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박연차, 박지원·우윤근 의원에게 돈 줬다 진술”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11.15 13: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연차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갑작스럽게 봉합되었던 당시 수사 내용에 대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시사저널>을 통해 처음 밝혀지는 그 ‘폭탄 증언’을 공개한다.

# 장면1.

▲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지난 10월5일 저녁, 기자는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식당에서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을 만났다. 모임에 참석한 인원은 기자와 이 전 부장을 포함해 10여 명이었다. 이 전 부장은 지난해 5월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지휘했다. 수사 와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수사를 중단했고, 7월에 검사 옷을 벗었다. 25년 만에 검찰을 떠난 것이다.

기자가 이 전 부장을 만났던 당시 시점은 국회 국정감사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의 차명 계좌 발언’ 파문으로 인해 10월18일에 예정되었던 국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된 상황이었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이날 그는 상당히 울분에 찬 목소리로 민감한 사안들을 입에 올리기도 했다. 이 전 부장은 “국감에 (증인으로) 나갈지 안 나갈지 모르겠다”라면서 “(국회) 법사위에 박연차(전 태광실업 회장)로부터 돈 받은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 박연차 진술이 그랬다. 그런데 나를 (증인으로) 부르다니 참 이해가 안 된다. 국감장에 증인으로 나가게 되면 얘기할 수도 있다. ‘여기 계신 의원님들 중에 두 분이…’”라는 충격적인 말도 토해냈다. 상당히 격한 감정이었고 목소리도 높았다. 자신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한 국회의원들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한 셈이다. 

그는 “솔직히 박연차 사건이 터지자 대다수 야당 의원이 ‘노무현을 버려라’ ‘굿바이 노무현’이라고 하지 않았나. 야당에서 누구 하나 봉하마을에 가서 (노 전 대통령과) 술 한 잔 하면서 ‘정권이 바뀔 때까지 참고 기다리시라’라고 했다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라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강한 연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맨 오른쪽)이 박연차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증언한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맨 왼쪽)과 우윤근 국회 법사위원장(가운데).

 

# 장면2.

다음 날인 10월6일 기자는 서울 강남에 있는 이 전 부장의 변호사 사무실 앞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기자가 “법사위 소속 의원 가운데 누가 박연차 회장의 돈을 받았느냐”라고 질문했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수사 당시 박연차가 그렇게 진술했다. 그 의원들이 누구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현역 의원 두 명이 있었던 것은 맞다. 당시 수사팀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라고만 했다.

이 전 부장은 결국 10월18일 대검 국감장에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았고, 국회 법사위로부터 증인 불출석을 사유로 고발당했다. 

# 장면3.

지난 11월2일 점심 시간, 기자는 이 전 부장과 단둘이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다시 마주앉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기자가 다시 “아직 공개되지 않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법사위 소속 의원들이 있다고 했는데, 누구인가?”라고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이 전 부장은 식사하던 것을 멈추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민주당 의원들이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박연차’라고만 불렀다. 이 전 부장은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1년 넘게 속으로 감추어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하지만 <시사저널>은 당시 중수부를 이끌면서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이 전 부장의 비중과 이날 발언 내용이 갖는 파괴력을 감안해 실명을 공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박연차 게이트’의 실체에 가장 근접해 있는 인물이다. 다음은 이날 이 전 부장과 주고받은 일문일답이다. 

 


 

박연차 전 회장이 돈을 주었다고 진술한 민주당 의원들은 누구인가?

현재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박지원 의원과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우윤근 의원, 두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 얼마를 받았다는 것인가?

구체적으로 언제 돈을 받았다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참여정부 시절이었다. 박대표는 신라호텔 2층에 있는 중식당에서 1만 달러를 받았다. 우위원장이 받았던 돈의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2만 달러 정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박대표가 받았던 액수보다는 많았다. 당시 수사팀에서도 우위원장은 의외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박연차는 주로 신라호텔 식당을 이용했다.

당시 두 의원에 대해 수사를 하지 않았나?

박연차가 (지난해)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돈을 건네주었다’라고 진술했던 정치인들 가운데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정치인은 이 두 사람이다. 당시 박연차의 진술을 확보해놓은 상태였고, 본격적으로 수사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하는 바람에 수사에 들어가지 못한 채 (수사가) 종결되었다.

박지원 대표와 우윤근 위원장 등에 대한 수사가 뒤로 미루어진 까닭은 무엇인가?

박연차에게서 받은 돈의 액수가 다른 정치인들보다 적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수사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돈을 받았다는 것을 어느 선까지 알고 있나?

당시 (대검 중수 1과장이었던) 우병우(현 대검 수사기획관) 등 수사팀 관계자들은 다 알고 있다. 지금 총장(김준규 검찰총장)과 차장(차동민 대검 차장)도 다 알고 있다.

박 전 회장이 돈을 주었다고 진술한, 아직 공개되지 않은 여당 의원은 더 없었나?

박연차는 자신이 돈을 주었던 여권 인사들에 대해서는 잘 말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신의 변호인과 상의해가면서 진술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여권 인사들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나마 검찰이 강하게 수사하자 한나라당 박진 의원과 이상철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을 진술했다. 그것도 박연차가 자신의 변호인과 상의해서 진술했던 것으로 보였다. 여야 간의 형평성을 맞추려고 그 사람들(여권 인사들) 이름을 말한 것 같다. 검찰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서 판단했던 모양이다. 수사도 다 안 되고 박연차가 다 진술하지 않아서 그렇지 (돈 받은 사람은) 더 있었을 것이다.

