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쳇바퀴’에 갇힌 희망 잃은 청춘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03.21 21: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지난 3월11일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서울 관악구 신림역 부근 한 공원에서 청소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이유로 가출과 귀가를 반복하는 ‘전환형 가출’ 청소년과 부모의 학대를 피해 집을 나온 ‘탈출형 가출’ 청소년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 인도해줄 사회적 장치는 극히 미흡하다. 집을 나와 갈 곳을 잃고 헤매는 가출 청소년들의 실태를 추적했다.

지난 3월11일 밤 9시30분쯤, 서울 신림동 뚝방길 옆 간이 공원에 20여 명의 남녀 아이들이 모였다. 대부분 15~16세 또래의 가출 청소년들이다. 아이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70%가 욕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애정 표현’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또 하나같이 어수선했다. 어느 한 곳에 집중하지 못했고, 말이 오락가락해서 대화가 쉽지 않았다.

이날 공원 근처에는 서울 시립 청소년일시쉼터의 버스가 주차되어 있었다. 이곳에서는 가출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게임을 할 수 있도록 게임기도 설치해두고 있었다. 심신이 지친 아이들이 잠시 쉴 수 있도록 서울시가 ‘이동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상담도 병행한다.

아이들은 쉼터가 제공한 김밥과 라면을 먹고 게임을 즐기다가 무리지어 빠져나갔다. 일부는 뚝방길 아래로, 또 다른 일부는 으슥한 주차장을 찾아간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또는 본드를 흡입한다고 귀띔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 무리지어 놀러다닌다고 했다.

여기서 한승환군(가명·16)을 만났다. 한군의 부모는 승환이가 갓난아이 때 이혼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빠 얼굴을 모른 채 자랐다. 승환이에게는 엄마와 일곱 살 많은 누나가 있다. 엄마는 옷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한다. 아침에 출근하면 밤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자녀들을 챙길 여유가 없다.

승환이 누나도 늦은 시간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승환이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가출했다. 그때는 두 달 정도 친구 집에서 지내다가 집에 들어갔다. 한 번 시작한 가출은 두 번째에는 더 쉬웠다. 중학교 1학년 때 누나와 크게 싸운 후 또다시 집을 나왔다. “그때는 누나가 욕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라고 말한다.

가출한 후 한동안 길에서 노숙하거나 청소년 쉼터를 전전했다. 이때 친구나 후배들에게 ‘삥을 뜯다’(돈을 빼앗는 것을 뜻하는 속어)가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훈방된 적도 있었다. 약 3개월 뒤에 집에 들어갔다. 가출과 귀가를 반복하면서 학교생활은 뒷전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출석 일수 미달로 제적 처리되었다.

 

▲ 지난 3월11일 저녁 한 무리의 가출 청소년들이 청소년 쉼터에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돈 생기면 그날로 다 써버린다”

승환이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니다. ‘가족’이라는 개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냥 어쩔 수 없이 맺어진 혈연관계쯤으로 본다. 한 달에 집에 들어가는 때는 열 번 정도이다. 어떤 때 집에 들어가느냐고 묻자 “그냥 집에 가고 싶을 때”라고 대답한다. 나머지는 중구 충정로에 있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자거나 길거리에서 노숙한다. 돈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다. 생활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놀고먹기 위해서다”라고 말한다. 돈은 주머니에 얼마가 있든지 그날 모두 다 써버린다. 승환이는 “용돈이 떨어지면 엄마한테 받거나, 친구에게 빌리거나 삥을 뜯는다”라고 말했다.

명품 옷이나 스마트폰 등 고가의 물건을 사고 싶을 때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승환이는 그동안 음식점에서 서빙도 하고, 치킨집이나 피자가게에서 배달도 해보았다. 그러면서 허리에 찬 벨트를 들어 보이며 자랑을 했다. 명품 페라가모 벨트였다. “작년에 돈을 모아서 거의 새 것을 6만원에 샀다”라고 말했다. “성관계를 언제 처음 해보았느냐”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더니 “섹스요? 중2 때 여자친구랑 해보았다”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아는 형들을 통해 유흥주점의 삐끼나 호스트를 해보겠느냐는 제안도 받았다고 한다. 담배는 하루에 한 갑 정도 핀다.

승환이의 꿈은 다소 황당하다. 초등학교 때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이유는 ‘못생긴 여자애들 아프리카로 보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지금은 경찰이다. “담배 피우다가 걸려도 빼앗지 않겠다”라는 것이다. 아직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유혜선양(가명·16)도 승환이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 혜선이가 처음 가출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가출한 이유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듣기 싫고, 호기심 때문이었다”라고 했다. 첫 가출 때에는 4일 정도 거리 생활을 하다가 귀가했다. 집에 들어가니까 엄마가 가출했다며 칼로 협박하고, 학교까지 따라다녔다고 한다.

