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좌빨’ 공격하지만 보수가 이용당하고 있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5.2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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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글, 새누리당에서도 우려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터넷 사이트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언론에 오르내리며 이슈의 한가운데 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베’를 주제로 토론을 벌일 정도다. 자체 홍보를 하지 않는데도 알아서 해주니 일베는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할 판이다.

그런데 지금 일베는 그렇지 못하다. 유명세를 타면 탈수록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태생적인 한계에 봉착했다고 봐야 한다. 5월22일을 전후해 일베에 붙던 광고가 일시에 중단되며 돈줄이 막힌 것도 하나의 징후다. 일베는 게시 글에 대한 고소·고발이 이어지며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일베에 올라온 글의 선정성·폭력성에 비춰 당연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일베는 보수층을 대변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로 알려졌다. 과연 일베는 보수를 대변한 것일까. 아니면 보수가 일베를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 것일까. 일베가 처음부터 ‘보수 사이트’는 아니었다.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하면서 ‘보수 네티즌 커뮤니티’로 포장됐다.

일베의 뿌리는 네티즌 커뮤니티 문화의 원조로 일컬어지는 디시인사이드다. 처음에는 이곳 게시판에서 조회 수가 많은 글을 따로 모아 저장하면서 ‘일간 베스트’라고 명명했다. 그러다 보니 ‘정상적인 글과 제목’으로는 베스트 글이 되기 어려웠다. 더 자극적이고, 더 선정적이며, 더 음란한 내용을 올려야 했다. 디시인사이드측은 운영 규칙에 어긋난다며 일간 베스트에 오른 글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2010년 초 독립적으로 떨어져나가 커뮤니티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지금의 ‘일베’다.

ⓒ 시사저널 전영기
논리는 없이 저급한 말로 깎아내리기

일베 회원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는 자신의 글이 ‘베스트’에 오르도록 하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며 섬뜩한 내용으로 채웠다. 산 사람이건 죽은 사람이건, 심지어 범죄 피해자까지 마구잡이로 난도질하는 등 폭력적인 글이 난무했다. 일베의 뿌리인 디시인사이드에서 삭제당했던 글이 일베에서는 버젓이 올려졌다. 운영자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이런 글들을 그대로 놔두었다.

일각에서는 처음 커뮤니티 사이트로 독립하면서 이를 알리고, 디시인사이드에서 활동 중인 유저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디시인사이드에서 활동하던 유저가 일베로 대거 이동했다. 이때 상당수 보수 성향 네티즌이 일베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일베에는 특정 지역이나 정치인을 비하하거나 폄하하는 글들이 오르기 시작했다. 주로 전라도나 그 지역 주민을 비하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매도하는 글이 넘쳐났다. 반(反)호남 정서를 띠며 배설에 가까운 표현으로 지역주의를 조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진보 성향의 대통령이었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면서 일베는 점점 정치적인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보수 커뮤니티’의 대표 격이 됐다.

일베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을 보면 치밀한 논리보다는 저급한 말로 깎아내리기나 비하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폭동’이라고 규정짓고, 광주에 북한군이 투입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사실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광주 계엄군 진압의 최고 명령권자로 인식돼온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각하’ ‘전하’라는 극존칭을 쓰며 영웅시하고 있다. 수천억 원대에 이르는 추징금을 내지 않아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지만 이런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해 살해돼 길거리에 방치된 광주 시민에 대해서는 시신들이 부패해 나는 냄새를 빗대 ‘홍어 삭힌 냄새’와 비슷하다며 조롱하고 있다. 이런 일베 회원들에게 역사관이나 정의는 아예 없다. 친일파를 찬양하고, 일본 위안부 할머니들을 빗대 ‘원정녀 1호’라며 몸을 파는 창녀에 비유하고 있다.

일베를 보수층을 대변하는 대표 사이트로 만든 것은 지난해 총선과 대통령 선거다. 이들은 여당인 새누리당을 노골적으로 편들었다. 대선 때는 안철수 후보나 문재인 후보에 대해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며 깎아내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표를 의식한 정치권에서 한쪽은 일베를 두둔하고, 한쪽에선 일베를 문제 사이트로 지목했다. 그게 바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다. 싫든 좋든 정치권에서 선거 때마다 일베를 이용한 것이다.

보수층에서는 일베가 진보측에 의해 유해 사이트로 지목되자 감싸 안기에 바빴다. 정작 일베의 근본적인 문제는 뒤로한 채 진보측이 공격한다고 해서 무조건 두둔하려고 한 것이다. 보수 논객으로 알려진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조차 “(일베가) 표현의 자유를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돈벌이와 관계가 있다. 운영자가 판단해서 운영 원칙을 세워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일베와 관련된 사건을 보면 그들이 노리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 보수층 목소리를 대변하며 ‘보수 사이트’인 양 하지만 실제로 일베에는 보수에 대한 이념이나 원칙이 없다. 일베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더욱 심각하다. 일베에서는 ‘민주’ ‘호남’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만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저질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가령 엄마가 세수할 때 상체를 수그려 가슴이 보이는 것을 두고 ‘강간하고 싶다’고 올리는가 하면, 키우는 강아지와 수간을 하고 인증샷도 거리낌 없이 올린다. 범죄를 부추기고 그 방법까지 제시하는 등 대중 사이트로서 정상적인 수위를 한참 넘어섰다.

