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못 찾고 헤매는 신세계그룹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3.27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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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장 동력 없이 할인점 부문까지 경쟁사에 쫓겨…올해 1조9천억원 투자해 위기 돌파 계획

4월25일 오픈 예정인 신세계백화점 의정부역점과 정용진 부회장. ⓒ 시사저널 유장훈

 ‘신세계’라는 이름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국내 유통 산업의 간판 격이었다. 1963년 삼성그룹에 편입된 동화백화점이 신세계의 전신이다. 이 백화점이 1969년 삼성 임직원을 대상으로 발급한 신세계백화점 카드는 국내 최초의 신용카드로 기록되어 있다. 1991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이후에는 백화점뿐만 아니라 새로운 유통 사업을 펴면서 업계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1993년 서울에 이마트 창동점을 내고 국내 할인점 시대를 열었다. 1995년 급식 사업(신세계푸드)을 시작하고, 1997년 중국에 할인점을 개점하고, 1999년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1호점을 낸 것도 신세계였다. 특히 할인점 이마트는 2006년 미국계 할인점 월마트의 16개 점포를 인수했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할인점 시장을 휩쓴 월마트를 한국 땅에서 몰아낸 일은 외국 언론에서도 깜짝 놀랄 만한 뉴스거리였다. 2012년 1월 현재 점포수는 백화점이 9개, 할인점이 1백67개이다. 지난해 매출은 백화점이 5조원을 넘었고, 할인점은 14조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백화점과 할인점 등을 성공적으로 경영하면서 국내 유통 산업을 이끌어오던 신세계그룹이 최근 신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신세계가 ‘신세계’를 찾지 못한 형국이다. 그룹을 떠받치고 있는 양대 축인 백화점과 할인점 사업마저 경쟁사에 밀리는 모양새이다.

내·외부 환경에 발목 잡혀

신세계백화점은 백화점업계에서 롯데백화점에 이은 2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대백화점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에서 신세계백화점은 현대백화점에 밀렸다. 시가총액도 2조원대로 현대백화점의 반 토막 수준이다. 신세계백화점의 주가는 지난해 중반 이후 하락세를 타더니 지난해 말 -30%대로 추락했다. 점포 수도 지난 10년 동안 거의 늘지 않았다. 향후 5년 동안 확장 계획도 경쟁사보다 뒤처진다.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이 각각 9개와 17개 매장을 늘려 30여 개와 20여 개를 목표로 두고 있지만, 신세계백화점은 절반 수준에 머무를 전망이다.

백화점 부문에서 업계 3위이면서도 전체 유통 산업에서 2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힘은 이마트에 있다. 할인점 이마트는 지난해 매출 14조원으로 업계 1위를 지켰다. 그러나 2위와 3위 업체들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의 매출은 각각 12조원과 10조원이다. 그런데 영업이익률은 5~6%대로 이마트와 대동소이하다. 이마트가 물건을 많이 팔았지만 많이 남기지는 못했다는 의미이다. 업계에서는 연간 매출 최고 점포 경쟁이 치열하다. 줄곧 이마트(은평점)가 전체 할인점 중에서 1위를 고수해왔지만, 지난해 롯데마트(잠실점)에 그 자리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이마트 은평점의 연 매출은 2천5백50억원으로 롯데마트 잠실점보다 50억원이 적었다.

국내 토종 할인점인 이마트가 중국에 진출할 당시만 해도 2012년까지 중국에 이마트 점포를 20개로 늘릴 계획이었다. 중국 시장에서 이마트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점포 수는 27개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10개 매장을 매각했다. 업계에서는 이마트의 중국 철수설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이마트 관계자는 “철수 계획은 없다. 실적이 부진한 몇 개 매장을 정리한 것이다.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면 중국 서부 내륙과 화북 지역으로 개점을 늘릴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한 할인점 관계자는 “부실 점포를 정리한 후 나머지 매장을 매각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철수 사실을 밝히지 않지만, 철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의 전반적인 부진 원인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인건비와 임대료 등 고정 비용이 많다. 신세계의 일부 매장은 임대 매장이다. 매출이 높을수록 임대료도 올라 수익성을 키울 수 없는 구조이다.

