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띠 수난 시대’버림받은 청춘들
  • 김재태 편집부국장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09.02.1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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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는 인간이 태어나 가장 먼저 부여받는 상징 이미지이다. 그것은 운세 풀이의 주요 기준이 되기도 하는데, 열두 단위로 나뉘는 많은 연령과 동물의 조합 가운데서도 유난히 유명세를 치르는 띠가 있다. 바로 ‘58년 개띠’이다. 심지어 어디 가서 띠를 소개할 때 ‘58년 개띠’라고 하면 반갑다는 반응까지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만큼 귀에 설지 않다는 애기이다. 노골적으로 <58년 개띠>라는 제목을 내건 시집도 나와 있다. 이 ‘58년 개띠’라는 집단 표시어가 어디서 유래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지만 확실하게 공인된 것은 없다. 여러 설 가운데 그나마 공감을 얻는 것이 있다면 아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과 관련한 분석일 것이다. 우연의 일치이든 아니든 간에 박 전 대통령의 아들과 또래인 이 연령층이 진학할 때마다 입시 제도가 바뀌었다는 점이 그 분석의 주요 근거로 통한다.

이 58년 개띠와 유사하게 입시 때문에 수난을 겪은 세대가 또 있다. 이른바 ‘이해찬 세대’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이해찬 교육부장관이 새로운 입시 제도를 내놓을 당시 고1이었던 1982년생 또는 1983년생을 일컫는 말인데, 1982년생이면 그들 또한 개띠이다. 이들은 입시 제도가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식으로 느닷없이 바뀌고 공교육이 느슨해지면서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쓴 채 대학 입시에서도 큰 낭패를 보았다.

그 이해찬 세대가 다시 고난의 대열에 들어섰다. 이번에는 취업 전쟁이다. 금융 위기로 기업들이 채용 인원을 동결하거나 줄이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가까운 친척 중에 1982년생이 있는데, 군대를 다녀와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는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예 원서를 쓸 곳조차 없다며 푸념이다. 이들이 처한 현실은 각종 지표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20~30대 취업자 수가 18년 만에 처음으로 1천만명 미만으로 추락해 외환위기 때보다도 심각한 상황을 보이고 있다. 이번 호 <시사저널> 커버스토리에 담은 미로 속 청년들의 모습도 그런 현실을 비춰주는 사실 묘사에 다름 아니다.

상황은 이처럼 심각한데 현실은 답답하다. 우선 비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지만 손에 잡히는 정책은 희미하다. 정부가 고용 창출을 위해 추진한다는 국책 사업의 일자리 수도 일부 부풀려져 있고,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녹색 뉴딜 사업은 당장 하루가 급한 그들에게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말로는 경제를 살리며 일자리도 늘리겠다고 연신 큰소리치면서 정부·여당이 보여주는 행동은 여전히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경제에만 매달리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마당에 쟁점 법안 밀어붙이기 같은 소모전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 국민의 눈에 곱게 비칠 리 없다. 선후가 바뀌어도 크게 바뀌었다. 도대체 사이버모욕죄나 미디어 개혁 같은 문제가 경제 살리기·일자리 창출과 얼마나 깊은 연관성이 있는지 속 시원히 밝혀주는 해명도 없다. 그런 와중에 금융연구원장이 부정적인 경제 전망을 내놓고 정부와 갈등을 빚다 자진 사퇴한 사례는 정부가 ‘경제 포퓰리즘’에 빠져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한다.

민심은 뭐니뭐니 해도 밥그릇에서 나온다.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의 미래는 곧 대한민국의 미래이다. 정부는 한눈팔지 말고 그들에게 믿을 만한 희망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이대로 굶길 수는 없다. 아까운 청춘들의 무한 방전을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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