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성 없지만 합병증이 무섭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8.12.30 02: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선, 피부 건조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 예방책…식습관 개선도 치료에 도움

▲ 환자에 따라 치료 효과가 천차만별이지만 건선은 약물과 자외선으로 완치할 수 있다. 사진은 건선 치료 전과 후의 모습들이다.

만성 피부질환인 건선(psoriasis) 환자는 서양에서는 그 나라 인구의 3%, 우리나라에서는 1% 정도로 추정된다. 유색 인종보다는 백인에게 많이 나타나며 건조한 지역에서 흔히 발병한다. 초기에는 피부에 좁쌀 같은 발진이 생기면서 하얀 비듬 같은 각질이 겹겹이 쌓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좁쌀 같은 발진은 주위의 발진과 서로 뭉쳐 커지면서 온몸으로 퍼진다.

전염성은 없으며 가려움증도 습진이나 다른 피부질환에 비해 심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치료가 쉽지 않아 길게는 수십년 동안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 건선은 합병증도 동반한다. 대표적인 합병증이 건선 관절염이다. 건선이 손가락이나 발가락 관절로 침범하면 관절 부위가 부어오르면서 뻣뻣해진다. 누르면 통증도 느껴진다. 건선이 눈으로 침범한 경우에는 주로 눈꺼풀과 결막에 증상이 나타난다. 드물게는 심혈관계, 소화기, 호흡기에 질환이 동반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피부 증세의 모양, 증상이 생긴 부위, 병의 경과와 병력 등을 바탕으로 임상적으로 건선을 진단한다. 확진을 위해 조직 검사를 하기도 한다. 국소 마취를 한 후 대개 병변의 3~6mm 정도를 떼어낸 건선 조직을 병리과로 보내 현미경으로 관찰해 판독한다. 조직 검사는 건선의 확진뿐만 아니라 병의 진행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건선은 흔히 마른버짐이라고도 불린다. 글자 그대로 건조한 피부가 건선의 특징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피부를 건조하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건선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지름길이다. 과거에는 건선 환자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햇볕과 바람에 피부를 노출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질환의 원인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피부 자극, 상처, 건조한 환경, 서구화된 식습관, 스트레스 등을 주원인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뾰족한 치료법도 없는 셈이다. 현재로서는 증세를 완화하고 조절하는 방법이 최선의 치료이다. 그렇지만 환자에 따라서는 몇 가지 치료법으로 상당한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다.

흡연이 건선 발생 위험성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현재의 치료법으로는 약을 바르는 국소 치료, 자외선을 쪼이는 광선 치료, 약을 먹는 전신 치료가 대표적이다. 이런 방법을 환자의 질환 상태에 따라 단독으로 또는 복합적으로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건선의 정도가 가벼운 경우라면 바르는 약으로 치료를 시작하지만 중등도 이상이라면 광선으로 치료하거나 먹는 약을 사용한다. 전문의는 건선의 심한 정도, 형태, 상태, 발생 부위, 환자의 나이와 정신적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다.

건선을 일반 피부질환으로 자가 진단하고 습진 치료제를 바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한다. 그러나 습진 치료제는 염증을 일으키는 등 건선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전문의와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에 개발된 신약으로는 엔브렐이라는 주사제가 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주사를 맞으면 지금까지 어떤 약물을 복용한 것보다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많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이 이 신약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어느 정도 사용해야 적절한지를 연구하고 있어 곧 정식 치료제로 쓰일 것으로 보인다. 사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치료제는 많은 양을 복용하거나 자주 발라야 해 불편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다. 

건선을 호전시키는 식이요법은 없다. 그러나 평소 고칼로리의 육류나 인스턴트 식품의 섭취를 즐겼던 사람이라면 식습관부터 바꾸는 것이 치료의 지름길이다.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 각종 인공감미료 등은 피부 세포를 활성화시켜 건선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혈액을 맑게 해주면서 피부 면역 기능을 증진시켜주는 항산화제가 풍부한 녹황색 채소나 과일은 적어도 1일 6백g 이상 섭취하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녹두와 팥 역시 해독작용이 탁월해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기나 편도선염 등의 감염성 질환은 건선을 발병시키거나 증세를 악화시키므로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또, 과도한 피로나 스트레스를 피하고 충분한 수면과 긍정적인 사고로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건선은 저절로 악화와 호전을 반복한다. 특히 햇볕과 바람을 쐬면 호전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자주 피부를 드러내라고 전문의들은 권하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흡연이 건선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 의과대학의 최현 박사는 7만9천여 명의 간호사를 대상으로 14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피우지 않는 사람에 비해 건선이 나타날 위험성이 평균 78%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대로라면 건선 예방에 금연은 필수인 셈이다. 


▲ 건선은 확연하게 눈에 띄는 피부질환이어서 환자들의 고통이 크다. ⓒ시사저널 이종현
직장인 이명욱씨(37ㆍ가명)는 15년 전 입대한 후 건선에 걸려 군 생활 1년 만에 의가사 제대를 했다. 입대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무릎과 허벅지에 작고 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점차 온몸으로 번지기 시작할 무렵 대대 군의관을 찾았지만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이씨는 “보통 쓰는 피부병 연고를 발랐지만 차도가 없었다. 증세가 더욱 악화되자 큰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결국, 의가사 제대까지 하게 되었다”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예전의 피부를 되찾기 위한 이씨의 처절한 투병은 끝없이 이어졌다.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했고 건선에 좋다는 민간요법은 써보지 않은 것이 없다.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오히려 부작용이 겹치면서 머리와 손톱을 비롯한 신체 3분의 1이 건선으로 뒤덮였다.

일상생활은 날로 어려워졌다. 확연하게 눈에 띄는 피부질환이어서 사람들이 그의 곁에 오지 않으려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대중목욕탕은 아예 갈 수 없었고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반소매 셔츠를 입지 못했다. 이씨 자신은 점점 소극적인 생활을 하면서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려워졌다.

그는 “회사에서 연수라도 가면 여름에도 긴 옷에 양말까지 신고 잤다. 점차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워져서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라고 암울했던 시절을 털어놓았다. 치과기공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그나마 사람을 직접 만나는 직업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이씨는 “직장 동료가 이 병을 이해해줘서 직장 생활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건선 환자는 대부분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건선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만나온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고통도 겪어야 했다. 베트남까지 가서야 겨우 신붓감을 구할 수 있었다. 이씨는 “증세가 심해지니까 여자친구와 결혼하는 것이 겁이 났다. 결국 헤어지고 베트남 여성과 결혼했다. 이마저도 쉽지 않아서 수십 명의 여성을 만난 후에야 결혼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씨 부부에게는 딸 한 명이 있다. 그는 혹시 딸에게도 유전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이씨는 “스트레스가 건선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 같다. 되도록 스트레스를 피해 살아야 한다. 일부 환자는 스테로이드제를 바르는데, 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사와 상담해서 적절한 치료법을 찾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조언했다. 이씨는 최근 서울대병원의 임상 실험 대상자로 선정되어 미국에서 개발된 신약을 사용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신약이 건선을 치료하는 데에 특효는 없더라도 증세를 지금보다 호전시켜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