외부 환경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다. 백화점업계 자체의 성장세가 예전만 못한 데다 할인점의 골목 상권 진출도 여러 규제에 부딪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백화점업계의 매출 성장률은 2007년 3.1%에서 2010년 11.6%로 꾸준히 성장했으나 지난해 11.1%로 꺾였다.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 등에 따르면 올해 백화점 시장의 성장률은 29조원으로 9.9%로 더 떨어질 전망이다.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할인점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이고, SSM(기업형 슈퍼마켓)의 골목 상권 진출도 정부 규제라는 걸림돌에 걸린 상황이다. 백화점과 할인점 모두 지지부진한 가운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한 점이 신세계그룹의 전반적인 침체로 나타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경영 주체가 이명희 회장에서 정용진 부회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회장은 지난 2009년 12월 경영 일선에 나섰고 지난 2년 동안 신세계그룹을 지휘해왔다. 이런 시각에 대해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이명희 회장은 신세계그룹 경영에 참여한 적이 없다. 따라서 경영권이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보기 어렵다. 또 부회장 취임 1년차인 2010년 백화점이 23%, 할인점이 9.6% 매출 성장을 보였고, 2011년에도 각각 12.5%와 11.1% 증가했다. 오히려 정부회장의 성공적인 안착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지난 2년간의 성적표가 구학서 회장의 후광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그룹 출신인 구회장은 유통업 경험이 없음에도 유통업계에서 지금까지 신세계그룹의 입지를 다진 주인공이다. 업계 관계자는 “구학서 회장은 여전히 신세계그룹의 버팀목이다. 그동안 매출 성장세가 정부회장만의 성과라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회장이 성장 동력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라고 말했다.

정용진 부회장의 세 가지 성장 동력 카드

정용진 부회장은 위기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5월 백화점(신세계)과 할인점(이마트)을 분리했다. 각 사업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업종별 책임 경영을 확립하려는 승부수였다. 백화점은 박건현 대표, 할인점은 최병렬 대표 체제로 재편했다. 정부회장은 이를 총괄하면서 성장 동력 확보에 주력한다는 구상이다.

정부회장이 성장 동력으로 내놓은 카드는 복합 쇼핑몰, 베트남 시장 진출, 온라인 사업이다. 그는 신년사에서 “신세계는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 단계 성장해왔다. 또 한 번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는 한 해를 만들자”라고 강조했다. 최근 개점한 신세계백화점 의정부역사점이 그 신호탄이다. 영화관·전시장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갖춘 복합 쇼핑몰이다. 하남 유니온스퀘어, 대전 유니온스퀘어, 동대구 복합 환승센터 등 5개의 복합 쇼핑몰을 2015년까지 짓는다. 또 여주와 파주에 이어 부산에도 2013년 프리미엄 아웃렛을 개점한다. 창고형 할인점(이마트 레이더스) 매장도 늘린다.

할인점도 복합화를 꾀한다. 물건만 싸게 파는 곳이 아니라 소비자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쇼핑 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예를 들면 애완견 전문점, 가구 전문점, 완구 전문점, 스포츠 전문점 등을 신규 점포와 접목하는 식이다. 중국 할인점 시장에서 재미를 못 본 정부회장은 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으로 진출한다. 올해 베트남 하노이에 1호점을 여는 것을 목표로 지난해 현지의 U&I그룹과 계약을 맺었다. 2020년 할인점 매출이 60조원에 달하는 세계적인 종합 유통 기업으로 키울 심산이다.

정부회장은 온라인 사업에서 1조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이마트몰의 지난해 매출은 3천3백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1백30%나 증가했다. 프리미엄 상품을 대폭 보강하고 물류 체계를 개선해서 2015년에는 매출 2조원대로 진입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이런 청사진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회장은 올해 1조9천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신세계그룹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인 데다 8천명의 신규 인원도 채용하기로 했다. 대형 투자는 안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부담이 있다. 신세계는 이같은 부담과 악재를 극복하고 과연 ‘신세계’를 열어젖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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