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선원을 100일이나 끌고 다녔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3.06.1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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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대림, 조업 중 실명한 선원 유족에게 유기 치사 혐의로 고소당해

원양어선 조업 중 부상당한 환자가 3개월 이상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가 합병증이 겹쳐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인권의 사각지대’ 가운데 한 곳인 원양어선에서 불행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부산에 사는 이경란씨(54)는 지난 5월 ㈜사조대림(대표이사 이인우)과 이 회사 소속인 선장 ㅊ씨, ㅂ씨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아무개씨 등을 유기 치사(보호하지 않고 사망케 함) 혐의로 부산해양경찰서에 고소했다.

사조대림은 1945년 서대양주식회사에서 출발해 대림수산으로 변경됐다가 2006년 사조그룹에 편입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내 수산업을 대표하는 회사인 사조대림은 어묵·게맛살·소시지·젓갈류 등 다양한 식품 시장에 진출해 종합식품회사로 성장하고 있다.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이씨의 남편 박동근씨(54)는 지난해 2월11일 사조대림 소속 원양어선 ㅊ호(선장 ㅊ씨)의 갑판장으로 승선했다. 출항 직전 박씨는 회사측의 요구로 건강검진을 받았고 ‘아무 이상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원양어선에서 참치를 잡는 모습. 본 기사와는 관련 없음. ⓒ AP 연합
출항 땐 몸무게 80㎏, 귀국 땐 50㎏

출항한 지 한 달 정도 경과한 지난해 3월 중순, 태평양 해상에서 조업하던 박씨는 참치를 낚는 주낙에 얼굴을 강타당했다. 이로 인해 왼쪽 눈에 큰 부상을 입었다. 박씨의 부인 이씨는 경찰에 제출한 고소장에서 ‘남편은 순간 심한 통증과 함께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그 다음 날에는 부상 부위의 통증이 지속되면서 바다 수평선이 이중 삼중으로 보이는 등 시력 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씨는 ㅊ호에 승선해 있던 아무개 국장에게 눈 상태를 호소했으나, 그 국장은 “단순한 노안 현상이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박씨는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다.

부상을 입은 눈 부위는 계란만큼 부풀어 오르며 더욱 악화됐다. 박씨는 “눈 상태가 심각하다”고 호소하며 선장 등에게 치료를 위해 귀국시켜줄 것을 계속 요구했다. 박씨의 부인 이씨는 “당시 항해사는 (남편에게) ‘귀국시켜주겠다’고 하며 어떤 서류를 작성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눈이 잘 보이지 않고 통증 등으로 몽롱한 정신 상태에 있던 남편은 이를 귀국에 필요한 서류로 여기고 내용은 정확히 잘 모른 채 항해사가 불러주는 대로 작성해줬다”며 “그리고 (2012년) 5월 초순에 귀국시키겠다는 통보를 들은 남편이 나에게도 그렇게 연락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5월6일, 박씨는 또 다른 사조대림 소속 원양어선 ㅇ호(선장 ㅂ씨)로 갈아탔다. 당시 박씨는 눈과 원인 모를 온몸의 통증으로 식사도 제대로 못 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박씨는 “빨리 귀국시켜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했고, 선상 관계자로부터 “곧 도착한다”는 대답만 되풀이해서 들었다. 열흘 후인 5월16일쯤 치료 시기를 놓친 박씨는 왼쪽 눈이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됐다.

실명한 박씨는 사조대림의 또 다른 선박으로 옮겨 타야 했다. 건강은 더욱 악화된 상태였다. 의식도 가물가물해졌고, 기억력도 떨어졌다고 한다. 마침내 사고가 발생한 지 100일 정도 지난 6월29일에야 부산 감천항으로 입국하게 됐다.

부인 이씨는 “남편이 귀국할 때 내가 못 알아볼 정도였다. 왼쪽 눈은 계란 크기만큼 부풀어 있었고 반창고만 붙여진 상태였다”며 “출항 전 몸무게가 80㎏이었는데 50㎏으로 무려 30㎏이나 빠져 있었다. 거의 시신 상태였다”며 울먹였다.

박씨는 귀국하자마자 응급차에 실려 부산의 한 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하지만 치료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다시 부산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야 했고, 왼쪽 눈을 실명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정확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가서 검진한 결과 혈액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다시 부산으로 가서 항암 치료를 받았으나 이미 병세는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였다. 암은 급기야 척추로 전이돼 하반신까지 마비됐다. 휠체어에 의지해 하루하루 생명을 이어오다 지난 4월9일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사조대림 본사. ⓒ 시사저널 최준필
사조대림측 “할 말 없다”

박씨의 부인 이씨는 “남편은 그때 당한 눈 부상과 합병증으로 식사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심한 고통을 겪었다”며 “선장들은 남편에게 적절한 치료도 하지 않은 채 석 달 이상 끌고 다녔다”고 말했다. 선장들이 박씨를 방치하는 바람에 병세가 악화됐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주장이다.

유족측은 선장들을 고용한 사조대림 역시 환자를 장기간 방치한 것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의심한다. 회사의 지시 없이 선장이 독단적으로 조업을 중단한 채 기항이나 귀국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조대림측도 공동 정범이거나 교사(남을 꾀거나 부추겨서 나쁜 짓을 하게 함)의 책임이 있다고 유족측은 주장하고 있다.

사망한 박씨가 작성했던 수첩 일부가 뜯겨나간 것도 의문이다. 이씨가 남편의 수첩을 입수했을 당시 중요한 기록이 적힌 것으로 추정되는 수첩 앞부분 네 장이 뜯겨나가고 한 장만 남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씨의 변호인은 “책임을 면하려는 회사 관계자의 고의적 소행이라는 의심이 든다”며 “회사측의 조직적인 은폐 내지 축소, 조작 개입 우려가 있다. (수사 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사망 3일 전에 부인 이씨에게 “회사를 절대로 용서하지 마라. 하는 데까지 해봐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씨가 고소장을 제출한 이유다.

이씨는 “회사와 선장들이 항공 운항 경비 등을 아끼기 위해 남편을 즉각 송환하지 않았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사조대림 관계자는 6월13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이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에 기자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사조대림의 공식 입장을 듣고 싶다. 6월14일까지 답변 부탁한다’고 전했지만 회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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