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 삼총사, 금융 지도 바꾸나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0.12.0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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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 김승유·KB금융 어윤대·우리금융 이팔성, 외연 확대·내부 혁신 등으로 앞세워 잰걸음

 

 금융지주 회장 3명이 한국 은행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업무 효율이나 경쟁력에서 앞서가던 신한금융지주가 ‘리더십 위기’ 탓에 휘청거리는 사이 금융지주 CEO(최고경영자) 3명은 외연을 확대하거나 해묵은 난제를 하나씩 매조지하면서 은행 산업의 경쟁 구도를 다시 짜고 있다.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KB금융지주가 은행 산업 판도를 바꾸면서 솥발처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외환은행을 인수해 자산 규모 3백16조원의 금융 복합체를 만들어냈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정부가 소유한 우리금융지주 지분(56.97%)을 인수할 독자 컨소시엄을 구성해 민영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취임 4개월 만에 인원 구조조정을 완료하고 조직 내 줄서기 폐단을 없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한금융은 ‘리더십 위기’로 휘청

김승유 회장은 “외환은행 인수는 45년 은행업 종사자로서 인생 최고의 하이라이트이다”라고 밝혔다. 외환은행 인수로 인해 하나금융은 국내 은행 업종 3위(자산 규모 기준)에 올랐다. 성병수 동양종합금융증권 애널리스트는 “규모가 작아 기업 가치가 낮게 평가되던 것이 해소되어 주주 가치가 높아지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나금융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금융지주 인수전에 참여할 뜻을 밝혀왔다. 론스타는 호주 ANJ은행과 외환은행에 대한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김승유 회장은 끝까지 우리금융과 외환은행 사이에서 저울질하다가 인수 대상을 전격적으로 우리금융에서 외환은행으로 바꾸었다. 론스타와 ANJ은행 사이에 매매 가격을 두고 의견 차가 커지자 론스타와 협상을 개시해 전광석화처럼 타결 지었다. 하나금융의 한 관계자는 “김승유 회장은 인수 부담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데다 인수·합병(M&A)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인수 대상으로 외환은행을 최종 낙점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 협상 개시를 선언한 지 채 달포가 지나지 않아 인수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래서 자산 100조원이 넘는 회사의 인수·합병 협상치고는 지나치게 성급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김승유 회장의 임기가 내년 3월에 만료되는 것을 감안한 행보라는 말까지 나왔다. 김승유 회장은 지난 2005년 12월 하나금융 출범과 함께 회장직에 올라 연임하고 있다. 신한금융이 최고 경영진의 내분으로 인해 혼란을 겪자 금융지주사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연임 구도에서도 유리한 입지 다져

하나금융 지배구조는 신한금융을 연상시킨다. 김승유 회장은 은행권 최장수 CEO이다.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 못지않게 장기집권하고 있는 것이다. 라회장이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과 함께 트로이카를 구축한 것처럼 김회장도 김종열 하나금융 사장, 김정태 하나은행장과 함께 최고 경영진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김승유 회장의 입지도 흔들렸다.외환은행 인수는 반전의 계기가 되었다. 김승유 회장은 아직 재임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으나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재임이 확실시된다. 또, 외환은행이라는 조직을 하나금융 체제 안으로 통합해야 하는 작업이 남아 있어 한 차례 더 연임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지금 민영화 작업에 ‘올인’하고 있다. 아침마다 윤상구 전무와 김홍달 상무를 비롯해 지주사 임원 전원이 참석하는 민영화 대책회의를 열고 있다. 이팔성 회장은 우리금융이 주도하는 우리금융 인수 컨소시엄을 만들어냈다. 이팔성 회장은 1천억원 이상의 투자자 상당수를 만나 컨소시엄 참가를 설득했다. 우리금융 컨소시엄에는 우리사주조합, 고객사, 전략적 투자자를 비롯해 투자자 4천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금융 임직원은 이팔성 회장 못지않게 민영화를 원했다. 11년 이상 끌면서 지지부진하던 민영화가 가시권에 들어오자 우리금융 임직원은 인수 컨소시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우리사주조합 소속 조합원 1만9천명 가운데 1만7천명이 청약에 참여했다. 청약 금액은 9천억원가량으로 전체 지분의 8%에 이른다. 부장은 7천만원, 부부장은 6천만원, 차장은 5천만원으로 청약 기준금액이 정해졌다. 청약률은 1백20%에 이르렀다.

