할 것인가, 늦게 피었다고 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동백과는 상관없이 그저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사람이 만든 기준으로 인해 가장 위험한 대상은 꽃이나 나무나 짐승들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들이다. 성소수자들이 그중 하나일 텐데, 최근 들어 활발하게 이뤄지는 커밍아웃을 보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을 숨기며 살아왔을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미국의 성소수자 비율이 약 3%라는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의 발표가 최근에 있었다. 100명 중에 3명이라는 뜻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천주교 교리에 관한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보았다. 자위를 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는데 만일 그것이 죄라면 하나님께서 애초에 사람의 팔을 그리 길게 만드시지 않으셨을 거라는 대답이었다. 멋있는 하나님이 아니신가. 천주교 신자가 아님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한 달 전쯤에는, 천주교 세계대주교회의에서 ‘동성애자들에게도 신앙공동체를 위한 은사와 자질이 있다’는 문구가 채택되었다. 이것은 거의 혁명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앞선 혁명이 아니라 매우 뒤늦은 혁명이다. 소수자를 더 많이 사랑했어야 할 교회가 그들이 스스로 피를 흘리며 닦아놓은 길을 쫓아가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애플의 CEO인 팀 쿡의 커밍아웃도 마찬가지다. 애플처럼 거대한 기업의 CEO가 동성애자라니, 그 성공 사례가 놀라워서가 아니다. 오피니언 리더의 커밍아웃은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성소수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된다. 외국의 사례에서 볼 때, 연예인부터 정치인까지 수많은 유명 인사가 커밍

아웃을 한 것이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미국의 동성애자 비율이 3%면 우리나라도 거의 그렇다고 봐야 할 것이다. 커밍아웃의 비율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존재의 비율에는 큰 차이가 있을 리 없다.

우리나라의 소수자들도 동백 숲의 동백처럼, 그저 자기가 피어날 시기에 피어나 동백으로 불리든 춘백으로 불리든 또는 추백으로 불리든, 똑같은 꽃이다. 남도의 동백 숲에 일찍 핀, 혹은 늦게 핀 추백 중에는 어느 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꽃이 없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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