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국가들, ‘재정 적자’ 한파에 ‘벌벌’
  • 조명진 | 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09.12.2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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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소폭 증가했지만 금융 위기 이후 경기 침체로 흔들…스페인과 그리스 등 위험 수위에 다달아

 

▲ 2009년 10월 말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정부 일자리센터에 구직을 원하는 실업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모건 스탠리는 2010년 전세계 국내총생산(GDP) 평균 성장률을 4%로 전망하지만, 유럽연합(EU)는 0.7% 성장밖에 기대하고 있지 않다. 올 11월에 유로존 GDP(국내총생산)은 0.4% 증가함에 따라 경제는 경기 침체를 탈피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 경기 침체는 EU 회원국들의 재정에 커다란 부담을 주어, 유로화를 사용하는 16개 EU 회원국의 재정 적자는 2009년 GDP의 6.4%, 2010년에는 6.0%로 증가할 것으로 EU 집행이사회는 전망하고 있다. 더욱이 확대일로에 있는 재정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면 2011년에는 부채가 88%로 늘어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재정 적자가 큰 13개 회원국들은 2014년까지 적자 폭을 GDP의 3%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아일랜드 같은 나라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향후 5년간 매년 GDP의 2%에 해당하는 지출을 삭감하거나 세금을 올려야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독일의 경우는 향후 3년간 GDP의 0.5%만 세금을 낮추면 된다. 한편, 지난 3개월간 하강세를 보인 독일의 소비 심리 위축 현상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투자도 2008년과 대비해 22%나 줄어들었고, 제조·무역 업종 기업들은 은행 대출을 받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하는 것을 볼 때, 단기적인 경기 회복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세금을 증액하는 대신 긴축 재정을 택하는 방법은 아일랜드나 스페인 같은 나라에서는 적용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왜냐하면 아일랜드는 2007년 이래로 세금 징수액이 3분의 1로 줄었고, 스페인의 경우 한때 주택 경기 호황에서 얻어진 세입이 거품으로 인해 고갈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정부는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부가가치세율을 기존의 16%에서 2010년 7월부터 18%로 인상할 계획이다. 

2009년 3/4분기에 대다수 EU 회원국들이 경기 침체에서 벗어났지만, 스페인 경기는 6분기째 하강 국면을 맞고 있다. 스페인의 실업률은 19%로 EU 내에서 라트비아 다음으로 높다. 스페인은 2007년에 주택 시장의 버블을 경험했기 때문에 아무리 낙관적으로 보아도 2011년이 되어서야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페인 고용 시장의 문제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영구 계약직이어서 해고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비효율성과, 단기 고용 계약자들은 경기가 침체되면 직장을 먼저 잃게 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영구 계약 제도는 젊은 노동력을 키우는 데 동기 부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일반 근무 시간이 다른 EU 회원국과 다른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통상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근무하는 것과는 달리 10시에서 1시 반, 4시간의 낮잠 시간 이후, 5시에서 8시까지가 스페인의 근무 시간이다.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그리스, 2011년 부채가 GDP의 1백35%로 늘어나 파산 직면할 듯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 중앙은행 본부. ⓒ연합뉴스

 

유럽연합 회원국 중 파산할 위험을 안고 있는 나라는 그리스이다. 2009년의 재정 적자는 GDP의 12.7%에 달한다. EU 집행 이사회는 그리스가 이와 같은 재정 적자를 줄일 만한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대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경우, 그리스의 부채는 2011년에 GDP의 1백35%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부정적인 전망에도 그리스의 10년 상환 채권 수익률이 5% 정도인 이유는, 유로존의 다른 회원국들이 그리스가 파산하지 않도록 개입할 것이라는 전제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의 파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럴 경우, 유로화는 국제 신임도에 손상을 초래하고, 최악의 경우 스페인·아일랜드·이탈리아처럼 재정 적자가 큰 회원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유로화의 약화를 우려하는 독일 등 메이져 EU 회원국의 입장이다.

2001년 유로존에 들어가기 위해서 재정 적자 규모를 의도적으로 GDP의 3% 이하로 줄인 적이 있는 그리스이기 때문에 그리스 통계는 신뢰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인식이 유럽연합 내에 있었다. 그런데 2009년 예상 재정 적자 또한 예상했던 6%의 두 배가 넘는 12.7%에 달함에 따라 종전의 인식을 더 고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그리스 정부의 통계는 상당 부분 선거용이라는 점에서 신뢰성을 의심받는다.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지난 정부의 실정을 들추는 것은 그리스라고 다르지 않다. 새로 정권을 잡은 지 11주밖에 안 된 파판드레우 총리는 12월10일 열린 EU 정상회담에서 그리스가 처한 경제 문제는 지난 정부의 부패에 원인이 있었다고 충격적인 주장을 해 다른 정상들을 당혹스럽게 한 바 있다.

파파콘스탄티누 재무장관은 EU 집행이사회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전임자가 미루었던 구조 개혁을 단행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개혁의 일환으로 여성의 퇴직 연령을 65세로 높였다. 유럽중앙은행 트리제 총재는 아테네를 방문해 그리스 정부가 용기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파판드레우 총리는 12월14일 월 수입 2천 유로가 넘는 공무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보조금도 10% 삭감한다는 조치를 발표했다.

스페인과 그리스 같은 지중해 연안 남유럽 회원국들은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에 비해서 재정 적자의 폭이 크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물론 제조업이 강한 북유럽이지만, 정치·문화적인 요소 또한 작용한다. 북유럽 사람들은 ‘정당한 나눔(fair sharing)’에 근거해 미리 계획하는 것에 능숙한 사회민주주의적 전통을 지닌 반면, 지중해권 사람들은 사회 제도보다는 가족에 더 의존적인 전통을 갖고 있다. 따라서 탈세나 부정이 남유럽에 더 만연한다.

2010년 상반기에 스페인이 EU 의장국을 맡게 됨에 따라 로드리게스 자파테로 총리가 EU의 외교 정책을 제외한 모든 회의를 주재하게 된다. 자국의 경제가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스페인이 의장국 지위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용할지가 주목된다. EU가 확장되면서 크로아티아가 2010년 말에 28번째 회원국이 될 가능성이 있고, 아이슬랜드가 2010년 초반에 가입 협상을 시작한다. 신규 회원국이 늘어나는 것이 EU 전체 경제와 유로화의 안정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는 유럽연합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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