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헤매다
  • 감명국·조해수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4.07.1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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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속은 김한길 대표가 다 챙기고 욕은 혼자 다 뒤집어써”

 “(7·30) 재보선에서 (15곳 중 야당이) 8 대 7로만 이겨도 여당의 심리적 과반수는 무너진다. 무엇보다 상임위는 대부분이 여야 동수로 구성된다. 그 정도로 이번 재보선이 중요한데…. 지금 우리 당 (공천하는 상황을) 보면 참 안타깝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7월8일 기자와의 대화 도중 공천 문제가 나오자 목소리를 높였다. 후보자 등록 마감일을 사흘 남겨두고 공천 상황이 여전히 불투명한 가운데, 당내 분란만 가중되는 데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야당이) 새누리당 좋을 일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안철수, 야권 차기 대선 후보 3위로 밀려

‘안철수·김한길 체제’의 첫 작품이 선을 보였다. 새정치연합의 7·30 재보선 공천이 7월10일 최종 확정됐다. 지난 3월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의 통합 이후 두 대표의 공동 체제에서 한 차례 6월 지방선거를 치렀지만,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더구나 이번 재보선은 역대 최대 규모인 15개 지역에서 벌어지는 ‘미니 총선’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박 의원은 최소 8 대 7을 승리의 마지노선으로 잡았지만, 실제 당내에서는 “한 곳 더 이겼다고 승리로 보기 어렵다. 10 대 5, 최소 9 대 6은 돼야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주로 친노와 486그룹 등 구주류 쪽에서 나온다.

ⓒ 안철수 제공
새정치연합 내에서는 15개 지역 가운데 호남 4곳 전체와 수도권 6곳 중 4곳(서울 동작 을·수원 을·수원 정·평택 을) 등 총 8곳은 당연히 이겨야 한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나머지 수도권 2곳(수원 병·김포)과 충청 3곳 등 5곳에서 한두 곳을 이긴다면 전체적으로 새정치연합의 승리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열세 지역으로 분류된 수원 병과 김포 역시 대선 주자급인 손학규·김두관 상임고문이 직접 후보로 나서는 만큼 승리해서 10 대 5로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다.

안철수·김한길 대표 등 당 지도부는 이런 분석이 부담스러운 눈치다. 재보선 결과를 놓고 구주류 쪽에서 신주류를 공격할 빌미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6·4 지방선거에서도 드러났듯이, 정당 지지율만 따져도 새누리당에 비해 4 대 6으로 열세인데, 9 대 6 또는 10 대 5의 승리가 본전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신주류 측 수도권 재선 의원)고 반문한다. “휴가철 투표율 하락 등을 감안할 때 8 대 7이면 충분한 승리”라는 반박도 이어진다. 주로 김한길 대표 쪽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온다. 겉으로는 “8 대 7만 해도…”라고 한 발 빼지만, 은근히 9 대 6 또는 10 대 5의 압승도 기대하는 눈치다.

같은 지도부지만 안철수 대표 쪽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 아니 나쁘다. 한 당직자는 “최근 며칠 동안 안 대표의 얼굴에서 진짜 미소를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진심 캠프(2012년 대선 때 안철수 후보 캠프) 출신의 한 인사는 “마음고생이 심한 것 같다. 제대로 정치 수업을 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7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안 대표, 주변에 “김한길 측에 당한 것 같다” 말해’ 기사에 대해서는 “안 대표가 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류가 (친안철수계 내에)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공천 파동’으로까지 불리는 최근 새정치연합의 상황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김한길의 노회함과 안철수의 아마추어리즘이 빚어낸 참극”이란 표현을 썼다. “실속은 김 대표가 다 챙기고, 욕은 안 대표 혼자 다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율 명지대 교수는 “안 대표가 2017년 대선에만 마음이 가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실제 안 대표의 오랜 지기(知己)로 알려진 정치권 밖의 한 측근 인사는 얼마 전 기자에게 “안 대표는 2017년 대선이 마지막 승부처다. 되든, 안 되든 2017년에 결판을 봐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치권에 오래 남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안 대표가 지난 3월 김 대표와 전격적으로 통합을 선언했을 때 많은 사람은 둘 간의 ‘대권 밀약설’을 의심했다. ‘킹메이커’적인 능력이 뛰어난 김 대표의 지원을 등에 업고 안 대표가 조기에 대권 가도에 올라탔다는 분석이었다. 두 사람의 연합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윈윈 전략’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분명한 전제조건이 붙는다. 안철수 대표의 대선 후보 지지율이다. 당시만 해도 안 대표는 야권에서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부동의 1위였다. 민주당 비노(비주류) 진영에서는 “안 대표가 민주당으로 들어와서 대선 후보가 되어야 한다”며 애타는 러브콜을 연쇄적으로 쏟아냈다.