두 번째 가출에서는 2주일 정도 있다가 귀가했다. 혜선이는 “부모님이 나를 믿어주었으면 좋겠는데, 집안에 무슨 일만 생기면 ‘네 탓’이라고 했다. 그것이 너무 싫었다”라고 말했다. 그 뒤 학교를 옮겼으나 출석 일수가 모자라 제적당했다. 돈이 필요하면 앵벌이를 하거나 삥을 뜯는다. 물론 돈이 생기면 그날 모두 쓴다. 담배는 하루에 반 갑 정도 핀다. 혜선이는 “이제는 부모님도 나에 대해 별로 신경 안 쓴다. 며칠 안 들어가도 전화만 해달라고 할 정도이다”라며 푸념했다.

혜선이는 거리에 나가면서 가끔 교복을 입는다. 그날도 혜선이는 학교 다닐 때 입던 교복을 입고 왔다. “왜 교복을 입느냐”라고 물었더니 “학교에 가고 싶다”라고 했다. 하지만 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망설인다. 이미 거리 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검정고시를 치러 합격하면 대학에 가고 싶다. 메이크업을 하거나 유치원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라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승환이나 혜선이 같은 경우는 ‘전환형 가출자’에 속한다. 가출을 반복하다가 부모 등 가족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이제는 가출과 귀가가 일상처럼 되어 있는 유형을 말한다. 가족들도 아이의 가출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최근 들어 거리의 아이들 가운데 ‘전환형 가출자’가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나경 서울 시립 청소년일시쉼터 상담원은 “전환형 가출자 중에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집도 있다. 이 아이들을 가출로 봐야 할지, 외출로 봐야 할지 애매할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문화 시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기들만의 네트워크를 통해 어울려서 몰려다닌다.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배려하면 이 아이들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올해 열네 살인 김정민군(가명·14)은 ‘탈출형 가출자’에 속한다. 부모의 폭력이나 학대 등을 피해 집을 뛰쳐나온 아이들을 말한다. 정민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집을 나온 후 지금까지 4년째 거리를 떠돌고 있다. 정민이의 고향은 경기도 부천이다. 그곳에서 아빠와 두 살 아래의 남동생이 함께 살았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 아빠의 상습적인 폭행이 문제였다.

정민이 아빠는 틈만 나면 아이들을 폭행했다. 온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때리고 또 때렸다. 정민이 엄마도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을 견디다 못해 가출한 상태였다. “아빠는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때리고 욕했다. 당구채로 때리고, 주먹과 발로 때렸다. 술을 마시나 안 마시나 똑같았다. 아빠가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집을 나왔다”라고 말했다.

처음 가출한 후에는 아빠에게 붙잡혀서 또다시 무차별적인 폭력에 시달려야만 했다. 도무지 아빠와 함께 살 수는 없었다. 정민이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친할머니가 나섰다. “내가 키우겠다”라며 정민이를 부천에 있는 집으로 데려갔다. 그곳으로 전학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너무 가난했다. 세 끼를 간신히 먹을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다. 여기에 정민이까지 얹혀살게 되면서 할머니는 끼니를 굶는 일이 많아졌다.

정민이는 할머니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더 이상 짐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가출한 후 잠자리는 길거리였다. 봄과 가을에는 주로 아파트 옥상에서 잠을 잤다. 겨울에는 찜질방 등을 전전했다. 아파트 옥상은 인적이 드물고, 약간의 온기가 있어 하룻밤 잠을 자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번은 아파트 옥상에서 잠을 자다가 할머니 집에서 나올 때 가져온 옷과 돈을 모두 잃어버렸다. 누군가 훔쳐간 것이었다. 정민이는 그때부터 갈 데도 없고, 입을 옷도 없고, 돈도 없는 신세가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려고 했지만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부모님의 동의를 원했지만 아버지에게 동의를 구할 수는 없었다. 어렵게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고, 전단지를 돌리는 일도 했다. 그런데 돈이 너무 적었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청소년 쉼터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

그때부터 나쁜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 남의 돈을 훔치거나 삥을 뜯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정민이는 “먹고 자야 되는데 돈이 없었다. 그래서 잘못이라는 것을 알지만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취객을 상대로 아리랑치기를 했는데, 지갑에서 경찰 신분증이 나왔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민이는 가출한 후 엄마가 너무 그리웠다. 비록 자신과 동생을 두고 집을 나갔지만 아빠의 폭력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렵게 엄마의 소식과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정민이 엄마는 현재 천안에 살고 있다. 다른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었다. 정민이 아빠가 이혼을 해주지 않아 ‘사실혼’ 관계로 살고 있는 것이다. 정민이는 지난해에 천안에 내려가서 엄마를 만났다. 그곳 쉼터에서 지내면서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했다. 중학교는 입학식 때만 갔다. 지금 이런 상태라면 출석 일수가 모자라 제적될 처지이다. “가출하고 보니 가족과 사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엄마랑 살고 싶은데 아빠가 이혼을 안 해줘서 함께 살지 못한다.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쉼터가 있으면 좋겠다”라며 울먹였다. 정민이는 현재 서울 시립 신림청소년쉼터에서 지낸다. 쉼터 규정상 한 달 이상을 머무르지 못하기 때문에 2주 후에는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한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아무것도 없다”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가출 청소년들은 하나같이 집에서 나오면 “갈 곳이 없다”라고 호소했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는 가출 청소년들이 머무를 수 있는 쉼터가 몇 군데 있다. 서울의 경우 일시 쉼터(이동형 쉼터) 두 곳, 단기 쉼터(1개월) 다섯 곳, 심사를 거쳐 최대 2년까지 지낼 수 있는 중·장기 쉼터 네 곳이 있다.

