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경계선 넘었던 그들 “진정한 창작의 힘 맛보고 싶다”
  • 조은정│미술평론가 ()
  • 승인 2014.08.2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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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화가 선무·송벽 등 ‘전업 작가’로 맹활약

전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리고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입국한 관계자들. 그들이 미술관 근처에 도착할 즈음 스마트폰이 울린다. 다급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내용은 미술관에 들어오지 말 것은 물론 어서 이 나라를 떠나라는 것. 부랴부랴 오던 길을 되짚어 공항으로 가며 스마트폰을 껐다가 켜서 메시지로 주위 사람에게 미술관에 가지 말 것을 알리는 행동을 반복했다. 공항에 도착한 후 표를 구하고 출국심사를 받고, 비행기에 탑승한 뒤 주인공인 작가는 비행기를 탔음을 안다. ‘자신의 나라’ 상공에 도착했을 때에야 뿜어져 나오는 커다란 한숨.

안도의 한숨이라 불리는 그 순간까지의 반나절 광경은 첩보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중국 베이징에서도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왕징의 위안아트뮤지엄(元典美術館)은 작품을 제작할 공간까지 내주며 탈북 작가 선무(線無)를 초대했다. 그런데 중국 당국은 ‘탈북인을 소환하겠다’는 북한의 요구를 묵살하지 않았다. 남겨진 가족의 안위를 위해 이름조차 숨긴 채 ‘경계 없음’ 혹은 선을 넘어왔다는 뜻의 ‘선무(線無)’라는 이름을 지은 작가는 여전히 생사를 걸고 국경을 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 조은정 제공
① 2012, paper, 55x40cm ② 2011, oil on canvas, 130x160cm ③ 2010, oil on canvas, 130x193cm ⓒ 조은정 제공
탈북 작가 공통점은 북한 체제 비판

‘자유 대한민국’에는 탈북 화가가 꽤 있다. 그중에는 ‘선전일꾼’을 하던 송벽 같은 이도 있고 미대에 다니던 중 탈북해 떠돌다 한국에 와서 미술을 전공하고 화가가 된 선무, 화가지만 방송을 타고 래퍼로 더 많이 알려진 강춘혁, 탈북 화가로 소개는 되지만 자신이 경험한 18호 수용소 지도 정도를 보여주는 김혜숙도 있다. 인간의 경험과 생각을 전달하는 미술의 특성상 극한의 경험을 그 몸에 담고 있는 이들이기에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탈북 화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몇 차례의 개인전을 가진 선무와 송벽은 국내 작가도 어렵다는 ‘전업 화가’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생명을 담보로 공간을 이동한 그들의 작품은 인간 승리의 결과물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작품은 재료의 상이성에도 외양은 이른바 팝아트의 범주에 있으며 내용은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이라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들의 작품이 북한에 관심이 많은 미국에서 전시 기회를 가진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화면에 제시된 직접적인 형상의 원천은 북한에서 발행하는 포스터나 선전물임을 누구나 안다. 지나치게 밝은 화면, 행복함을 주장하는 표정, 그리고 모든 사람이 동일해 보이는 획일성. 게다가 어린아이들의 노래하는 얼굴은 하나하나가 모두 같아 보여서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폐쇄 사회의 미래에 대한 전망마저 오싹하게 한다.

열린 공간으로 이동한 작가들의 트라우마를 우리는 감히 상상치 못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바르다고 생각해온 것들을 반추해 부정하는 그들의 붓질은 모르긴 몰라도 피 흘리는 자기 부정의 결과일 것이다. 선무나 송벽은 김정일 체제에서 탈북한 이들이다. 마릴린 먼로의 고혹적인 몸짓에 김정일의 얼굴을 넣은 송벽의 작품은 이러한 배경을 방증한다.

또 다른 ‘선전꾼’ 되지 말아야 하는 과제

송벽의 화면에 나타난 서방 세계의 사진기에 포착된 인민군의 모습이나 소년단복을 입은 소녀는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행동을 하는 듯 규제된 모습이지만 약간씩 다른 표정을 보인다. 집단과 개인의 이 어색한 조합은 외형적 동일성을 통해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의 각을 세운 자본주의 체제의 다른 작가와도 구별된다. 그는 최근에는 위성에서 바라본 한반도의 밤을 그려 화려한 불빛이 난무하는 남한과 달리 전력난에 시달리는 북한을 보여줌으로써 북한의 실패를 가시화했다.

김일성 초상화를 2008년 부산비엔날레에서 보이려다 취소된 적도 있는 선무의 작품은 초상화를 통해 김정일 체제에 비판을 가했다. 화면에 그림으로 북한의 포스터에 사용되던 인물 군상을 표현해내며 획일성에 대한 비판을 드러내던 그는 그 동일성과 재현성을 특성으로 한 ‘종이 오리기’ 방식으로 인물 형상을 재현했다. 색의 대비와 똑 떨어지는 외곽선은 그리기와 오리기를 같게 인식하게 하는 흥미로운 화면이기도 했다. 최근 두 공간의 경험은 국제사회에서의 이해로 확장돼 한반도의 정치적 상상을 인지하게 하는 설치작품도 보였다. 물론 중국에서 재빨리 철거되고 말았지만. 체제의 피해자로서 확장된 시각으로 예술의 힘을 파악하고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탈북 화가 또한 새터민에 대한 대중적 시각인 우리 안의 타자로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의 작품 주제가 줄곧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주위의 시선, 우리 내부의 오리엔탈리즘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또 다른 ‘선전꾼’이 될지도 모를 그들이 ‘탈북’이라는 영역에서 벗어나 ‘그냥 작가’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들이 생사를 걸었던 그 물리적 선만큼이나 강하고 무서운 선을 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시선도 그 가늠할 수 없는 선을 그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지적 권력의 틀을 벗어나 진정한 창작의 힘을 맛보기를 희구한다. 가난이나 집안의 반대 같은 정도의 어려움이 아닌 생명을 담보로 선택한 길이 화가임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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