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오염보다 일자리가 더 큰 문제”
  • 임수택 I 편집위원 ()
  • 승인 2013.02.1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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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 속도 내는 동일본 대지진·원전 사고 현장 르포

지난 1월21일 도착한 일본 센다이 공항은 포근했다. 후쿠시마가 고향인 사토 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유달리 큰 차를 가지고 나온 이유를 묻자 “눈이 많이 내려 이곳저곳을 달리려면 큰 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1년 6개월 전 동일본 대지진 당시의 미야기 현 나토리 시. 가옥과 건물이 쓰나미에 다 쓸려간 자리에 바다에서 떠밀려온 큰 배 두 척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던 곳이었다. 당시 붉게 물들어 죽어가던 나무들의 모습은 지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대지는 푸르게 변해 있었고 건물들도 제법 들어섰다.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는 말에 사토 씨는 “겉모습만 그렇지, 아직도 많은 사람이 가설 주택에서 불편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답했다. 미야기 현에서 후쿠시마 시로 향하는 풍경에서 여전히 상흔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지진의 피해를 입은 고속도로를 열심히 보수하는 모습이 보였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미야기 현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후쿠시마 현이 가장 피해가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문이다. 후쿠시마 현은 홋카이도 현, 이와테 현에 이어 일본에서 세 번째로 넓은 지역이다. 면적이 1만3천7백82㎢이다. 도쿄에서 2백km 이내 지역에 위치해 있고 니이가타 현, 야마가타 현, 도치기 현, 군마 현, 이바라기 현 등 5개 현과 인접해 있다. 후쿠시마 시는 원전 사고 지점에서 직선으로 70km 떨어져 있다. 사토 씨는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를 떠올리며 “후쿠시마 시도 피해가 없지는 않았지만, 외부에서 걱정할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역에서 60km 떨어진 후쿠시마 시내에서 한 종업원이 새로 문을 연 가게 앞에서 행사를 하고 있다. ⓒ EPaA 연합
“후쿠시마=방사능 오염 지역은 오해”

많은 사람이 그렇듯 방사능 유출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는 점을 사토 씨도 안다. “시내는 안전하다. 국내외에서 후쿠시마에 산다고 하면 그렇게 위험한 지역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걱정하는데, 오히려 제일 큰 걱정거리는 그런 소문이다”라고 말했다. 원전 사고 지점 인근은 당연히 위험하겠지만 70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은 괜찮다는 이야기였다.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크고 넓은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하면 현의 모든 지역이 방사능 위험 지역일 것이라고 외지인들이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후쿠시마 시에서 만난 사람들은 방사능 문제를 이미 오래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 문제에 집착하기보다는 오히려 쓰나미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하루빨리 주택을 지어주기를 바랐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자동차로 후쿠시마 현을 달려보면 이곳이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지역임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가도 가도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역이다. 사토 씨는 아즈마고 후지산을 가리키며 “산 정상에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잡을 수 있다. 일본에서 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라고 말했다. 눈이 많은 고장인 후쿠시마 현에는 복숭아나무가 많다. 이 지역의 복숭아는 일본에서도 맛있기로 유명하다. 제철이 되면 아주 비싼 값으로 일본 전 지역과 해외로 팔려나간다. 하지만 원전 사고 이후 판매량이 급감했고, 판매가 이루어지더라도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 중에서 최대 피해는 원전으로 인한 ‘소문 피해’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다시 해외 수출 길이 보이고 있다고 한다. 

나카마츠 야스히로 후쿠시마 현 제트로(일본무역진흥기구) 소장은 원전 사고로 중단되었던 후쿠시마산 복숭아 수출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8월 태국의 대형 백화점 두 곳과 레스토랑 회사 그리고 현지 농산물 수입회사 네 곳을 초청해 일본 복숭아 농장과 방사능 오염도 검사 절차 등을 상세히 보여준 뒤 먹거리의 안전성을 인정받았고 수출 계약으로 연결되었다. 태국뿐만이 아니다. 미국이나 칠레의 식품 바이어들을 초청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나카마츠 소장은 “지진 이전에는 한국에서도 후쿠시마산 청과물을 많이 사갔는데 현재는 모두 중단되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날 미야기 현 센다이 시에서는 흥미로운 간담회가 열렸다. 동북 지역의 복구 지원 프로그램 사업과 관련해 이와테 현, 미야기 현, 후쿠시마 현 3개 지역의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동북재생가능에너지협회 간담회가 이루어졌다. 간담회의 주된 테마는 태양광이었다. 참석자들은 일반 가정의 태양광 발전 보급 전략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관심은 중앙 및 지방 정부의 복구 프로그램 및 보조금 제도로 모아졌다. 미야기 현의 경우 일반 가정에서 태양광을 설치하면 약 43%의 보조금을 받게 된다. 그래서 태양광 설치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미야기 현에 사는 한자와 타이치 씨는 “지난해에는 불과 한 달 만에 1년분에 해당하는 신청 접수가 몰려 일찌감치 마감되었다”고 말했다.

일본 녹색 성장의 시험 지역으로 떠올라

미야기 현과 후쿠시마 현은 현재 일본 녹색 성장의 테스트베드(시험장)가 되고 있다. 중앙 정부 및 지방 정부 차원에서 태양광, 풍력, 지열, LED 보급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동북 지역에서 원전은 발붙이기 힘들어졌다.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원전은 51기인데 후쿠시마 원전이 폐쇄된 이후에는 50기가 운영되고 있다. 그중 간사이 지역의 오오이 원전만 가동하고 있고, 나머지 49기는 발전이 중단된 상태이다. 원전 가동이 중지되면서 천연가스 수입 등을 통해 부족한 전력분을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수입 부담금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에 태양광·풍력·지열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와 LED 제품 보급이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후쿠시마 현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일본 경기가 좋지 않은 가운데 유일하게 버블 조짐이 보일 정도로 돈이 도는 곳이 바로 동북 지역이다”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을 유지해나갈 수 있느냐 여부이다. 그래서 방사능이나 먹거리 문제보다 일자리 문제가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미야기 현이나 후쿠시마 현에서 동일본 대지진을 버텨낸 주민들에게 현재 먹고사는 문제는 심각하다. 일본 전체 경기가 좋지 않은 점도 있지만, 특히 지진과 쓰나미로 산업 기반이 무너지면서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해졌다. 미야기 현에서 해외 투자를 담당하는 한자와 씨는 “미야기 현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들에 각종 세제 혜택은 물론 고용지원금, 건물 개조 비용 등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다. 우수한 한국 기업들이 진출했으면 좋겠다”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후쿠시마 현 관계자나 이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대지진 복구 사업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끔씩 터지는 방사능과 관련된 기사들은 복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역 부근에서 잡힌 생선에서 약 25만4천 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되었는데, 이는 일본 정부가 정한 일반 식품 기준치의 2천5백40배에 달한다는 기사가 보도되고 있었다. 나카마츠 야스히로 소장은 “후쿠시마 현에서는 현재 주식인 쌀의 안전을 위해 모든 쌀 포대를 하나하나 컨베이너식으로 검사해 안전마크를 붙여 내보내고 있다. 사고로 통제된 지역 이외에서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살고 있으며 먹거리도 현지에서 생산한 것을 먹고 있을 정도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넓은 후쿠시마 지역이 모두 오염된 곳으로 오해되는 현상은,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후쿠시마와 여전히 지진의 피해 지역인 후쿠시마를 오버랩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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