하지만 쉼터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쉼터 수가 지금보다 두 배는 더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현자 청소년쉼터협의회 사무국장은 “가출한 아이들이 쉼터를 알지 못해 입소하지 못하는 숫자가 50% 정도 된다. 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요양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해야 비행 범죄, 성폭행, 성범죄 등에 노출이 안 된다. 그렇게 하려면 쉼터를 더 알려야 한다. 가출한 아이들은 상처가 많기 때문에 가정과 같은 따뜻한 쉼터가 필요하다. 정부가 예산 지원을 해서 쉼터를 더 늘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쉼터에 임상심리사와 자립 지원 전담요원이 배치되어서 근본적인 치료가 이루어져야 사회적인 자립이나 경제적인 자립이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국장은 또 “가출 긴급 전화가 있어야 한다. 여자아이 같은 경우 가출하면 PC방에서 채팅으로 잠 재워줄 곳을 찾는다. 그러다가 성폭행당하고 자포자기해서 성매매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가출했을 때 바로 전화해서 상담받을 수 있는 긴급 전화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서울 시립 신림청소년쉼터에서 만난 가출 청소년들도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김정수군(가명·19)은 “지역마다 쉼터가 있으면 좋겠다. 쉼터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도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영우군(가명·18)은 “쉼터에 들어가려면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부모와 싸워서 나왔거나 폭행에 시달려서 나왔는데,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가출 청소년들을 위해 국비로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원이 있으면 좋겠다. 청소년 쉼터의 복지 기금도 더 늘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정환군(가명)은 “쉼터 근처에서 무슨 일만 터지면 경찰이 우리한테 찾아온다. 우리를 먼저 의심하고 범죄자처럼 취급한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박윤희 서울시립 청소년쉼터 보호상담팀장은 “현재 청소년 쉼터에 적용하고 있는 법 자체가 엄격하다. 청소년 근로에 대한 다른 시각이 있어야 한다.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공부만 해야 한다’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가출한 아이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자유로운 생활이 그리워 집 나왔다” 가장 많아
<시사저널>의 가출 청소년 현장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시사저널>은 거리와 쉼터에서 가출 청소년들을 만나 ‘가출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총 16명(남자 12명, 여자 4명)이 답변했다.

‘가출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1개월 이내’(7명), ‘6개월 이내’(4명), ‘1년 이내’(1명) 순이었고, ‘1년 이상’도 네 명이나 되었다. ‘지금까지 가출을 몇 번이나 했느냐’라는 물음에는 ‘3번 이상’(11명)이라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가출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번 이상’이 한 명 있었고, ‘10번 이상’이라는 답변도 있었다. ‘언제 처음 가출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중학교’(8명), ‘초등학교’(3명), ‘고등학교’(2명) 순이었다. ‘가출하기 전의 성적’에 대해서는 ‘상위권’이 4명, ‘중위권’이 3명, ‘하위권이 7명이었다. 한 명은 ‘학교에 전혀 다니지 않았다’라고 답변했다.

‘가출한 이유’로는 ‘자유로운 생활이 그리워서’가 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부모님이 때리고 욕해서’(4명), ‘학교 가기 싫어서’(3명), ‘친구가 가출하자고 해서’(2명), ‘경제적인 사정이 안 좋아서’(2명) 순이었다. 기타 ‘심심해서’ ‘집이 싫어서’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집이 없어져서 어쩔 수 없이’도 각각 한 명씩 있었다.

‘가출 후 생활비는 어떻게 해결했느냐’라는 질문에는 ‘아르바이트’가 7명, ‘이전에 모아둔 돈으로’가 4명이었다, ‘성매매’와 ‘다른 사람의 돈을 훔치거나 빼앗아서’는 각각 3명이었다. ‘친구나 선배의 도움으로’(2명), ‘구걸’(1명)이라는 응답도 있었다.

쉼터에서 만난 10대 후반의 한 남자아이는 가출한 후 성인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 후 한동안 동성 남자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만난 열여섯 살 여자아이도 성인 남성과 성매매를 통해 용돈을 벌었다고 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