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대장군’, 청와대 를 벼르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07.23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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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2년 차에 김무성 대표 체제 등장…박근혜 대통령·김기춘 실장과 충돌 불가피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정치적 동지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오랜 세월 힘든 야당 생활을 했던 YS(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정치를 배운 김 대표는 동료 선후배에게 예우를 갖추면서도 정치적 사안에서는 수평적 동지 관계를 중시한다. 반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절대 통치자였던 부친(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켜봤던 박 대통령은 수직적 군신 관계에 익숙하다. 이것이 두 사람이 부딪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박 대통령이나 핵심 측근들로서는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김 대표를 마땅치 않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고 김 대표가 군신 관계를 받아들일 수도 없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다.”

김무성 신임 새누리당 대표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되는 여권의 한 인사가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정치관을 비교하며 들려준 말이다. 한때 ‘친박(親朴)’이라는 깃발 아래 거대 계파를 만들어냈지만, 애초 김 대표와 박 대통령의 몸속에 체득된 ‘정치 DNA’는 달랐다. 결국 박 대통령과 김 대표는 지난 10년 결별과 만남을 반복해야 했다. 그런데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다시 한 배를 탔다. 박근혜정부 2년 차를 맞아 격랑에 휩싸이는 바다 한가운데서다. 김 대표는 이를 두고 ‘풍우동주(風雨同舟)’라는 말로 ‘우리는 운명 공동체’라는 점을 애써 부각했다. 하지만 이 고사성어가 ‘오월동주(吳越同舟)’와 유사하게 쓰인다는 점이 정치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오나라와 월나라가 어쩔 수 없이 한 배를 타지만, 둘의 관계는 ‘원수지간’이라는 것이다. 노련한 김 대표가 풍우동주를 유난히 강조하는 데는 숨은 뜻이 도사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7월15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의 오찬에 앞서 김무성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박 대통령 뒤에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이 서 있다. ⓒ 연합뉴스
그래서일까. 실제 두 사람 사이에선 불편한 기류가 더 많이 감지된다. 둘이 처한 위상의 격차도 과거와는 크게 다르다. 과거 두 사람의 관계를 ‘친박의 보스’와 ‘친박의 중간 보스’라는 상하 관계로 구분했다면, 이제 김 대표는 명실상부한 ‘미래 권력’으로 발돋움했다. ‘권력을 나눌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듯 보이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드물다. 이미 권력은 두 개로 쪼개졌고, 그들이 벌일 전쟁의 향방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려 있다.

‘무성대장군’ 등장에 압도당한 여권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은 ‘기춘대원군’으로 불렸다. 주군인 박 대통령을 뒤에 두고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당·정·청 등 권력의 3각을 압도하는 김 실장의 카리스마를 단적으로 표현한 단어였다. 하지만 이제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자연스럽게 ‘무성대장군’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김 대표의 원래 별명인 ‘무대’(김무성 대장)의 ‘대장’에서 ‘대장군’으로 격상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춘대원군과 견주는 표현으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무력을 쥔 대장군이 왕실에 칼을 겨누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여권의 권력 축으로 떠오른 김무성 대표가 당권을 거머쥐면서 권력의 추가 급속히 김 대표에게 쏠릴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는 김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당권만 챙긴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김 대표가 권력의 중심부로 복귀하면서 그는 단숨에 여권의 차기 대권 주자로 위상이 격상됐다. 리얼미터가 전당대회 직후인 7월15~16일 실시한 여권의 차기 대권 주자 조사에서 김 대표는 14.5%의 지지를 얻어 김문수(12.9%), 정몽준(8.7%)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전당대회가 열리기 전주에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 김 대표가 3위(8.0%)를 차지하는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그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이른바 ‘무성대장군’의 위세에 옛 친박 주류도 압도당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전당대회 이전 ‘김무성 대표 불가론’을 강력히 주장했던 원외 친박 주류 인사는 기자에게 “서청원 의원이 친박을 대표할 만한 인물로는 너무 과거 이미지이고, 국민에게 신뢰를 잃은 여당의 현주소로 봤을 때도 차라리 김무성 의원이 대표가 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김무성 불가론’이 ‘김무성 불가피론’으로 바뀐 셈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신임 대표와 최고위원, 원내지도부가 7월15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순국선열에게 참배하기 위해 가고 있다. ⓒ 연합뉴스
“문고리 권력은 김 대표와 급이 다르다”

김무성 대표가 여권 내 역학관계에서 힘을 받는 구도가 되면서 청와대의 비서 권력도 일정 정도 쇠락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이른바 ‘비서진 3인방’의 힘이 상당 부분 빠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들의 배후로 계속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의 과거 비서실장 출신 정윤회씨는 일명 ‘그림자 권력’으로 통한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이들은 과거 친박 주류와 상당한 교감을 갖고 있고, 이를 통해 당을 배후에서 컨트롤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 대표도 그동안 “소수 중간 권력자들의 권력 독점에 비분강개를 느낀다” “소수 청와대 관계자가 당내 일부하고만 소통해 박 대통령에게 잘못된 여론이 전달됐다”며 문고리 권력을 비판했다.

여권 권력 중심이 ‘기춘대원군’에서 ‘무성대장군’으로 옮겨갈수록 비서진 3인방의 운신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김 대표 측 한 인사는 “김 대표가 문고리 권력을 직접 상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급이 다르다”는 말로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실장과 비서진 3인방의 갈등설에 이어, 최근에는 3인방 내부의 갈등설까지 불거지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청와대 행정관 인사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알력이 있었다는 게 갈등설의 요지다.

