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vs 표절 ‘더러운 전쟁’
  • 정락인·조유빈 기자 ()
  • 승인 2014.01.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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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이재명 성남시장의 치고받기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불법 사찰 논란이 뜨겁다. 이재명 성남시장(민주당)은 지난 1월7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국정원 직원이 자신의 주변을 광범위하게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 단체장을 흠집 내려는 의도라며 국정원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 시장에 따르면 성남시를 담당했던 국정원 조정관(IO) 김 아무개씨가 지난해 5월부터 자신의 석사 논문 표절 논란과 공무원 인사 정보, 공사·용역 수의계약 현황 자료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시장은 국정원 직원 김씨와 가천대 서 아무개 부총장이 나눈 대화도 공개했다. 국정원 조정관 김씨는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약 7개월간 성남시를 담당했다.

1월7일 이재명 성남시장은 국정원의 정치 사찰과 선거 개입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연합뉴스
국정원은 이재명 시장의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발끈했다. 이 시장의 기자회견 이후에 낸 보도자료를 통해 “이재명 성남시장이 정치적 목적으로 무책임한 거짓 주장을 한 데 대해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하고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강력히 대응할 계획”이라고 반박했다.

이 시장도 법적으로 맞대응하겠다고 밝혀 양측의 공방은 ‘소송전’으로 번질 태세다. 이재명 시장의 주장대로 국정원이 불법 사찰을 했다면 지난 대통령 선거에 이어 6월 지방선거까지 관여하려 했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 반면 이재명 시장이 ‘석사 논문 표절’로 코너에 몰리자 국정원을 끌어들여 여론을 전환시키려는 노림수라는 지적도 있다.

국정원의 ‘이재명 시장 사찰’ 의혹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 시장이 사찰 근거로 삼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자신의 석사 논문 표절 시비와 관련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동향 파악을 했으며 논문 제출을 요구했다는 주장이다. 이 시장의 논문 표절 의혹을 처음 제기한 곳은 변희재씨가 운영하는 ‘미디어워치’ 산하 연구진실성검증센터다.

지난해 9월13일 미디어워치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2005년 경원대(현 가천대) 행정대학원에 제출한 석사 학위 논문을 검증한 결과 ‘논문 검증 이래 최대 규모 연구 부정행위를 했으며 논문의 50~98%가 표절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이 시장의 논문 내용 중 최소한 절반이 명백한 표절이고, 어쩌면 전부가 표절일 수 있다는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표절 원본이라고 인터넷에 올라온 논문과 이 시장의 논문을 비교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불법 사찰 3대 의혹 제기

두 달 뒤인 12월20일 20여 개 성남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성남시민사회단체협의회는 ‘이재명 성남시장 석사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서한’을 민주당에 전달했다. 협의회는 성남시에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한 입장을 촉구하는 공문을 접수했고, 가천대를 방문해 대학 차원의 신속한 조치를 주문하기도 했다.

성남시를 담당했던 국정원 직원 김씨가 가천대를 방문한 것은 10일 후인 12월30일 오전이다. 그는 가천대 서 부총장을 찾아가 이 시장의 석사 논문 표절 시비 내용을 전달하고, 해당 논문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서 부총장은 석사 학위 논문 표절 시비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는 전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 직원이 서 부총장에게 논문 표절 시비 내용을 전달하고 해당 논문을 요구함으로써 이 시장을 비방하고, 표절 논란 사실을 유포했다는 것이 이 시장의 주장이다. 그는 “학교 측의 대응 조치 및 동향을 파악함으로써 국정원의 직무가 아닌 특정 정치인 사찰, 정보 수집 활동을 했다. 이는 국정원법 3조 위반”이라며 “국정원이 가천대를 압박해 논문을 취소하도록 함으로써 논란을 확대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해명은 이 시장의 말과 다르다. 직원 김씨가 가천대에 가서 서 부총장을 만난 적은 있지만 이는 석사 논문을 요청하러 간 것이 아니고, 대학 관계자와 친분이 있어서 학교에 차를 마시러 갔다는 것이다. 또 자료 요구를 한 바 없고, 논문 표절에 대한 얘기가 있어서 가볍게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라고 했다.

하지만 이 시장과 대학 관계자, 국정원 직원이 통화한 내용을 보면 조정관 김씨가 가천대를 찾아가 참고하겠다며 논문을 요청한 것으로 돼 있다. 이 시장 측이 김씨에게 확인 전화를 하니 김씨는 “그런 적 없다”고 시치미를 뗐다.

국정원 직원 김씨는 국회도서관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논문을 왜 가천대에 요청했을까. 이에 대해 이 시장은 “논문을 굳이 자신에게 제출하도록 요구함으로써 학교가 모종의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논문 표절과 관련한 이재명 시장의 태도다. 지난해 9월 미디어워치에서 처음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한 이후 이 시장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변호사인 이 시장은 ‘법적 조치’에 나서지도 않고, 논문 표절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도 하지 않았다. 가천대가 표절 의혹에 대해 ‘소명’하라며 기회를 줬지만 이 시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이 시장은 ‘학위 반납’을 선택한다. 국정원 사찰 논란을 제기하며 연 기자회견에서도 표절에 대해 ‘사실이다’ ‘아니다’를 언급하지 않고, “석사 논문 표절 문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후보 등이 핵심 쟁점으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안이다”라며 “이러한 지방선거의 쟁점 현안 한가운데 국정원의 개입이 이뤄진 것”이라며 정치 사찰 의혹을 제기하는 데 그쳤다.

