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상차림에도 ‘음양’의 이치가 있다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09.2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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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음식 올리는 기본 원칙에 조상의 지혜 담겨

ⓒ 시사저널 박은숙
추석은 설, 한식, 단오와 함께 우리 민족의 4대 명절 중 하나이다. 추석은 글자 그대로 ‘달 밝은 가을밤’이라는 뜻이다. 연중 8월 보름달의 달빛이 가장 좋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추석에는 1년 동안 농사지은 햇곡식과 햇과일 등을 상에 차려놓고 조상들에게 한 해의 수확을 감사드리는 차례를 지낸다. 차례상에 오르는 음식 하나하나마다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추석 상차림에는 우리 조상들의 어떤 지혜가 담겨 있을까.

차례는 약식 제사로, 다른 제사와 형식 달라

추석날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이 바로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이다. 우리는 흔히 제사 음식을 제수라고 하고, 제수를 격식에 맞춰 차례상에 올리는 것을 진설이라고 한다. 제수는 각 지방마다 나오는 특산품이 다르기 때문에 지방과 가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제수를 놓는 위치 또한 지방마다 다소 다르다. 그래서 제수 진설에 말이 많다. 여북해서 ‘남의 제사에 곶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참견 마라’라는 말이 나왔을까.

하지만 기본 원칙은 있다. 제사 상차림의 기본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좌우를 바꿔놓고 좌우의 균형을 잡는 데에 있다. 차례상은 방향에 관계없이 지내기 편한 곳에 차리면 되는데, 이 경우 ‘예절의 동서남북’이라 하여 신위(神位; 지방)가 놓인 곳을 북쪽으로 한다. 그리고 제사 지내는 사람(제주; 祭主)의 편에서 차례상을 바라보았을 때 신위의 오른쪽은 동쪽, 왼쪽은 서쪽이다. 신위를 북쪽에 놓는 것은 죽은 사람의 세계를 가리키는 북망산천(北邙山川)에서 유래하기도 했지만, 임금이 계신 상좌라는 의미도 있다. 북쪽이 상좌인 것은 임금이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차례는 조상 숭배 의례의 한 종류인 약식 제사이다. 따라서 다른 제사와 달리 아침에 지내므로 촛불을 켜지 않고, 축문이 없으며, 술은 한 번만 올린다. 조상의 제사를 모실 때 배우자가 있을 경우 두 분을 함께 모시는데 이때 하나의 차례상에 함께 지낸다. 이것을 합설(合設)한다고 하고, 상을 따로 차리면 각설(各設)이라고 한다.

차례 상차림은 5열로 차린다. 각각의 열은 과거의 조상들이 먹어왔던 음식을 순서대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시기적으로 가장 먼 수렵·채집 시대에 먹었던 음식을 의미하는 과일과 나물, 채소를 맨 앞쪽과 둘째 줄에 놓고,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익혀 먹었던 것을 의미하는 음식인 전류, 농경 시대에 들어서면서 먹었던 주식과 반찬을 의미하는 탕, 적, 메(밥), 갱(국) 등이 나머지 세 줄을 장식하고 있다. 

차례 상차림에는 음양의 법칙도 존재한다. 제수품마다 나름의 의미가 있어, 놓는 위치와 수가 다르다. 예를 들어 생선을 놓을 때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는 두동미서(頭東尾西)의 방향성을 갖는다. 음양오행설에 따라 동쪽은 남쪽과 더불어 양의 방향이다. 동쪽은 해가 솟는 곳으로 소생과 부흥을 뜻하므로 머리를 동쪽에 둔다. 반면, 해가 지는 서쪽은 동쪽과 반대되는 암흑과 소멸을 상징하므로 꼬리는 서쪽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음양의 원리에 따라 땅에 뿌리를 두고 얻어진 음식은 음(陰)을 상징한다고 해서 종류의 수를 짝수로 했고, 그 이외의 음식은 하늘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해 양(陽)의 수인 홀수로 맞추려고 한 것이다.