‘리딩뱅크 설립’ 경쟁 치열해질 듯

우리금융 외에 9곳이 인수전에 참가하고 있다. 정부 지분 전부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곳은 우리금융 컨소시엄이 유일하다. 김홍달 우리금융 민영화지원팀 상무는 “세계 금융 위기가 한창인 2008년 6월 이팔성 회장이 우리금융 민영화를 주장하자 모두 웃었다. 이회장은 수천 명이 넘는 기관투자자, 사모투자펀드(PEF), 고객사를 만나 우리금융 인수전에 참여할 것을 설득했다. 우리금융의 민영화를 실현시킨 것은 이팔성 회장의 의지와 역량이다”라고 말했다. 이팔성 회장은 내년 6월 임기가 만료된다. 우리금융 주도 컨소시엄이 우리금융 인수에 성공한다면, 이팔성 회장은 연임이 확실시된다. 이회장이 우리금융 민영화의 일등 공신으로서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기관투자자, 고객사, 우리사주조합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김승유 회장과 이팔성 회장이 회사 밖에서 활동하면서 외연을 확대하거나 투자자를 끌어들였다면, 어윤대 KB금융 회장은 집안 문제 해결에 치중했다. KB금융은 자산 규모나 소매 금융 면에서는 신한금융을 앞서지만 생산성에서는 형편없다. 인력 운영이 방만하다 보니 1인당 매출액이 경쟁 업체보다 떨어진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출신별로 계파가 형성되어 조직의 화학적 융합이 힘든 지경이다. 이 와중에 어윤대 회장은 취임 이후 업무를 파악하자마자 3천2백44명에 이르는 인원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3년치 연봉을 한꺼번에 지급하는 조건으로 희망퇴직을 반강제적으로 시행했다. 그동안 노동조합과 수구 세력의 반대로 불가능했던 조처였다. 어회장은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행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어윤대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첫 번째 실행한 조처가 국민은행 인원 구조조정이었다. 민병덕 국민은행장이 있지만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어회장이 행장인 양 행동하며 구조조정 작업을 주도했다”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조직 안팎에서는 어윤대 회장이라서 인적 구조조정 작업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인원 조정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국민은행 구성원 모두 동의한다. 어회장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았다”라고 말했다. 어회장은 수십 년 동안 고질병으로 자리 잡은 조직 내 줄서기 관행을 깼다. 국민은행의 내부 관계자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출신 사이에 비율을 고려하는 채널 안배라는 인사 관행이 존재한다. 어회장은 이 관행마저 무시할 기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어윤대 회장은 지금 취임 4개월 만에 고질적인 인사와 조직의 폐단을 정리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세 사람이 풀어야 할 과제는 제각각이지만 지향하는 목표는 같다. ‘대한민국 리딩뱅크’라는 숙원이 그것이다. 국내 은행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려면 두 가지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국내 금융지주 ‘빅4’가 3백조원이 넘는 자산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세계 유수 상업 은행과 비교하면 턱없이 덩치가 작다. 세계 최대 은행 미쓰비시UFJ 그룹은 자산 2천조원 안팎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2위 은행 씨티그룹은 1천5백조원가량의 자산을 자랑한다. 자산 규모와 경영 실적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운용 자산이 많을수록 1인당 매출액이 커지면서 매출 원가나 판관비가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들어 수익성 개선에 유리하다. 국내 금융 산업 재편 시나리오가 나올 때마다 ‘메가뱅크(거대 은행)’ 설립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와 함께 경영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국내 은행 산업은 예대 마진(대출 이자 수입에서 예금 이자 비용을 뺀 수익)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갖가지 선진 금융 서비스를 도입하거나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해 수입원을 다변화해야 한다. 급한 불을 끈 세 금융지주 CEO는 이제 ‘리딩뱅크 설립’이라는 새로운 경쟁 트랙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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