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속에서 피어나는 ‘백성의 뜻’
  • 김용택 | 시인 ()
  • 승인 2012.04.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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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산천에서 제일 먼저 나무에서 피는 꽃은 산에 피는 산 동백이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은 이 꽃을 두고 말한다. 나뭇가지를 꺾어 혀를 대보면 생강 맛이 난다고 해서 생강나무라고도 하는데, 꽃의 생김새와 모양은 산수유 꽃하고 비슷하다. 생강나무 꽃이 피면 산 아래 마을에서는 산수유나무가 꽃을 피운다. 산수유가 지는가 싶으면 매화가 핀다. 매화가 지는가 싶으면 마을에 살구꽃이 피고, 벚꽃이 피고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산벚꽃이 핀다. 어느 날 문득 산에 나타난 흰 산벚꽃은 산을 환하게 열어준다. 그러면 시시각각 산천은 변해간다. 놀라운 변화이다. 그러다 보면 산 아래 과수원 언덕에는 하얀 물싸리꽃이 피고, 자두꽃이 피고, 복숭아꽃이 피고, 배꽃이 피고, 사과꽃이 핀다. 그런데 요즘 봄은 꽃 피는 순서가 사라지고 있다.

어떻든 새잎이 돋는다. 새잎이 꽃보다 아름답다. 팽나무나 느티나무, 단풍나무 새잎은 아침 햇살과 저문 산그늘 속에 얼마나 눈이 부신가. 그리고 봄날은 간다. 

봄 산천을 보고 있으면 나는 숨 가쁜 혁명의 속도를 느낀다. 혁명은 반성과 자기 혁신에서 나온다. 산천은 절대 반성의 시기를 놓치지 않고 변화와 자기 혁신의 시기를 놓치지 않고 변혁을 도모하며, 세상에 대한 약속을 절대 어기지 않는다. 지체 없는 반성을 통해 자기 혁신을 거듭하며 자기의 색깔을 시시각각 바꾸어가는 봄 산천에 제일 늦게 피는 꽃이 오동나무꽃이다. 봄꽃치고는 꽤 오래 피어 있는 오동나무꽃은 진보라에서 연보라로 그 색깔이 서서히 변하면서 새잎을 피운다. 그러면 꾀꼬리가 운다. 우리나라 산천이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건너려는 그 사이로 솟아오르며 우는 이 새는 샛노란 몸에 검은 점의 날개를 가졌다. 이 새가 울면 참깨가 나는데, 봄이 끝나가는 산천을 가르며 솟는 이 꾀꼬리는 마치 혁명을 완수했다고 승리를 알리는 반가운 전령 같다.

반성이 없으면 자기 혁신도 세상의 진보도 없다. 시대적인 사명을 다한 낡고 진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자기 혁신과 혁명의 시기를 놓치면 자기도 모르게 낡아간다. 이번 총선을 통해 우리는 또 한 번 우리 국민들의 뜻이 저 봄날의 산천처럼 준엄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이 냉엄한 심판의 국면을 제대로 읽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누구든 대선에서 진다. 자기가 낡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철 지난 옷을 입고 거들먹거리면 누추해 보이고, 추레해 보인다. 이 시대의 찬란한 봄날에 자기 혁명이 없는 나무와 풀은 자연히 도태됨을 알라. 생태와 순환, 그 순리를 어기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의 법칙을 배우라. 이제 우리도 자기 표를 사랑한다면 남의 표도 인정하는 배려를 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정치에서 욕심은 절대 금물이다. 정직과 진실과 진정성 그리고 시대를 읽는 거짓 없는 진지한 안목이 필요하다. 세상은 변했다. 봄날을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정리하면서 초여름은 시작된다. 그러면 성숙한 초록의 숲에 이팝나무, 층층나무, 살딸나무, 때죽나무 꽃이 핀다. 모두 아름다운 흰 꽃들이다. 초록의 산천 위에 흰 꽃은 산고를 치른 산모의 성숙함을 보여준다. 자연을 닮은 진지한 자세로 자기를 혁신하고 시대의 변혁을 꾀하는 일, 그 일이 자연의 일이고 백성의 뜻임을 명심할 일이다. 이 세상 모든 꽃은 이해를 따져가며 피지 않는다. 시대정신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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