ⓒ 연합뉴스
진설과 제수에 담긴 의미들

차례 상차림은 총 5열이 기본이다. 제주와 가장 멀리 있는 곳을 1열로 삼는다. 1열에는 메(밥)와 갱(국), 2열에는 적과 전, 3열은 탕, 4열은 포와 나물, 마지막 5열에는 과일을 두는 것이 원칙이다. 추석의 경우 1열에 메(밥) 대신 송편을 올린다. 제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떡이다. 떡은 곡식으로 만든 것 중 가장 정결한 것으로 간주된다. 송편을 올리는 이유는 추석의 상징적 의미는 둥근 달과 함께 어우러지는데, 송편이 둥근 달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때 갱(국)은 동쪽(오른쪽)에, 메는 서쪽(왼쪽)에 놓는다. 송편과 함께 밥도 올리는 경우 반서갱동(飯西羹東)이라 하여 상 차리는 사람이 보았을 때 밥과 술잔은 왼쪽, 국과 송편은 오른쪽에 놓는다. 이는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2열에는 세 가지의 적과 전을 놓는다. 어동육서(魚東肉西)에 맞춰 어류는 동쪽, 육류는 서쪽에 둔다. 하늘로부터 얻어진 음식이므로 적과 전을 합해 홀수로 놓는다. 이때 머리와 꼬리가 분명한 생선 적의 경우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을 향한다.

3열에 올라가는 탕은 어탕, 육탕, 계탕을 모두 올리거나 한 가지만을 놓는다. 탕도 하늘로부터 얻어진 음식이라 홀수로 올려놓는다. 탕은 건더기만을 떠서 놓는데 여기에는 조상들이 먹기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4열에는 삼색 나물과 식혜, 김치, 포 등이 올라간다. 이때 좌포우혜(左脯右醯)를 원칙으로 삼는다. 북어와 대구, 오징어 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에 두되 포의 경우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을 향해 놓는다. 이는 동쪽이 소생과 부흥을 의미한다는 음양오행설을 따른 대표적인 예이다.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북어는 우리나라 동해 바다의 대표적인 어물이자 머리도 크고 알이 많아 훌륭한 아들을 많이 두어 알과 같이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유래가 있다.

삼색 나물의 삼색은 검은색과 흰색, 푸른색의 세 가지 나물로 역시 귀함을 뜻하는 양(陽)의 수인 홀수이다. 흰색은 뿌리나물이라 하여 도라지나 무나물을 쓰고, 검은색은 줄기나물로 고사리를 쓴다. 푸른색은 잎나물로 시금치나 미나리를 쓴다. 뿌리는 조상을, 줄기는 부모님을, 잎은 나를 상징한다.

대개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에는 소금 이외에 많은 양념을 쓰지 않는다. 이는 제사 상차림이 양념이 발달하기 전부터 굳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능한 한 모든 음식을 자연의 맛에 가깝게 만든다는 의미도 있다. 김치도 희게 담근 나박김치만을 올리는데, 깨끗하고 순수한 음식을 올리는 것이 조상에 대한 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마지막 5열, 즉 제일 앞줄에는 과일과 약과, 강정을 둔다. 과일은 땅에서 난 것이므로 짝수 종류를 놓고, 한 제기에 올리는 과일의 양은 귀함을 뜻해 홀수로 놓는다. 이때 조율이시(棗栗梨枾)와 홍동백서(紅東白西)를 지킨다. 즉 왼쪽부터 대추와 밤, 배, 곶감, 약과와 강정 순으로 차리고 사과와 같은 붉은 과일은 동쪽, 배 등 흰 과일은 서쪽에 둔다.

