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사전에 ‘불황’은 없다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8.12.30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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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성공한 사람들과 매출 신장시킨 창업주의 공통점은 ‘변화와 도전’

▲ 왼쪽부터 SC제일은행 사원 전재현·9급 공무원 최은화·로슈진단 사원 김영규 씨.

‘준비한 자에게 기회는 온다.’ 누구나 아는 말이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누구나 믿고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취업 대란 속에 당당히 입사에 성공하고 불황 속에서 오히려 매출을 늘린 창업주는 이 평범한 진리를 실천한 사람들이다.

최근 SC제일은행에 입사한 전재현씨(전북대 무역학과 01학번)는 치밀한 준비 끝에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에 성공한 주인공이다. 학교를 다닐 때 다양한 봉사 경험과 경력을 쌓았고 졸업 후에는 하반기 공채가 진행되던 3개월 동안 1백20여 개의 기업에 원서를 넣으며 준비를 해나갔다. 전씨는 “기업에 원서를 많이 넣을수록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면접을 많이 보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준비 과정을 거쳐야 내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회사의 면접에서 100%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다”라고 합격의 비결을 전했다.

지방대 출신이고 토익도 7백90점으로 다소 낮았지만 전씨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대학교 다닐 때 도립 대학생 봉사단을 비롯해 지역 음악축제 봉사, 해외 인턴, 캐나다 어학 연수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이 자신감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자 심리적으로 점점 위축되어갔다. 전씨는 “계속 시험에 떨어지기에 중소기업으로 눈을 낮추었는데도 안 되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내 자신의 한계가 정해져버린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면접 스터디를 통해 나의 부족한 점들을 하나씩 보완해가면서 ‘한 군데는 붙겠지’라는 생각으로 계속 원서를 넣었다”라며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전씨는 SC제일은행 서류 전형에서 통과하자마자 면접 준비에 ‘올인’했다. 하루 10시간씩 면접 스터디를 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철저히 준비한 덕에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최은화씨(경상대 사회학과 00학번)도 4년간의 지리한 도전 끝에 지난 10월, 지방직 9급 공무원이 되었다.

2005년 2월 졸업할 당시만 해도 공무원 시험 공부가 이렇게 길어지리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빨리 공부를 끝내자는 생각에 학원 수업 내용을 녹음해 와서 2~3번 듣는 것은 물론,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 김밥으로 끼니를 대충 해결하고 하루 종일 도서관에 쳐 박혀 책만 들여다보았다.

그해 10월, 최씨는 2점 차로 떨어졌다. 너무나 아쉬웠지만 ‘내년에는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2006년에도 1점 차로 떨어졌다. 최씨는 그래도 조금씩 향상되고 있다는 생각에 한 해 더 준비하기로 다짐하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조차 아까웠던 최씨는 고향인 진주를 떠나 창원으로 독서실을 옮기기까지 했다.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해서일까. 2007년에는 필기 시험을 통과했다. 하지만 면접 시험이 발목을 잡았다. 최씨는 “눈앞이 깜깜했지만 미련이 남아 그만둘 수가 없었다. 필기 시험 합격으로 엄청난 성취감을 느껴봐서인지 최종 합격의 기쁨을 누려보자는 욕심이 생기더라. 힘들 때마다 공무원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며 힘든 시간들을 참고 견뎌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지 4년째가 되던 2008년, 최씨는 무려 3군데 필기 시험에 합격했다. 그 가운데 지방직 공무원 면접에 응시해 최종 합격했다. 최씨는 “준비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쏟아부었다. 스스로 준비하고 노력하는 만큼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결실을 맺지 않았느냐”라며 밝게 웃었다.

김영규씨(세종대 체육학과 00학번)는 불황으로 인해 겪지 않아도 될 마음고생을 6개월간 하다가 최근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지난해 졸업과 동시에 입사한 국내 제약회사를 1년4개월 만에 박차고 나왔더니 바로 경기 침체가 몰아닥쳤다. 취업의 어려움을 몰랐던 김씨는 ‘곧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두 달을 허비했다. 그러다 20군데에 넣은 원서가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김씨는 “순간 ‘내가 쓰레기 같은 놈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평생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몰려왔다. 자신감을 잃은 상태에서 두 번 면접을 봤더니 그대로 나타나더라. 이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4번 읽으며 마음을 추스려 나갔다. 1년4개월의 직장 생활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장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거울을 보며 억지로 웃는 연습도 했다. 김씨는 “최종 면접에서 압박 면접 때문에 당황했지만 평소 억지로라도 웃는 연습을 한 덕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면접관들의 표정이 썩 좋지도 않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성실하게 질문에 답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라며 긍정의 힘을 강조했다.


