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떡’ 된 오픈마켓 모바일 게임
  • 권건호 | 전자신문 기자 ()
  • 승인 2010.03.2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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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스토어에 무진장 떠도 국내 사전 심의에 걸려 ‘이용 불가’…법 개정돼야 ‘숨통’

 

▲ 애플 앱스토어 국내 계정에는 게임 카테고리가 없다. 왼쪽부터 베이스볼 수퍼스타 2010, 스노크로스. ⓒLG전자·컴투스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아이폰이 출시되자마자 아이폰을 구입한 이 아무개씨(31)는 평소 즐겨 하던 프로야구 모바일 게임을 다운받기 위해 앱스토어를 검색했다. 하지만 한국 앱스토어에는 게임 카테고리 자체가 없었고, 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에 게임들이 일부 있었지만 원하는 프로야구 게임은 찾을 수 없었다. 이씨는 애플코리아와 KT에 문의해본 결과 한국 앱스토어에서는 사전 심의 문제로 당분간 게임이 서비스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안드로이드폰인 모토로이를 구입한 또 다른 이 아무개씨(29)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안드로이드마켓에서 인기 있는 유료 게임 중 하나를 다운받으려 했는데 결제 자체가 불가능했다. 구글이 제공하는 온라인 결제 서비스인 ‘구글 체크아웃’이 국내에서 서비스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무료 게임은 다운받을 수 있었지만, 조만간 안드로이드마켓 접속이 차단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와 걱정이다.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안드로이드마켓 등 글로벌 콘텐츠 오픈마켓이 등장해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심의 문제로 게임 콘텐츠를 이용할 수 없어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난 3월10일 게임물등급위원회가 구글코리아에 안드로이드마켓에서 제공하는 무료 게임도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물인 만큼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드로이드마켓에 대한 접속을 차단하겠다는 시정 권고 조치를 내려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앞서 애플 앱스토어에서도 심의 문제가 불거져 한국에서는 게임 카테고리를 삭제하고 서비스하고 있다.

오픈마켓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모든 게임을 사전에 심의받도록 한 국내 제도와 글로벌 기업들이 적용하는 서비스 정책 간 충돌이다. 현행법은 게임물 사전 심의를 규정한 탓에 애플과 구글이 오픈마켓에서 게임을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심의를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국내 개발자가 개발한 게임이라면 모르겠지만, 전세계에서 수많은 개발자가 수시로 개발해 등록하는 게임을 하나하나 심의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지난 3월16일 미국 시장조사 업체인 몹클릭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애플 앱스토어에 등록된 게임은 모두 2만5천3백30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앱스토어뿐만 아니라 안드로이드마켓, 윈도마켓플레이스 같은 다른 오픈마켓까지 합치면 게임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처럼 엄청난 수의 게임을 게임위가 모두 심의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국내와 외국의 등급 분류 체계가 다른 것도 장벽이다. 국내에서는 게임 등급이 전체 이용가, 12세 이용가, 15세 이용가, 청소년 이용 불가로 나뉜다. 그러나 애플 앱스토어는 4세 이상, 9세 이상, 12세 이상, 17세 이상으로 구분한다. 각 등급에 적용하는 기준에도 차이가 있다. 예컨대 고스톱이나 포커 게임은 한국에서는 청소년 이용 불가 등급인 데 반해, 외국에서는 금전이 결부되지 않는 게임은 ‘모의 게임(simulated game)’으로 분류해 청소년도 이용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앱스토어 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에는 고스톱 게임이 12세 이용 등급으로 판매되고 있다. 화보나 노출 같은 성인 콘텐츠에 대한 기준도 달라 문제로 지적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이 사전 심의에 부정적이라는 점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원인이다. 애플은 사전 심의를 거부한 탓에 앱스토어에 게임 카테고리를 삭제한 채 서비스하고 있다. 구글도 아직까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애플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구글은 앞서 유튜브가 본인 확인제를 도입하자 검열이라며 이에 반발한 바 있다. 전세계에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글로벌 동일 서비스 전략이 핵심 가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사용자들, 외국 계정 만들어 다운받는 편법 사용

▲ 애플 앱스토어 국내 계정에는 게임 카테고리가 없다. 스노크로스. ⓒ2XL 코리아

구글이 국내법을 준수하겠다고 해도 사전 심의를 받기는 어렵기 때문에 애플처럼 게임 카테고리를 차단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구글이 게임 카테고리를 차단하지 않는다면 게임위가 경고한 대로 안드로이드마켓 접속이 차단되어 국내 안드로이드폰 이용자들이 엄청난 불편을 겪게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논란으로 인해 이미 국내 소비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은 오픈마켓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핵심 콘텐츠 중 하나인데, 국내 소비자만 이용하지 못하는 역차별을 받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미국이나 홍콩 등 외국 계정을 만들어 콘텐츠를 다운받는 편법을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는 외국에서 쓸 수 있는 체크카드를 만들어 외국 계정을 이용하는 방법, 선불카드를 구매해 콘텐츠를 다운로드받는 방법 등 다양한 편법이 소개되어 있다. 지난 1월에는 KT가 쇼 홈페이지에 외국 계정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일명 ‘탈옥’이라고 불리는 해킹을 시도하는 이용자들도 많다. 그러나 탈옥을 하게 되면 향후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 애플 앱스토어 국내 계정에는 게임 카테고리가 없다. 베이스볼 수퍼스타 2010. ⓒ게임빌

게임업계 역시 불만이다. 아이폰 국내 판매 대수가 40만대를 넘어섰고, 안드로이드폰도 연이어 출시를 앞두고 있음에도 한국에서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는 길이 불분명해서다. 아직은 단말기 대수가 많지 않지만, 스마트폰 열풍과 함께 단말기 보급이 급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어 앞으로가 더욱 문제이다.

게임빌과 컴투스 등 국내 대표 모바일게임 업체들은 해외 오픈마켓에서 최고의 게임으로 잇달아 선정되는 등 주가를 높이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게임위와 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 한 모바일 게임업체 사장은 “국내 앱스토어에 게임을 서비스하는 문제가 얼른 풀려야 한다. 한국 시장이 단말기 대수는 많지 않아도 국내 유저들의 니즈에 맞는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는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복잡한 문제이지만 해결 방법은 있다. 지금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게임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통해 문제를 풀 수 있다. 정부가 지난 2008년 11월 발의한 게임법 개정안은 자율 심의 제도의 부분적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2009년 5월에 대표 발의한 게임법 개정안은 게임 서비스업자가 등급위원회가 제시한 기준을 참고해 등급 분류를 한 후 유통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두는 것이 핵심이다. 이 두 개정안은 국회에서 함께 논의되고 있지만, 여전히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 파행 등을 겪으며 제대로 논의도 되지 않은 상태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국회도 4월 국회에서 법안을 심의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는 이제라도 논의를 서둘러서 조속히 게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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