그렇다면 왜 차례상은 이처럼 조율이시, 홍동백서, 어동육서, 좌포우해, 두동미서로 놓는 것일까? 좌포우해의 경우 포(脯=말린 것) 종류의 음식보다는 해(해=소금에 절인 젓갈류) 종류의 음식이 좋고, 어동육서 또한 육(肉=육류)의 음식보다는 어(魚=생선류)의 음식이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두동미서는 미(尾=꼬리)의 음식보다는 두(頭=머리)의 음식이 좋은 것이니 좋은 것을 먼저 먹고, 자주 먹어야만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율이시의 경우 과일은 신위 쪽에서 가장 먼 줄에 있으니 약처럼 가끔씩 먹을 일이로되 뼈에 좋은 대추, 머리에 좋은 밤, 배에 좋은 배, 피부에 좋은 감의 순서로 좋은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홍동백서는 백(白=흰색) 종류의 음식보다는 홍(紅=붉은색) 종류의 음식이 좋은 것이니 먼저 먹고 자주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들을 함께 먹어야 몸에 좋다는 것을 자손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다.

과일은 자손의 번성과 희망, 위엄을 상징

전통적으로 제사에 쓰는 과일은 대추, 밤, 배, 감이다. 그 이유는 이것들이 대체로 상서로움, 희망, 위엄, 벼슬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대추는 원래 암수 한 몸인 나무로, 나무 한 그루에 열매가 아주 많이 열린다. 따라서 자손의 번성함을 의미한다. 또한 대추씨는 통씨여서 곧 절개를 뜻하며 순수한 혈통을 의미한다. 그래서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제물이다.

밤의 경우 다 자라고 난 뒤 죽은 밤나무를 캐보면 처음 싹을 틔웠던 밤톨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바로 이런 밤을 차례상에 올리는 이유는 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배는 껍질이 누렇기 때문에 황인종을 뜻한다. 오행에서 황색은 우주의 중심을 나타내고 있고, 이것은 바로 민족의 긍지를 나타낸다. 또 배의 속살이 하얀 것은 우리 백의민족에 빗대어 순수함과 밝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제물로 쓰인다는 설이 있다.

감나무는 아무리 커도 열매가 한 번도 열리지 않은 나무의 줄기를 꺾어 보면 줄기 속에 검은 진액이 없고, 열매가 열린 나무의 줄기를 꺾어 보면 검은 진액이 들어 있다. 이는 자식을 낳고 키우는 부모의 아픔과 비슷하다 하여 부모를 생각하는 의미에서 놓는다.

차례상 맨 앞줄에 대추, 밤, 배, 감 순으로 과일을 놓는 이유에 대해 또 다른 설이 있다. 먼저 대추는 씨가 하나라 임금을 뜻하니 처음에 놓고, 밤은 한 송이에 밤톨이 3개가 들어 있어 3정승을 뜻하니 두 번째에 놓고, 배는 씨가 6개라 판서를 뜻하니 세 번째에 놓고, 감은 씨가 8개라 8도 관찰사를 뜻하니 네 번째로 놓는다는 속설이다. 하지만 이것은 항간에 떠도는 근거 없는 추측일 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추석 차례상, 영양학적 가치도 높아  

차례상은 영양학적으로 만점이다.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가 가득하다. 육류에 들어 있는 단백질과 생선, 김을 비롯해, 국물을 내는 다시마의 칼슘을 비롯한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다. 전과 적에는 양질의 지방이 들어 있고, 채소와 과일에서는 비타민과 무기질을 흡수할 수 있으며, 밥과 떡에서는 탄수화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송편은 멥쌀을 주재료로 하고 그 속에 깨·콩·밤 등의 견과류를 넣기 때문에 탄수화물과 함께 부족할지 모르는 단백질과 견과류의 불포화지방을 상호 보충할 수 있게 해준다. 추석 무렵 나는 토란은 당질, 인, 염분, 칼슘 등을 다량 함유하고 있고 식이섬유가 풍부해 소화가 잘 되고 변비 해소에 도움이 되므로 과식하기 쉬운 명절 음식으로 최고이다. 한의학적으로나 현대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함을 갖춘 조상들의 상차림 지혜에 그저 감탄이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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