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넘쳐나는 나라, ‘창작’은 힘겹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5.2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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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연가> <셜록 홈즈> 등 성공에 힘 입어 시장은 성장세…공급 너무 많아 제 살 깎기 경쟁 치열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동안 국내 뮤지컬 시장은 여전히 성장세를 구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정도 성장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티켓 판매 순위 1~10위 중 창작 뮤지컬은 5위 <광화문연가>, 8위 <서편제>, 9위 <영웅> 등 단 세 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나머지는 모두 해외 유명 뮤지컬의 라이선스 공연이거나 아이돌 스타가 등장한 라이선스 뮤지컬이었다. 게다가 국내 창작 뮤지컬을 이끌어왔던 중견 제작사들이 대형 창작품을 올린 후유증으로 비틀거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시장은 커지고 있는데 실상 이 시장을 떠받쳐야 할 제작사들은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뮤지컬 . ⓒ시사저널 임준선

스타 마케팅이나 입장권 가격 덤핑 등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그럼에도 창작 뮤지컬은 계속 나오고 있고 몇몇 작품은 빛을 발하고 있다. 이번 1분기 순위에서 가장 성적이 좋았던 창작 뮤지컬 <광화문연가>나 공연 1년 만에 소극장용 뮤지컬이 중극장용으로 확장된 <셜록 홈즈>, 판소리라는 요소를 뮤지컬에 성공적으로 녹여넣어 재공연까지 한 <서편제> 등은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에 맞서서 작지만 의미 있는 전진을 하고 있다.

작곡가 이영훈의 노래만으로 만든 <광화문연가>의 제작자 ㈜광화문연가의 임영근 대표는 제작사를 만들어 첫 작품으로 창작품을 올리고 이를 흥행 홈런으로 연결시킨 아주 드문 경우이다. 그는 “2000년대 초에 <오페라의 유령> 제작에 참여해 수익을 올렸지만 결국 창작품이 아니면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뮤지컬 시장에서 창작 공연 위주로 하는 PMC(대표 송승환)만 자체 사옥을 갖고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라고 말했다. 임대표는 2006년부터 이영훈 작곡가와 함께 뮤지컬 작업을 추진했고 이작곡가가 2008년 사망한 뒤에도 작업을 계속해 지난해 3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첫 공연을 걸었다.

21회 공연에 유료 좌석이 86%였다. 무료까지 합치면 세종문화회관 개관 이래 최대 흥행을 거두었다는 말이 나왔다. 지난 2월에 LG아트센터에서 가진 재공연의 좌석 점유율은 94%였다. 지난 5월13일부터 충무아트홀에서 세 번째 무대를 올리고 있다. 이번 공연은 총 30회. 하지만 5회 공연 만에 제작비를 회수했다. 상업적으로 최근 어느 창작 뮤지컬보다 완벽하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는 “초연 제작비가 40억원이었는데 매출이 60억원이었다. <난타>도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데 5년이 걸렸지만 <광화문연가>는 첫 공연에서 바로 넘겼다. 매 공연마다 작품을 조금씩 손보면서 완성도를 높이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가 이 뮤지컬이 성공한 요인인 것 같다.” 그는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가 국내에서는 제일 많이 리메이크된다고 소개했다. 심지어 빅뱅이나 아이유도 이작곡가의 노래를 리메이크했다. 5년 동안 작품을 매만져 완성도를 높이고 귀에 익숙하지만 세대를 넘어서서 통하는 이영훈 작곡가의 솜씨가 성공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8월 대학로의 소극장에 올라 객석 점유율 98%를 기록한 <셜록 홈즈>는 그해 11월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최우수작품상, 작곡상, 극본상 등 3관왕을 수상했다. 지난 5월 중극장용 뮤지컬로 크기를 키워 무대에 올린 후 80%의 객석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어 5월 말부터 지방 공연을 시작하고 6월에는 대구뮤지컬페스티벌(DIMF)에 공식 초청작으로 무대에 오른다. 이 정도면 전형적인 창작 뮤지컬 성공담으로 꼽을 수 있다. 제작자인 한승원 프로듀서는 “3년 동안 준비했던 작품이다. 애초부터 중극장 사이즈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지만 돈이 없어 소극장 무대에 올렸다. 전세계의 거의 모든 세대가 아는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 강점이다. 그래서 라이선스 뮤지컬로 아는 사람도 있다. 홍보할 때 창작이라는 말을 강조하지 않았다. 또, 추리 뮤지컬이라는 점도 호소력이 있었던 듯싶다. 드라마와 음악이 한데 뭉쳐 있는 것도 강점이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의 초연 제작비는 6억2천만원이었고, 중극장용 확장 버전에는 9억원이 제작비로 들어갔지만 모두 회수해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한 프로듀서는 창작 뮤지컬이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같은 조건에서 싸워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1년에 어린이 뮤지컬을 포함해 4백편 정도가 올라가고 대학로에서 100편의 뮤지컬이 올라간다. 전세계에서 이렇게 뮤지컬이 넘쳐나는 나라가 없다. 수요는 한정되어 있는데 공급이 너무 많다. 그렇다 보니 아이돌 스타 같은 스타 마케팅이 판을 치거나 입장권 가격 덤핑 같은 경쟁이 벌어진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벌어지고 이는 다시 몇몇 스타 배우의 몸값 폭등, 유명 연출가의 연출 독식으로 이어진다.  나 같은 소규모 제작사는 세종문화회관 등 좋은 극장을 잡고 싶어도 그들이 요구하는 투자 승인서와 출연 계약서를 완비하기 힘들다. 스타 배우는 대관 계약서와 투자 승인서부터 보여달라고 한다. 악순환이다.”

