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조직은 전리품이 아니다
  • 김재태 편집부국장 (purundal@yahoo.co.kr)
  • 승인 2012.12.0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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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제목부터 매우 흥미로운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드라마 작가로 유명한 신봉승씨가 펴낸 <세종,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다>라는 책입니다. 신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읽고 연구해온 <조선왕조실록>을 텍스트로 삼아 조선 시대를 빛낸 위인들을 중심으로 가장 이상적인 내각을 구성해 선보였습니다. 우리 역사에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을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으로 삼고, 광해군과 인조 조에 걸쳐 영의정을 세 번이나 지낸 오리 이원익을 국무총리로 꼽았습니다. 그 밖에 선조 시절 왜군의 침략을 예견하는 상소를 수없이 올리며 임진왜란 때는 직접 의병을 이끌기도 했던 중봉 조헌이 국방부장관에, 조선 말기의 개화승 이동인이 외교통상부장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연암 박지원 등도 한 자리씩을 차지했습니다.

대선일이 가까워지면서 후보들의 공약에 대한 검증 공방도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물론 정부 조직과 관련한 공약도 들어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과학기술 및 정보기술 정책을 전담할 미래창조과학부를 설치하겠다고 했고, 문재인 후보는 과학기술부와 해양기술부 부활, 정보미디어부 신설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후보들 모두 정부 조직의 전반적인 얼개를 어떻게 가져가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내용은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 민주화도 좋고, 복지 국가도 다 좋지만 그것을 실무적으로 집행할 정부 조직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행정부를 이리 늘리고 저리 줄이며 이합집산하기를 밥먹듯 해온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대통령 당선자와 그 세력이 정부 부처를 무슨 전리품처럼 여겨 자신들의 입맛대로 찢고 나누면서 정부 부처의 영속성은 아예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매번 대선이 있을 때면 공무원 사회에서 특히 고위 공직자들이 자신들의 입지에 변화가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공공연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9·11 테러 이후 국토안전부를 새로 만든 것 외에는 수년 동안 정부 조직을 바꾸지 않고 유지해온 미국의 사례까지는 굳이 본받지 않더라도, 한 나라 행정의 지속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가장 현실성 있는 행정부 모델을 찾아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에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을 교육과 방송통신위원회에 셋방 살 듯이 해놓은 것 등은 꼭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밖에 다른 행정 부처들에 대해서도 문제점은 없는지 따져보고 좀 더 효율적이고 현실에 맞는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으고 공론화하는 과정을 거칠 필요도 있습니다.

신봉승 작가가 제시한 ‘명재상들의 내각’은 물론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든, 그야말로 이상 그 자체일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 조직이 골격을 제대로 갖추고 지속 가능한 체제를 구축하면 조선 시대 대표 재상들과 같은 명장관이 나올 토양도 틀림없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대선 후보들이 앞으로 정부 조직을 어떻게 꾸릴지에 대해서도 더 깊이, 더 많이 지혜를 짜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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