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 비리 한통속 ‘세리’들을 어떻게 믿나”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3.0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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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비판한 대검찰청 ‘세무 분야 부패 실태 조사·분석’ 보고서

국세청에 대한 검찰의 불신이 상당하다. 최근 한 검찰 관계자는 “뻔히 냄새가 나는데도 (국세청이) 고발하지 않으면 수사 자체를 할 수 없으니 참 답답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탈세 범죄 수사에 대한 고충을 토로한 것이다. 대기업 세무조사 때 범죄 혐의가 보이는데도 국세청에서 고발 없이 넘어가면 수사를 할 수 없다는 푸념이었다. 국세청의 ‘봐주기’ 식 세무조사 행태에 대한 검찰의 불만과 의심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세청을 향한 검찰의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검찰 내부 보고서를 시사저널이 입수했다. ‘세무 분야 부패 실태 조사·분석’이라는 보고서다. 총 113쪽 분량으로 2012년 8월 대검찰청이 서울 소재 한 대학 연구소에 조사를 의뢰해서 만들었다. 세무 비리 실태와 국세청 세무조사의 한계를 지적하고 대검 내 탈세 조사 부서 설립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서울 종로에 있는 국세청 본청. ⓒ 시사저널 최준필, 오른쪽 사진은 대검 내부 보고서인 ‘ 세무 분야 부패 실태 조사·분석’ 문건. ⓒ 시사저널 임준선
“검찰 내에 탈세 조사 부서 신설해야”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이 보고서에서 세무 비리의 양 축으로 납세자와 함께 세무공무원을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보고서는 서두에서 세무 부패를 “공무원의 비리와 납세자의 탈세를 포함한 개념”이라고 정의한 데 이어 “이러한 개념적 정의에 의하면 납세자와 세무공무원, 그리고 이들 사이에 있는 세무 대리인 간의 부패 네트워크 분석이 중요하다”고 정리했다. 또 통계 자료를 통해 “국세청의 경우 공무원 범죄 중 뇌물 수수 비율이 일반 공무원에 비해 2배가량 많고 증가율도 높다”며 “세무 부패의 심각성이 증대되는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세무조사 현황에 대해서도 “국세청이 양보다 질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세무조사 운영 방식을 혁신하며 조사 건수는 줄이고, 고의적·지능적 탈세자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하며 조사 비율이 낮아지는 추세라고 하지만, 탈세와 같은 세무 부패를 근절하기에는 조사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세목별 부패 사례와 세무 부패 관련 실태 조사’ 항목에서는 세무 비리 행태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우선 소득세 비리와 관련해 “세무조사 대상의 임의적 선정이나 세무조사 결과에 따른 응당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등의 부조리 행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음과 같은 실제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ㅅ세무서는 납세 성실도 점수 최하위자와 최상위자를 바꿔치기해 지침상 1순위로 선정됐어야 할 사업자는 세무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조사 대상에 선정되지 않아야 할 사업자를 포함했다.’ ‘ㅍ세무서의 한 직원은 자신만의 지침을 만들어 조사 대상 선정에서 배제됐어야 할 일자리 창출 사업자 6명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해 세무조사를 받게 만들었다. 또 정작 세무조사를 받아야 할 6명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보고서는 또 상속세 및 증여세법과 관련한 부패 사례가 많다고 비판했다. 상속세와 관련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조사 대상을 임의적으로 선정하거나 원칙을 어긴 세무 행정으로 조사 대상자는 빠지고 엉뚱한 사람이 조사를 받는 등 부조리 행태가 나타날 수 있음”이라고 지적했다. 또 세무 분야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두 차례에 걸쳐 세무 부패에 대한 실태 조사 및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내용도 있다. 이를 통해 납세자의 인식, 세무조사 인력 부족 등이 세무 부패의 원인이라는 결론을 냈다. 납세자가 가장 크게 불만을 느끼는 것으로 “세무조사 선정 과정에서 기준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 없는 조사의 불공정성”을 꼽았다.

이 보고서는 결론 부분에서 ‘검찰이 탈세 조사 부서를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국세청 세무조사과 인력으로는 제대로 된 세무조사가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미국의 경우 법무부(검찰 기능 수행)에서 국세청과 마찬가지로 조세담당부를 운영해 탈세를 막기 위한 노력을 수행한다. (중략) 따라서 우리나라의 검찰청 내에도 조세 전문가로 구성된 부서를 만들어 탈세를 방지해 조세 정의를 실현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직접 부서를 신설해 세무 비리 근절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국세청에 대한 검찰의 이와 같은 불신이 가중되던 시기에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된 바 있다. 지난해 11월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CJ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징역 4년의 실형을 받았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국세청은 정치권으로부터 “봐주기 세무조사로 동양 사태를 키웠다”는 질타를 받았다. 당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소속인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국세청이 세무조사로 7000억원에 이르는 동양그룹의 비자금 조성 및 탈세 혐의를 포착하고도 검찰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무마시켰다”고 비판했다.

2013년 7월30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관계자들이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뒤 압수 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 연합뉴스
‘세무 비리 감찰 TF’팀, 하위직에만 칼 들이대

국세청의 ‘봐주기’ 논란은 검찰 고발이 이뤄지지 않고 조사가 자체적으로 마무리될 때마다 터져 나왔다. 최근 마무리된 롯데쇼핑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검찰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국세청은 롯데쇼핑에 세금 탈루 등의 혐의로 600억여 원의 추징금을 부과하고 지난 2월5일 세무조사를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국세청은 별도로 검찰 고발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600억원이나 추징을 하면서 고발할 혐의가 없었다고 하니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럴 거면 왜 120일 동안 조사하고 80일간 연장 조사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올해 세무조사 건수를 지난해보다 줄이고 조사 기간도 단축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 등 탈세 가능성이 큰 분야를 중심으로 세무조사의 고삐를 더욱 죈다는 계획이다. 성형외과 등에서 고객에게 현금 결제를 유도해 세금을 탈루해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결국 국세청의 올해 성과는 현장에서 얼마나 투명한 조사가 이뤄질지가 관건이다.

국세청은 검찰과 정치권 등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했음인지 지난해 5월 ‘세무 비리 감찰 TF’팀을 출범시켰다. 자체적으로 세무 비리를 청산하겠다는 자구책이었다. 이 팀은 이후 어떤 활동과 성과를 거뒀을까. 확인 결과 지난해 해당 TF팀은 비리를 저지른 22명의 내부 직원을 적발했는데, 이 중 21명이 6급 이하 직원으로 밝혀졌다. 그나마 15명은 가장 강도가 낮은 ‘견책’ 조치를 받는 데 그쳤다. 김현미 의원은 “잇따른 세무비리에도 불구하고 국세청은 세무조사에 관해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세무조사에 대한 외부 감시제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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