▲ 하루에 한 종류의 물건만 판매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성공한 온라인 쇼핑몰 원어데이의 이준희 대표(왼쪽 세 번째)와 직원들. ⓒ시사저널 임준선

온라인에선 ‘아이템’, 오프라인에선 ‘배려’

경기 불황은 취업 대란뿐만이 아니라 소비 위축도 불러왔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중산층이 무너졌지만 올해에는 중산층, 서민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생활고에 시달릴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하지만 이런 불경기 속에서도 고객들의 닫힌 지갑을 열어젖히게 만드는 힘을 가진 사장님들이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는 독특한 아이템으로 성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면 오프라인 점포에서는 세심한 배려로 손님 끌기에 성공했다는 특징이 엿보인다. 철저한 준비 기간을 거쳤다는 전제 조건이 충족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온라인 쇼핑몰 ‘원어데이’는 말 그대로 하루에 한 종류의 상품만 판매하는 사이트이다. 한 해에 4백개의 상품을 팔지만 동시에 4백개의 상품을 파는 오픈 마켓에 비해 유지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에는 2004년 ‘우트닷컴’으로 첫 선을 보인 아이템이지만 한국에는 생소했다. 원어데이 이준희 대표이사는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애프터서비스를 충실하게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지난해 4월, 사업을 시작하면서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처음에는 월매출이 2백만원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초라했지만 6개월 정도 지나자 매출이 급상승했고 지금은 월매출이 15억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라며 과정을 설명했다.

아이템이 독특하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원어데이처럼 하나의 상품만 파는 사이트는 20개에 달할 정도로 많다. 하지만 20개 사이트의 매출액을 다 더해도 원어데이 한 해 매출액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대표이사는 3년 동안 충분한 준비 기간을 거치면서 향후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다. 회사가 갑자기 성장할 것을 대비해 투자를 얼마만큼 늘려나갈 것인지, 인재를 언제 얼마나 충원시켜나갈지도 모두 계획해두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온라인 쇼핑몰의 생명이 고객과 신뢰도를 형성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고 판단하고 사소한 실수라도 회사가 잘못했다고 생각이 들면 획기적인 보상을 고객에게 제공했다. 예를 들어 판매한 네비게이션의 제조회사가 2일 전에 부도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자 즉시 판매를 중단시켰다. 이미 구매한 고객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다. 고객들에게 믿고 살 수 있다는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결과 2008년 한 해 매출이 1백10억원에 달할 정도로 늘어났다.

▲ ‘비타민학원’ 명희재 원장(왼쪽) 부부는 요리를 하면서 영어를 배우는 쿠킹 영어를 도입하는 등 가족적인 분위기로 학원을 변화시켜 수강생을 늘렸다. ⓒ시사저널 이종현

‘충성 고객’ 확보 위해 획기적인 보상도

신기한 점은 경기 불황이 본격화되던 2008년 9월부터 오히려 매출이 급상승했다는 것이다. 2008년 전반기 매출 상승 폭이 30% 정도였는데 하반기에는 70~80% 수준으로 대폭 올랐다. 이대표이사는 “불황일 때 필요한 제품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보온 도시락을 비롯해 숙면 도우미 베개, 숙취 해소제 등 저렴하면서도 꼭 필요한 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전략적인 사고 판단과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고객에게 제대로 된 상품을 제공하려는 정신이 온라인 쇼핑몰의 신화로 이어졌다.

이재영씨(25)는 부모님이 만든 건강 식품을 온라인 쇼핑몰 ‘일구야닷컴’을 통해 판매하면서 채팅 시스템을 도입하는 변화를 주었다. 아이디어는 단순한 곳에서 나왔다. 고객들의 질문에 바로바로 답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채팅으로 이어졌다. 또한, 결제에 어려움을 겪는 어른들에게 상세한 설명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고객 편의를 위주로 운영하다 보니 인터넷 쇼핑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등도 고객으로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이전과는 다른 온라인 쇼핑몰 운영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1천명에 불과하던 회원 수는 6개월 만에 5배로 불어났다. 한 달 매출은 2천만~3천만원 정도로 훌쩍 뛰었다. 이씨가 채팅으로만 인사를 나누는 고객은 하루에만 2천명에 달한다. 하루에 20시간 정도 컴퓨터 앞에 앉아 고객의 불편 사항을 접수하고 개선점을 듣는다. 이번에 대박 상품으로 히트를 친 팥차도 고객들이 한 번 팔아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서 판매했던 것이다.