김 대표, 박광온·정장선·권은희 등 공천 챙겨

안철수 대표의 현주소는 초라하다. 4개월 만에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3위까지 떨어졌다. 6·4 지방선거 이후 안 대표의 독주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인 6월6일 실시된 한국일보의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는 재선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17.5%로 1위를 차지했다. 안 대표는 문재인 의원에게도 밀려 처음으로 3위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이런 구도는 한 달 넘게 굳어지는 추세다. 7월4일 리얼미터 발표에 따르면 박 시장(16.2%)과 문 의원(15.5%)이 오차 범위 내에서 치열한 1위 경합을 벌이고 있고, 안 대표는 한참 떨어진 11.0%로 야권 인사 가운데서도 3위에 머물렀다. 안 대표가 정치권에 입문한 후 최대의 시련에 직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 정치’에 대한 실망감이 안 대표의 발목을 잡았다. 6·4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불거졌던 ‘자기 사람 심기’ 논란은 안 대표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안 대표는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인식되는 광주에 자신의 측근인 윤장현 후보를 전략공천했다. 안 대표 역시 기존의 ‘보스 정치’와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안 대표의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 재보선 공천 과정에서도 문제가 불거졌다. 광주 광산 을 공천을 신청한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서울 동작 을에 전략공천했다. 동작 을을 준비하고 있던 자신의 측근 금태섭 전 대변인에게는 수원 영통에 공천을 주려고 하다가 당내 반발로 무산됐다. 원칙은 물론 전략도, 명분도 없다는 비판 여론이 비등해지자 당내 구주류 측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안 대표에게 비난의 화살을 집중시켰다. 곁에 있던 김 대표는 아무런 힘이 안 됐다.

반면 김 대표는 ‘조용히’ 자신의 사람들을 심었다. 수원 정 지역구에 공천된 박광온 대변인과 평택 을의 정장선 전 사무총장은 김 대표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논란이 일고 있는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광주 광산 을 전략공천도 김 대표의 작품이다. 권 전 과장은 7월9일 공천이 확정된 후 “계속 출마 권유를 받았다. 고민 끝에 오늘 김한길 공동대표와 통화하고 출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 쪽에서 권 전 과장을 접촉한 것은 지난 6월부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 전 과장뿐만 아니라 대전 대덕 출마자로 이름을 올렸던 최명길 전 MBC 앵커도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 접촉에 나선 이는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6월5일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에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새정치연합은 광산 을을 두고 경선과 전략공천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이 와중에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은 경선을 주장하며, 만약 전략공천이 이뤄질 경우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뜻을 시사하기도 했다. 당의 한 중진 의원은 “결국 광산 을은 권은희로 갈 듯하다. 그가 아닌 다른 후보가 나서면 십중팔구 천정배가 무소속으로 나온다. 하지만 권은희가 나오면 천정배가 무소속으로 나올 명분을 잃게 된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 인사의 예상은 적중했다. 권 전 과장에 대한 전략공천이 발표되자 천 전 장관은 승복하고 불출마를 밝혔다.

마치 모든 공천 시나리오가 김 대표 측 의도대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이런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김 대표의 ‘밀실 정치 스타일’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당 공식 기구인 공천심사위원회가 아닌 김 대표와 측근 몇몇이 공천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야당 고위 관계자는 “(야당이) 박근혜정부를 두고 ‘비선 조직이 인사에 개입하고 있다’고 공격하는데, 우리(야당)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공천에 비선이 움직이는 느낌이다”고 비판했다.

“안 대표, 당내 의원들 정서 못 읽어”

새정치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안 대표는 새 정치를 말하기 전에 정치를 좀 더 알아야 할 것 같다. 아직 아마추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안 대표가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해 절대 불가라고 천명했지만, 당내 의원들 정서를 제대로 못 읽은 결과다. (야당이 이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의견은 내되 청문회 보고서 채택 자체를 거부하거나 막진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화력을 김명수에게 집중할 것”이라며 안 대표를 비판했다. 7월7일 이병기 후보자 인사청문회 결과를 보면 이 중진 의원의 예상은 적중했다. 야당은 이 후보자 보고서 채택에 동의했다. 