‘논문 표절’ 적극 해명 안 해 의심

결국 이 시장의 석사 학위 논문은 표절로 결론이 났다. 이 시장이 국정원 사찰 의혹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한 다음 날인 1월8일 가천대는 윤리위원회를 열어 이 시장의 논문에서 80% 이상 표절이 확인돼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가천대는 이 시장의 석사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해 학위 취소 절차를 밟고 있다. 가천대 연구윤리위원회는 지난해 말 이 시장의 논문 표절과 관련해 예비조사를 벌여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동안 이 시장은 자신의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소명하는 대신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이 논문과 관련한 석사 학위를 반납했다”고 밝혔었다.

이 시장의 석사 논문 제목은 ‘지방 정치 부정부패의 극복 방안에 관한 연구’로 2005년 경원대(현 가천대) 행정대학원에 석사 학위용으로 제출된 것이다. 논문 표절 의혹이 일자 이재명 시장이 ‘국정원 사찰’을 내세워 여론을 비켜가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장윤영 전 경기도의원은 “학위를 반납하면 소명 절차가 생략된다. 소명을 하지 않기 위해 학위를 반납한 것인데, 구두 통보만 되고 정식 반납이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논문 표절로 코너에 몰리자 ‘국정원 작업’으로 빠져나가려고 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미디어워치가 공개한 이재명 성남시장의 논문 표절 의혹 관련 자료.
둘째는 공무원 인사 정보 사찰 건이다. 국정원 조정관 김씨는 지난해 11월 성남시청 동관 6층 자치행정과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는 자치행정팀 김 아무개 주무관에게 성남시 기술심사팀장에서 사무관으로 승진한 김 아무개씨의 진급 시점, 현 근무처를 확인하며 인사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성남시는 지난해 11월1일자로 ‘비정기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당시 인사 발령 내용을 보면 승진자는 총 13명이었다. 이 중 김씨 성을 가진 승진자는 총 4명이다. 현직이 기술심사팀장인 사람은 없었다. 자치행정과에서 두 명의 승진자가 나왔는데 모두 ‘김씨’였고 일선 동장 직무대리로 발령이 났다.

성남시에서 국정원의 공식 출입처는 자치행정과로 알려졌다. 성남시 3개 구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이 부서의 주요 임무다. 그런데 국정원 조정관이 이 자치행정과 직원들과 정보 교류를 해왔다는 것이다. 성남시는 해당 직원이 누구인지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장윤영 전 경기도의원은 “국정원 직원이 자기가 담당하던 팀장이 승진하자 물어본 것일 수도 있다. 업무 교류를 하던 직원이 다른 곳으로 갔는데 찾아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이재명 시장이 제기한 의혹에 또 다른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국정원 측은 비정기적인 승진이 있어서 시청 직원과 그에 관한 대화를 나눴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듯

셋째는 공사 및 용역 수의계약 현황 사찰과 관련 자료 요구다. 국정원 조정관 김씨는 지난해 9월 수차례 성남시 일자리창출과에 찾아와 사회적기업과 시민 주주 기업 관련 자료 일체를 요구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주주 및 임원 명부 등이 포함됐다. 이 중 시민 주주 버스회사인 성남시민버스㈜는 2012년 1월에 설립돼 운영 중이다. 자본금 3억4500만원 규모인 이 회사는 시민들과 버스기사 등 100여 명이 주주로 등록돼 있다. 성남시민버스는 이재명 시장의 성과로 평가받는 사업 중 하나다. 일자리창출과 담당 공무원의 경위서를 보면 국정원 직원 김씨는 성남시민버스의 대표인 고 아무개씨의 신상을 자세히 캐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자리창출과 담당자는 정식 공문을 보내 요청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국정원 직원 김씨는 이번에는 감사원에 제출했던 자료를 재차 요구했고, 시 담당자는 공문을 요구하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결국 국정원 직원 김씨는 한 장짜리 ‘사회적기업 재정 지원 현황’ 자료를 받는 데 그쳤다. 국정원 직원 김씨는 또 성남시 청소를 대행하는 사회적기업 ㈜나눔환경의 임직원 명단 등도 요청했으나 개인정보를 유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이에 대해 이재명 시장은 국정원 직원의 ‘직권 남용과 직무 외 정치 사찰’이라며 이는 국정원법 제3조·11조·19조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측은 “지난해 성남시 관련 국정원 정보 수집은 RO(지하 혁명 조직) 내란 음모,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연계 수사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활동의 일환이었다”고 해명했다.

이 시장의 생각은 다르다. RO 수사에 관한 자료는 검찰에 이미 제출했기 때문에 국정원 직원이 요구한 것은 RO 수사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수원지검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해 9월12일 나눔환경과 관련된 자료를 요청했고, 성남시는 이를 제출했다.

국정원이 이재명 시장을 불법 사찰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은 법정에서 가려질 확률이 높다. 국정원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개입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이 시장이 논문 표절로 궁지에 몰리자 반전 카드로 국정원을 끌어들였는지는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국가정보원법은 제3조(직무) 조항을 통해 업무의 범위를 명확히 제한하고 있으며, 아울러 제9조(정치 관여 금지) 조항을 통해 ‘그 직위를 이용하여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그러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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