군신 관계보다는 수평적 동지 관계를 요구하는 김무성 대표가 당권을 거머쥔 집권 여당의 운명을 지켜봐야 하는 박 대통령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직면한 듯 보인다. 하지만 집권 2년 차로 여전히 50% 안팎을 넘나드는 견고한 지지층을 갖고 있는 박 대통령은 살아 있는 ‘현재 권력’이다. 박 대통령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측근이 김기춘 실장이라는 데 여권 내에서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런 면에서 기춘대원군과 무성대장군의 대결 구도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7월15일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오찬 회동 자리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동석했다. 통상 당 대표급과의 면담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관례지만, 이날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의 바로 오른쪽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옆으로 김 실장이 앉았다. 박 대통령의 오른쪽 옆으로 신임 당 대표와 청와대 비서실장을 나란히 앉힌 것이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가 미소를 지으며 환담을 나누는 사이, 이따금씩 카메라에 포착된 김 실장의 표정은 다소 굳어 있었다.

애초 김기춘 실장의 퇴진은 지난해 말부터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예상은 깨졌다. 박근혜정부 2기 내각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총리 후보자 2명과 장관들이 연이어 낙마하는 과정에서도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김 실장은 굳건했다. 친박 주류 측 핵심 인사는 김 실장의 거취 문제가 도마에 올랐던 지난 5월 말 기자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는 “김 실장의 거취는 7월 전당대회가 돼야 판가름 난다”고 말했다. 친박 주류가 굳이 전당대회를 그의 용퇴 시기와 연결 지은 것은 김무성 대표 체제에 대한 마지막 카드였던 셈이다.

김 실장은 김 대표와 비교하면, 연배로나 정치 경륜에서나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특히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출신으로 여전히 사정 라인을 꿰차고 있는 그는 집권 여당의 수장인 김 대표에게도 버거운 상대다. 김 실장을 청와대 그림자 권력으로 몰아붙이며 공격의 날을 세웠던 김 대표가 전당대회 이후, 김 실장에게 “형님”이라고 깍듯이 숙이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는 데도 이러한 역학관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보수 혁신의 아이콘’ 강조하는 속뜻은?

김무성 대표 체제의 여당과 김기춘 실장이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버티고 있는 청와대 간의 다툼은 당분간 수면 위로 부상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빈다’는 김 대표 쪽이나, 당원의 의사로 결정된 신임 당 지도부를 쉽게 생채기 낼 수 없는 청와대나, 어느 한쪽이 먼저 싸움을 걸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경선 캠프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와 옛 친박 주류가 새로운 당 지도부를) 흔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 그쪽도 안다. 하지만 그쪽에서 우리를 공격하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로선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측면이 있다. 대표에게 보장된 임기는 2년이다. 당권의 핵심은 역시 2016년 4월 총선 공천이다. 총선 공천의 헤게모니를 쥐려는 김 대표 측과 청와대 및 친박 주류 간의 갈등은 갈수록 심화할 것이다. 일찍부터 힘을 뺄 이유가 없다. 정치 단수가 높은 김 대표는 누구보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비록 2위로 밀렸지만 친박의 맏형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친박 내부에서는 전당대회 이전 ‘김무성 1위, 서청원 2위 시나리오’를 상정해놓고, 서청원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거나 회의를 보이콧하는 안 등을 두고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대 이후 서 최고위원은 건강을 이유로 계속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고 있다. 존재감 없는 최고위원으로만 머무르지는 않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김 대표는 청와대 그리고 옛 친박 주류와 건곤일척의 승부를 위해 힘을 비축할 것으로 보인다. ‘인사 탕평책’을 공언한 김 대표는 7·30 재·보궐 선거 이후 비주류까지 끌어안는 당직 인사를 단행한 후, 당 혁신을 화두로 내걸고 여당 내 장악력을 키워나갈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의 경선 캠프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권오을 전 의원은 “김 대표가 출마 선언 때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이 새누리당을 보수 혁신의 아이콘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도 “(보수 혁신 아이콘에 대한) 의무감에 불탄다”며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이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김 대표가 ‘보수 혁신의 아이콘’을 위해 첫 번째 전제로 내세운 것이 ‘기득권 포기’다. 이는 그동안 당내에서 기득권을 행사한 이들의 적폐를 뜯어고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기득권 포기 대상 1순위가 옛 친박 주류라는 점은 자명하다. 이 과정을 통해 당내에서 ‘박근혜’의 색은 옅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무성 대표가 당이라는 튼튼한 진지를 구축한 후 큰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김문수, 유승민, 김태호 ⓒ 시사저널 이종현
김무성 대표 체제가 등장하면서 새누리당의 비주류 계파를 형성해온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정몽준 전 의원 등의 위상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7월15~16일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들은 김무성 대표에 이어 나란히 차기 대권 주자 2위(12.9%)와 3위(8.7%)를 차지했다. 김 전 지사와 정 전 의원 모두 당내 영향력이 약하다는 점이 그동안 단점으로 꼽혔지만, 김 대표가 7·30 재·보궐 선거 이후 단행할 당직 인사에서 이들과 가까운 인사들이 기용될 경우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 대표 경선에서 3위와 4위를 차지하면서 최고위원을 꿰찬 김태호·이인제 의원도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인물들이다. ‘범(汎)친박’계로 분류되는 유승민 의원을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유 의원은 당 대표 경선과 관련해 “서청원 의원을 지지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관심을 모았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이 청와대와의 갈등으로 인해 비박으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TK(대구·경북)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친박을 발판으로 자기 정치를 하려는 포석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유 의원은 초선 의원을 중심으로 한 당내 쇄신파 그룹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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