“7~8년 걸려도 시장의 검증을 제대로 받는 시스템 만들어야”

지난 4월 <파리의 연인>에 이어 오는 7월 <번지점프를 하다>를 무대에 올리는 뮤지컬해븐은 국내 중견 뮤지컬 제작사 중 창작극 레퍼토리 개발에 가장 열심인 제작사이다. 완성도나 전문가의 호평에 비해서 흥행발이 안 붙는 게 요즘 뮤지컬해븐의 고민이다. 이 회사의 박용호 프로듀서는 “아이돌의 뮤지컬 진출로 시장은 커졌는데 관객이 골고루 들지 않아 체감 온도는 크지 않다. 농사꾼 입장에서는 재미가 없다.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창작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일본이나 중국은 꿈도 못 꿀 시도를 우리 뮤지컬이 하고 있다. 격려 문화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질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도 상업 공연물이 제대로 무대에 올리기까지 7~8년 걸리면서 시장의 검증을 받는다. 우리도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스페셜’ 해서 눈길 끄는 대구뮤지컬축제 창작 지원작들

작품명 러닝타임 공연장 공연 기간/티켓 공연 시간 간략 공연 소개 관람 등급
<발레소녀, 안나> 120분
(인터미션X)
봉산문화회관
스페이스라온홀
6/28(목)~7/1(일)
7회
전석 2만원
(목)~(금)20:00
(토)15:00,20:00
(일)15:00
발랄하고 천진난만한 천재소녀 안나의 성장드라마
속도감 있는 전개와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춤,
독특한 연출 효과를 만날 수 있는 뮤지컬
만 7세
이상
<날아라, 박씨!> 110분
(인터미션X)
봉산문화회관
가온홀
6/29(금)~7/1(일)
5회
전석 2만원
(금)20:00
(토)15:00,19:00 
(일)14:00,18:00
현대와 고전을 자연스럽게 융합한 이 시대의
‘미’에 대한 고찰을 무겁지 않게 풀어낸 작품
2011년 창작팩토리 대본 공모 당선작
만 7세
이상
<주그리? 우스리?> 110분
(인터미션X)
송죽씨어터 6/29(금)~7/1(일)
5회
전석 2만원
(금)20:00
(토)15:00,19:00 
(일)14:00,18:00
경쟁의 바람이 저승에도 불고 있다!! 저승사자를
통해서 본 이승의 따뜻한 가족애!!
각박한 경쟁과 실적 위주 현대 사회의 모습을 저승에
비유해 끊임없는 해학과 풍자!
만 12세
이상
<데자뷰> 100분
(인터미션X)
대덕문화전당 6/30(토)~7/1(일)
4회
전석 2만원
(토)15:00,19:00 
(일)14:00,18:00
초조대장경을 극의 모티브로, 대구 지역을 소재로 한
뮤지컬
만 10세
이상
<샘> 75분
(인터미션X)
봉산문화회관
스페이스라온홀
7/6(금)~8(일)
5회
전석 2만원
(금)20:00
(토)15:00,19:00 
(일)15:00,19:00
말도 안 되는 코미디같은 일이 벌어지는 요즘 세상
가장 더러운 화장실 유머를 가장 고상한 음악인
오페라로 표현하면? 독특한 발상의 뮤지컬! 
만 12세
이상

뮤지컬 . ⓒ뮤지컬해븐 제공
<번지점프를 하다>는 2년 전 대구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워크숍(트라이 웃) 공연을 가졌다. 4년 전 창작 지원작으로 뽑혔던 <스페셜 레터>는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 중이고, 올해 두산아트센터에서 재공연에 성공한 <모비딕>도 지난해 DIMF의 창작 지원작에 뽑혔었다. 지난해 창작 지원작인 <식구를 찾아서>는 한 해 동안 훌쩍 성장해 올해 공식 초청작으로 DIMF를 찾는다. 그래서 DIMF의 창작 지원작이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창으로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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