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암 걸릴지 알고 싶어? 100만원 내고 유전체 검사해봐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12.3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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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직장인 김형민씨(가명)는 기자에게 아이패드(iPad)로 자신의 지놈(genome) 지도를 보여주었다. 지놈은 유전자와 염색체를 모두 의미하는데, 이를 해독하고 분석한 정보가 지놈 지도이다. 한마디로 인체 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지놈 지도에는 유전 정보가 담겨 있다. 이는 자신이 어떤 질병에 취약한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인류가 지놈 지도를 완성한 것은 2003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불과 10년 만에 김씨는 자신이 어느 병에 걸릴지 미리 알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세포 속에는 핵이 있다. 핵 속에는 23쌍의 염색체가 있고, 그 염색체는 단백질과 DNA로 구성되어 있다. DNA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다리를 꼬아놓은 모양(이중 나선 구조)이다. 그 사다리의 발판은 네 가지 염기(A, G, C, T)로 만들어져 있는데, A와 T 또는 C와 T가 붙어서 한 개의 발판을 이룬다. 이처럼 염기가 순서에 맞춰 30억쌍의 배열(염기 서열)을 만든다. 염기 서열에는 유전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김씨는 2년 전 자기의 30억쌍 염기 서열을 해독했고, 그 결과를 아이패드에 저장해놓았다. 인간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다. 아이의 염기 서열 99.9%가 다른 사람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인간이라도 생김새가 제각각이다.

피부, 머리카락, 눈 색깔이나 성격 등이 다른 이유는 염기 서열 중 0.1%에서 돌연변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즉, 1백50만~3백만개 염기 서열이 사람마다 다른 것(SNP; 단일 염기 다형성 변이)인데, 마치 지문처럼 개인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런 개인 유전 정보를 해독하고 분석한 것이 지놈 지도이다.

지놈 지도를 얻는 순서는 단순하다. ‘표본(샘플) 채취-DNA 추출-해독-분석’이라는 네 단계를 거친다. 김씨도 혈액을 뽑았고, 그 혈액에서 DNA를 추출했다. 혈액에서 백혈구만 가려낸 후 백혈구를 깨뜨리면 DNA가 나온다. 이 DNA를 초음파로 조각을 낸 후 염기 서열을 해독한다. DNA 조각을 유전체 분석기에 넣어 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다. 마치 컴퓨터 파일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암호처럼 되어 있어 이 상태로는 어떤 유전 정보가 담겨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해독한 자료를 소프트웨어로 분석하는 과정을 거친다. 컴퓨터 파일을 열어보는 셈이다. 김씨의 염기 서열을 건강한 사람의 염기 서열과 비교하다 보면 돌연변이 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A가 있어야 할 곳에 C가 있으면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셈이다. 김씨의 혈액으로 50여 개 암과 만성질환(당뇨병 등), 18개 약물(항암제, 혈액응고제 등)에 대한 부작용, 10여 개 신체 특성(비만, 혈압 등), 50여 개의 유전 질환(유방암, 대장암 등)에 대한 유전 정보 분석 결과가 나왔다.

30억쌍 염기 서열 중 3백60만개의 돌연변이가 발견되었다. 돌연변이가 다른 사람보다 많다고 해서 질병에 더 취약한 것은 아니다. 어떤 변이는 좋은 쪽으로 변화를 나타내기도 한다. 다른 사람보다 시력이 좋거나 키가 큰 사람이 그런 경우이다. 또 상당수의 돌연변이는 질병과 연관이 없다. 나쁜 쪽으로 변이된 염기 서열은 10만개 중에 100개꼴로 적다.

질병 가능성 미리 알고 예방한다

김씨는 유전적으로 알코올 분해 능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그는 술을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고 가슴이 심하게 뛴다. 그는 유전적으로 알코올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되도록 술을 마시지 않는다. 문제는 심혈관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난 점이다. 그는 “암이나 희귀 질환에 걸릴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지만, 심혈관질환에 취약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와 아버지 대의 모든 식구가 심혈관질환과 뇌혈관질환으로 사망했다. 그것이 나에게 유전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아이패드뿐만 아니라 USB 메모리(이동 저장 장치)에도 넣어 보관하고 있다. 30억쌍 염기 서열을 모두 해독한 유전 정보는 1Tb(테라바이트) 정도의 용량이다. 그러나 변이가 있는 3백만개 정도의 유전 정보는 10Mb(메가바이트)도 되지 않는다. 요즘 시중에 파는 USB 메모리에 충분히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다. 한국과 반대편에 있는 나라의 심혈관질환 전문가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또, 희귀 질환에 걸린 사람이 유전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하면 여러 전문가로부터 치료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심혈관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생활습관을 바꾸었다. 그는 “요즘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있다. 아침과 저녁에 걷거나 수영을 한다. 또 우리 집안이 육류를 좋아하는데, 나는 고기를 피한다.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도 의식적으로 피한다. 20년째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 심혈관질환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만약 심혈관질환에 걸리더라도 되도록 늦게, 가볍게 걸리도록 하는 것이다. 유전 정보를 몰랐다면 여전히 흡연하고, 육류를 즐기다가 갑자기 심혈관질환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유전 정보, 약물 효과도 미리 알려줘

김씨의 사례는 유전 정보를 이용한 예방 의료의 단면을 보여준다. 유전 정보는 예방뿐만 아니라 개인 맞춤 치료에도 유용하다. 예를 들어, 같은 췌장암 환자인데도 어떤 사람은 A라는 항암제로 치료 효과를 보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 항암제에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항암제는 암세포를 죽이지만 건강한 세포도 파괴한다. 환자가 암 때문이 아니라 항암제 때문에 죽겠다고 말할 정도로 항암제는 독하다. 항암제로 암을 치료하지도 못하고 몸만 상하면 항암 치료를 받은 의미가 없다. 현대의 치료법이 이렇다. A라는 항암제를 써보고 효과가 없으면 B라는 항암제를 사용하는 식이다. 효과가 있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환자만 골병이 드는 것이다.

특정 항암제에 차도가 있을지를 미리 알 수는 없을까? 그 해답은 유전자에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췌장암 치료 과정이다. 그는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았지만 2011년에 사망했다. 이 기간에 그는 수많은 치료법을 선택했다. 그중 하나가 항암 치료였는데, 수많은 항암제 중에 어떤 것이 효과를 보일지를 알기 위해 그는 유전자 검사를 했다.

유전체 검사자가 태블릿 PC로 자신의 유전체 분석 결과를 보고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하버드 대학·MIT·스탠퍼드 대학·존스홉킨스 대학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른바 ‘스티브 잡스 팀’은 그의 유전자를 해독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한 항암제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실제로 그 항암제는 스티브 잡스의 췌장암을 잠재웠다. 불행하게도 암이 재발했고, 다시 유전자 검사를 했다. 그러나 기존 항암제로는 치료가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자 스위스의 한 제약사가 ‘스티브 잡스 항암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약이 나오기 전에 그는 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녹십자 의학유전체연구소의 조은해 박사는 “같은 폐암, 같은 자폐증이라도 어떤 형태인가에 따라 약 효과가 있거나 없다. 어떤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겼는지를 파악하면 어떤 약에 차도를 보일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여러 병원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유전자 검사를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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