보수 등에 업고 자신들 행위 정당화

여성들의 신체를 들어 비하하거나 심지어 성폭행당한 피해자에게도 악플을 단다. 한쪽에서는 ‘보수 커뮤니티’를 지향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인신공격, 언어 폭행, 명예훼손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베에 ‘보수’ ‘진보’ 이념은 없다. ‘보수’를 등에 업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면서 해괴망측한 말로 관심을 끌기 바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일베에 의해 보수가 이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일베 운영진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최근 들어서야 점차 실체가 조금씩 드러났다. 일베를 처음으로 만든 것은 ‘새부’라는 닉네임을 쓰는 운영자다. 일베에 접속하는 유저가 늘어나자 ‘기술 지원’ ‘개발 고수’ ‘운영 담당’ ‘고객 담당’ 등의 운영진이 보강됐다. 일베의 총사령관 격인 새부는 언론의 추적을 통해 서울의 대형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30대 의사로 밝혀졌다.

운영자에게 일베는 그동안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5월23일 현재 일베는 전체 인터넷 사이트 순위 13위(랭키닷컴 순위)에 랭크돼 있다. 유머·재미 분야는 1위다. 1일 평균 접속자 수는 21만~23만명에 달한다. 그렇다 보니 광고 수익이 한 달 평균 7000만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일베 운영자가 12억원에 사이트를 매각했다는 설이 나왔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대신 운영자 새부가 5월22일 공지사항에 올린 글을 보면 현재 일베 사이트가 팔린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운영자 새부는 공지사항을 통해 일베 사이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유머 위주의 커뮤니티다. 자유로운 의견 표현과 풍자가 보장되며 정치적 성향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또 “인터넷 커뮤니티의 특성상 입증되지 않은 사실도 게시될 수 있고, 일베저장소 특유의 반말 문화로 말미암아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폄하하는 글들이 게시될 수 있지만, 모욕감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일 없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 불필요한 법정 다툼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겉으로 보면 회원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일베 운영자인 새부가 지금까지 일베의 문제를 수수방관하거나 조장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 그는 “운영진의 의견 개입은 사실상 ‘검열이다’”라고 했지만, 바꿔 말하면 일베에서 난무하고 있는 불법·탈법을 조장한 셈이다. 때문에 이렇게 막 나가다간 그가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존폐 기로에 선 일베

그는 이미 일베에서의 표현이 법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지난해 3월13일 공지사항을 통해 ‘명예훼손, 모욕죄의 고소 대상이 될 만한 글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불량 회원 강제 퇴출 등의 조치를 강력하게 취하지는 않았다. 법적인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그동안 수수방관해왔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일베와 국정원 연계설’은 오래전부터 나돈 얘기다. 지난해 12월15일 운영자 중 한 명인 ‘기술 지원’은 공지사항에 ‘국정원 지원 관련설’에 대해 “국정원과 연락조차 취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일베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검색어 중 하나가 ‘국정원 절대시계’다. 국정원은 간첩이나 중요 좌익 사범 신고 등을 한 사람에게 국정원 로고가 새겨진 시계를 증정해왔다. 그러다 보니 일베에서는 국정원 절대시계를 받은 사람들이 인증샷을 올리고 있다. 국정원에서 이런 신고자들을 초청해 ‘안보 강연’을 하는데 일베 회원들 중 일부가 강연 참가 예정자가 되면서 불러온 논란이다.

일베의 폭력성, 음란성, 무분별한 신상 털기 등은 위험 수위를 넘어 범죄 수준에 와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다른 이들에게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주는 것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베가 변하든, 문을 닫든 선택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 뉴스뱅크이미지
5·18을 기점으로 일베가 논란이 되고 있다.

납득할 수 없는 점이 있다. 이미 오유(오늘의 유머)에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욕설이 난무했는데 그때는 뭐하고 있다가 5·18에 대해서만 역사를 조작했느니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 자체가 여론 왜곡이다.

일부 게시물들이 표현의 자유를 넘어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광우병 거짓 선동 때 여대생이 경찰에 강간당해 죽었다는 글이 올라왔을 때 표현의 자유를 얘기하던 사람들이 지금 일베만 갖고 뭐라고 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그때 (다음) 아고라와 같다는 입장이다. 운영자의 문제다. 운영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정화시킬 수 있다. 당시 아고라 운영자가 선동했다. 일베는 자동 시스템이다. 지금까지 운영자는 방관자 입장이었다. 아고라도 그렇고 일베도 그렇고, 상업적인 사이트다. 자신들은 표현의 자유를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돈벌이와 관계가 있다. 운영자가 판단해서 운영 원칙을 세워 정리해야 한다.

일베를 두고 보수가 아닌 극우 사이트라는 비판도 있다.

그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이트든 운영자의 노선과 철학을 넘어서지 못한다. 아고라의 경우 극좌 노선이다. 운영자가 좌든 우든 갈 수 있다. 일베가 성장한 만큼 운영자 책임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동안 그런 문제를 피하려고 운영자가 숨어 있었다. 나름으로 잘해왔지만, 이제는 도리 없다. 운영자가 나서 정리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일베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광우병 때도 그랬는데 180도 말이 바뀌는 게 문제다. 이명박을 죽이자고 하는 것은 10대의 자유이고 혁명이라고 얘기했다. 당리당락에 따라 이용하는 것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국정원 초청 행사는 어떻게 보나.

일베는 하나의 게시판에 불과하다. 민주당에서 일베 글을 보는 사람을 모두 일베 회원으로 보고 거짓 선동을 하고 있다. 국가 안보 유해 게시 글을 신고한 학생들을 초청한 것이지 일베 회원을 초청한 것이 아니다. 일종의 포상 개념으로, 몇 년 된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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