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항공 대란, 12억 유로 날렸다
  • 파리·최정민 | 통신원 ()
  • 승인 2010.04.2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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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비행 금지로 인한 사망자는 없어…금지 조치 타당성 싸고 논쟁 벌어지기도

12억2천2백만 유로(우리 돈 약 1조7천억원).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구름의 가격이다. 다름 아닌 에이야프왈라요쿨, 아직 국제 정식 발음도 명확하지 않은 아일랜드의 화산이 토해낸 화산재 구름으로 인한 피해액의 규모이다. 지난 4월22일 사상 초유의 항공 대란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계산서가 나왔다. 유럽 전역의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되었던 5일 동안 항공사가 입은 손실액의 잠정 규모는 10억2천2백만 유로이며, 발이 묶였던 전체 여행객이 입은 손실의 잠정 규모는 2억 유로이다.

▲ 4월17일 프랑스 칼라이스 항구에서 카페리를 이용하려는 승용차들이 승선하기 위해 빼곡히 줄지어 정차해 있다. ⓒAP연합

지난 4월16일 잠에서 깨어난 화산이 토해낸 화산재가 유럽의 하늘을 뒤덮자, 유럽 하늘을 관리하는 유로컨트롤은 즉각적인 비행 금지 조치를 발효했다. 때는 마침 부활절 휴가를 마치고 귀향길에 오른 여행객이 몰리는 시기여서 그 여파가 더 컸다. 사태의 절정이었던 4월16일의 경우 1만7천편의 항공기 운항이 취소되었으며(평상시 취항 대수는 2만9천5백편), 17일은 2만편이 취소되었다. 당시 발이 묶인 여행객은 잠정적으로 12만명에 달했다.

항공기 운항 금지로 육로를 이용하거나 해로를 이용한 각양  각색의 귀환 경로도 화제가 되었다. 방송 출연 관계로 노르웨이를 방문했다가 발이 묶인 영화배우 존 클리스는 1천5백km 떨어진 벨기에로 되돌아오는 데 3천8백 유로를 써야 했다. 영국과 아일랜드 순회 공연 중이었던 휘트니 휴스턴은 배편으로 이동해야 했다. 미국에서 돌아오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리스본을 거쳐 로마에 도착한 뒤 항공편이 없자 대형 버스를 이용해 이동하던 중 바퀴가 펑크 나는 통에 승용차로 환승해 가까스로 베를린에 돌아갈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축구팀은 유럽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을 치르기 위해 밀라노까지 9시간을 버스로 이동했고, 장시간의 이동으로 피로가 누적된 채 치른 경기에서 3 대 1로 패했다.

그러나 그나마 목적지로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었다.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택시의 요금은 1천 유로에서 1만 유로까지 폭등했으며, 유럽 전역을 버스로 연결하는 ‘유로라인’에는 평소보다 6백% 이상의 이용객이 몰려들었다.

프랑스 영공의 항공 운항이 전면 금지된 상황에서 가장 민감했던 문제는 다름 아닌 환자 후송이었다. 파리 공항의 이착륙이 금지되자 환자 후송은 지방 병원 간의 이동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항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장기 적출의 경우 촌각을 다투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콩팥의 경우 24시간에서 36시간이지만, 10시간 미만인 간과 3~4시간 미만에 이식해야 하는 폐·심장의 경우에는 항공 이동이 절대적이었다. 알랑 아티노 바이오메디신 장기적출소 소장은 “적출한 장기를 잃지 않기 위해 비행 이동이 가능한 지방의 환자들에게 우선권을 주었다”라고 밝혔으며, 베르나르 크슈너 외무부장관은 “이번 사태 와중에 항공 비행 금지로 인한 환자 사망자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 4월19일 에어프랑스-KLM 항공사의 한 임원이 자사의 항공기 운행 중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FP연합

프랑스 여론조사 결과 “항공기 운항 금지 잘했다” 70%

전대미문의 사태였던 만큼 각 정부와 항공사 그리고 유럽 항공을 통제하는 유로컨트롤과의 논쟁 또한 끊이지 않았다. 국제 항공연합의 지오바니 비시나니 회장은 “유럽은 지금 이론에만 의존해 규제를 앞세우고 있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항공기 운항이 전면 금지되자 에어프랑스와 루프트한자 그리고 브리티시 에어라인 등 3대 메이저 항공사는 화산재 발생 지역에 승객을 태우지 않은 여객기를 시험 운행한 후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강조하며 유럽연합을 압박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난 4월21일 화산재 구간을 지난 나토연합의 F16 전투기가 화산재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자 다시 혼란이 가중되는 양상이었다.

프랑스 메테오의 기상 전문가는 “위성 사진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며, 이제야 겨우 과학적 분석이 시작되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프랑스의 여론조사 기관인 BVA가 프랑스 민영 까날 플뤼스의 의뢰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인 10명 가운데 7명은 각국의 항공 금지 조치를 “책임감 있는 조치였다”라고 긍정적으로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지난 사스의 경우와 대비되는데, 당시 사스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는 “사스를 지나치게 과대 평가했다”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국제항공연합은 경제 위기 여파를 가까스로 넘어서고 있었던 정부에 지원을 요청한 상태이며, 유럽연합은 항공사에 대한 각 정부의 특별 지원에 일단은 호의적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은 곳은 항공업계뿐만이 아니다. 유럽 최대의 유통업계인 헝지스는 항공에 의존한 물품 시장이 텅 빈 풍경을 연출했으며, 네덜란드발 장미는 가격이 다섯 배 가까이 폭등하기도 했다. 운송 전문 업체인 DHL은 대륙 내부 운송을 차량으로 대체해야만 했다.

사상 초유의 항공 금지 조치가 우울한 소식만 전한 것은 아니었다. 공항 인근의 주민들은 비행기 소음이 없는 최초의 주말을 맞았다며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서든 철학적인 담론을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프랑스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다양한 철학적 분석들을 내놓고 있다. 한 시사평론가는 “비행기가 사라지자 땅이 얼마나 넓은지 알게 되었다”라는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프랑스 한림원 회원인 문학가 쟝 도르무송은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각 정부들의 항공 제재 조치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전제하며 “자연 앞에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지적처럼 유럽 전역을 뒤덮었던 화산재를 확실히 해결한 것은, 결국은 다시 자연, 남향에서 동쪽으로 방향만 살짝 바뀐 바람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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