박 전 회장은 어떤 사람인가?

▲ ‘박연차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09년 4월2일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가운데)과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맨 오른쪽) 등이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대검 청사 구내식당으로 가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그 사람은 순진한 사람이다. 나이키 신발 만드는 자기 사업만 했어도 감옥 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신발 만들면서 굳이 사람들한테 밥 사고 술을 사고 돈을 줄 필요는 없으니까. 나이키 본사와만 잘 지내도 되니까. 참여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사람들한테 술을 사고 밥을 사도 대접을 못 받았다고 한다. 사람들한테는 예전에 (박 전 회장이) 마약, 연예인과 연루된 불미스런 사건과도 겹쳐지는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권이 (참여정부로) 바뀌니까 사람들이 ‘실세’ 대접을 하며 달라졌다고 한다.

‘박연차 게이트’는 왜 터졌다고 보나?

박연차는 최종 학력 등에서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태광실업을 통해) 최고의 신발을 만들었지만 자기만의 브랜드가 없었다. 자기는 하청업체의 사장이라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이름으로 사업하고 싶어서 인수했던 것이 농협의 알짜배기 회사였던 ‘휴켐스’였다. 휴켐스를 인수하려고 당시 정대근 (농협) 회장한테 수십억 원씩 갖다 준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여기저기에 돈을 줬던 것으로 보인다.

(정대근 전 농협 회장은 2007년 6월 박 전 회장이 농협 자회사인 ‘휴켐스’ 지분을 인수하면서 그 대가로 주었던 2백5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2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51억원을 선고받았다.)

지난 9월 ‘중앙SUNDAY’에 소개되어 논란이 된 노 전 대통령의 차명 계좌는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노 전 대통령의 차명 계좌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맞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바람에 수사가 다 진행되지는 못했다. 확인된 것은 없다. (그럼에도) 차명 계좌로 의심할 만한 계좌는 있었던 것 같다.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도 박연차 회장한테서 돈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더 전달된 돈은 없었나?

박연차에게서 베이징올림픽 때 받은 돈 말고도 더 받았다고 추정되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해 수사를 하지 못했다.

(천회장은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 당시 박 전 회장으로부터 중국 돈 15만 위안(약 2천5백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천회장은 법정에서 “세무조사 무마 청탁으로 받은 돈이 아니었다”라면서 “그 돈은 올림픽 심판에게 썼다”라고 진술했다. 법원은 천회장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박연차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직전 공교롭게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미국으로 출국했다. 박연차 사건과 직접 관련 있었던 것인가?

박연차 사건과 직접 관련 있어서 출국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 인사 청탁을 위한 그림 로비 등 자신의 개인 문제가 컸던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정은 어땠나?

그날(2009년 5월23일) 아침에 잠을 자고 있다가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노 전 대통령이 ‘실족’한 것인가 생각했다. 그러다 ‘그래도 경호원이 옆에 있을 텐데 실족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곧 ‘자살’로 나왔다. 서거하신 다음 아무도 날 찾지 않았다. 언론도 바짝 엎드렸다. 나만 남은 것 같았다. 그때 검찰의 선배님 한 분이 내 방에 찾아오셔서 ‘사표 내지 마라’라고 다독여주셨다.

노 전 대통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나는 검사였다. 검사는 전직 대통령이더라도 혐의가 있으면 수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박연차 수사’와 관련해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쓸 계획은 없나?

수사한 다음에 그 무엇이 있는지는 그것을(수사를)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직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책을 쓰지는 못한다. 몇 마디 인터뷰로 끝날 일도 아니다.

 


 

이 전 부장은 그 밖에도 이날 ‘박연차 게이트’ 당시의 수사 과정과 아직도 베일에 가려진 의혹들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사안’이 워낙 큰 데다, 현재로서는 사실 확인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사저널>은 이 전 부장의 증언과 관련해 박연차 전 회장의 답변을 듣고자 접촉했다. 하지만 박 전 회장측은 “박 전 회장의 현재 거취와 변호인 등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라고만 답변했다.

이 전 부장이 박 전 회장으로부터 각각 1만 달러와 2만 달러 정도를 받은 것으로 거명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우윤근 법사위원장은 발끈했다(19~20쪽 상자기사 참조). 박대표는 “박 전 회장을 서너 번 만난 적은 있지만 그런 것(돈을 받은 것)은 없었다”라고 부인했다. 우위원장도 “(전남) 순천고 후배가 사장인 휴켐스에서 5백만원을 후원금으로 받은 적은 있지만 그 외에는 일절 받은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박연차 전 회장이 박지원·우윤근 의원 두 사람에게도 돈을 전달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라는 이 전 부장의 증언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박 전 회장의 진술이 사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 전 부장의 증언대로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를 벌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박 전 회장이 지난해 검찰에서 돈을 주었다고 진술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난 바 있다. 그만큼 박 전 회장의 진술을 ‘거짓’이라고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인규 전 부장의 증언은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 등에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중단되었던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른바 ‘노무현 수사 기록’을 공개하라는 주장이 불거질 수도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