안 대표의 서투른 정무 감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이어진다. 당장 통합 전에 안 대표 영입론을 강하게 주장했던 조경태 최고위원은 최근 안 대표에 대해 날을 세우고 있다. “원칙에 맞게 공천을 했나”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동작 을 공천 과정의 파행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박원순 시장의 측근으로 통하는 기동민 전 서울시 부시장이 당초 광산 을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가 동작 을에 전략공천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박원순 시장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속으로 상당히 (안 대표가) 못마땅할 것이다. 느닷없이 기동민 전 부시장을 광주에서 서울로 끌어올린 데 따른 불만이다. 무엇 때문이겠나. 안 대표가 박 시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차기 대권을 차지하기 위해선 광주를 비롯해 호남 지역을 반드시 안고 가야 한다.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박 시장으로선 기 전 부시장을 통해 광주 교두보를 만들려고 한 것일 수 있다. 이를 안 대표가 원천봉쇄한 것이다. 그 구실로 자기 측근 금태섭 전 대변인을 동작 을에서 희생양 삼은 것이다. 안 대표는 정치를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안 대표가 광주를 선점하려는 노력은 지난 6·4 지방선거에서도 드러났다. ‘자기 사람’인 윤장현 후보를 전략공천했고, 지방선거 내내 광주에만 집중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경기·인천을 여당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새 정치를 표방한 안 대표에게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동작 을에서 새누리당의 나경원 후보에게 패하기라도 한다면, 그동안 끓어오르던 당내 갈등이 한꺼번에 터져나올 수 있다. 벌써부터 야당 일각에서는 7·30 재보선 이후 조기 전당대회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새 정치를 표방한 안 대표가 냉혹한 현실 정치 앞에서 길을 잃은 모습이다.            

 

7월5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송파구 장지동 위례신도시에서 재선 후 첫 현장시장실을 열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뉴시스
불과 며칠 전까지 “광주의 아들”을 외쳤던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서울로 되돌아온 이후 혹독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동작 을 전략공천이라는 당의 갑작스러운 결정이 황당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친한 동지이자 아우인 허동준 전 새정치연합 동작 을 지역위원장과 공천을 놓고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해야 했던 탓이다.

기동민 후보 입장에서는 어차피 공천을 수락한 마당에, 이제는 비정하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이겨야 한다. 황금같이 귀한 시간을 날리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데 선거 구도가 그리 녹록지 않다. 6·4 지방선거 때 이 지역에서 박원순 시장(57.89%)이 정몽준 전 의원(41.35%)을 16.6%포인트 차로 여유 있게 따돌렸지만, 당시는 박 시장이 야권의 단일 후보였다. 하지만 이번엔 야권 후보끼리 박이 터진다. 기 후보보다 오래 대중 정치인의 입지를 닦은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가 지역구를 갈아타고 동작 을로 왔고, 10년 넘게 지역 활동을 펼쳐 지난 총선에서 5% 넘는 ‘기적의’ 득표율을 일군 김종철 노동당 후보도 출마했다.

설령 기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된다 하더라도 본선에서 더 험난한 상대를 만난다. 새누리당이 나경원 후보를 차출하면서 ‘박원순 대 나경원’의 리턴매치가 됐지만, 인지도가 높은 나 후보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실제 7월10일 한국일보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나 후보는 다자대결 구도에서 51.9%의 지지율로 기 후보(22.3%)와 노회찬 후보(14.1%)를 크게 앞섰다. 나경원-기동민 양자 구도에서도 나 후보는 53.9%로 기 후보(36.4%)를 압도했다.

이번 재보선을 통해 원내 창구를 마련하려던 박 시장도 머쓱하게 됐다. 박 시장은 7월3일 서울시장 재선 후 첫 지방 출장으로 광주에 내려가 “광주에서 박원순의 변화를 일구겠다”는 기 후보에게 힘을 보탰다. 5·18 국립묘지 참배에도 옆자리를 지키게 했다. 박 시장은 기 후보가 동작 을에서 이겨야 본전, 지면 셈법이 복잡하게 된다. 기 후보가 본선에서 패하면 당장 차기 주자로서 ‘박원순의 확장성’에 물음표가 붙을 수 있다. 하지만 박 시장보다 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사람은 안철수 공동대표라는 분석도 나온다. 동작 을 지역 선거 패배라는 최악의 결과에 따라서는 자칫 측근(금태섭 전 대변인)도 잃고, 동지(박원순 시장)도 잃고, 명분마저도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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