물론 이씨도 실패의 쓴잔을 마셨다.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2007년 4월, 일구야닷컴 사이트를 열고 의욕적으로 광고를 해댔다. 식품위생법을 몰랐던 이씨는 ‘효능, 다이어트’라는 단어를 마구잡이로 사용했다가 과대 광고로 영업정지를 당했다. 한 달 간의 영업정지로 1억원의 손해를 보았다. 스물네 살의 이씨가 감당하기에는 큰 빚이었다. 이씨는 “4개월 정도 쇼핑몰을 닫고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불쑥 젊은 나이에 겪은 한 번의 실패는 오히려 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을 몰라서 망했다면 법을 알면 해결될 것이 아니냐고 단순하게 생각하자 복잡하던 머릿속이 깨끗해졌다”라고 말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이씨는 이때부터 철저하게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식품위생법에 대해 공부하고 변호사와 자주 만나서 상담을 했다. 같은 업종의 사장을 일일이 찾아가 견학도 하고 노하우도 배웠다. 마케팅 관련 책도 틈틈이 읽었고 온라인 쇼핑몰과 관련된 강의가 있으면 어디라도 달려가 들었다. 공부에 취미가 없어 온라인 쇼핑몰로 눈을 돌린 그였지만 그때만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며 배워나갔다고 한다.

이씨는 온라인 쇼핑몰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간절히 원하다 보니 꿈에서도 사이트가 보일 정도였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 정도로 매달려야 성공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오프라인에서 수익 창출의 기쁨을 맛보는 창업주들은 다들 작은 변화가 수익을 이끌어냈다고 입을 모았다. CF 광고 카피처럼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 셈이다.

분식점도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로 ‘바꿔!’

▲ 불황이 한창일 때 떡볶이집을 차린 박창규씨(왼쪽) 부부. ⓒ시사저널 임준선

2008년 10월 서울 강북구에 떡볶이집을 차린 박창규씨도 마찬가지이다. 널리고 널린 가게가 떡볶이집인데도 박씨의 가게가 유독 매출을 많이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깔끔함 때문이었다. 음식의 맛이 좋은 분식점은 많으나 맛과 청결함을 동시에 유지하는 곳이 많지 않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박씨는 “20~30대 여성들이 떡볶이를 좋아하는데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분식점을 꺼리더라. 분식점 음식도 레스토랑과 같은 분위기에서 먹을 수 있는 점포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인테리어에 신경을 썼다. 물론 가격은 분식점 수준 그대로 유지했다”라고 말했다.

박씨도 1년 간의 철저한 준비 기간을 거쳤다. 다니던 여행회사를 접고 맛있다는 음식점을 순례하기 시작했다. 종로의 한 분식점에서 4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예행 연습도 충분히 했다. 떡볶이집을 차려야겠다고 결심하고 가게 자리를 찾기 위해 시장 조사에 나섰다.

땡볕 아래에서도 하루 종일 서서 유동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연령대가 어떻게 되는지 일일이 기록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을 찾기 위해 동네 주민들에게 일일이 말을 걸어 물어보기를 3개월 동안 하다 가게 자리를 정했다. 박씨는 “프랜차이즈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본사가 정해주는 자리에 가게를 차린다. 하지만 이번 창업에 내 인생이 달렸다고 생각하니까 직접 발로 뛰어다니게 되더라. 아이들이 많은 지역이라 떡볶이를 조금 덜 맵게 하는 등 지역적인 특색을 고려해 변화를 주었다. 10월 한 달 매출이 3천7백만원 정도 나왔다. 불황이 점점 심해지지만 매출은 여전히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라며 비결을 전했다. 

15년째 학원을 운영해온 명희재씨(49)도 최근에서야 오히려 수익을 내고 있다. 불황으로 사교육 시장이 위축되어 가고 있지만 명씨는 예외이다. 작은 학원의 강점을 살려 가족적인 분위기를 부각시킨 결과이다. 요리를 하면서 영어를 배우는 ‘쿠킹 영어’를 시도한 것을 비롯해 권위적으로 보이던 양복도 벗어던졌다. 10년간의 교사 생활을 한 경력을 살려 인성 교육에도 신경을 써 부모들의 신뢰를 얻었다. 명씨는 “작은 변화였지만 2008년 9월부터 수강생이 50% 정도 늘어났다. 지금은 7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라며 해맑게 웃었다.

불황 속에서 웃는 그들은 한결같이 충분한 준비 과정이 자신감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했다. 불황이라는 이유로 움츠러들면 기회는 오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충분히 준비하면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다.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사고로 무장하면 아무리 험난한 불황이라도 얼마든지 뚫고 나갈 수 있음을 이들을 통해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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