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줄 타다 평행봉을 놓쳤나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11.18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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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성 전 국세청장, 검찰 세 번째 칼날은 못 피해…단골 룸살롱 여주인이 차명 통장 관리

▲ 이주성 전 국세청장이 알선 수재 등 특가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개인적인 건강 문제도 있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공직을 마무리하겠다는 평소 소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킨 것으로 이해해달라.” 2006년 6월29일 당시 이주성 국세청장은 퇴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청장이 퇴임사를 하는 동안 연단에 앉아 있던 전군표 차장은 눈물을 쏟았다.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노래 <만남>이 흐르는 가운데 이청장은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의연하게 퇴임하는 청장과 눈물을 쏟은 차장의 모습은 묘한 대비를 이루며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풍경은 달랐지만 이날의 주인공 두 사람은 1년 차이를 두고 감옥으로 갔다. 이번에는 순서를 바꿨다. 이청장의 뒤를 이어 국세청장에 오른 전군표 청장이 먼저 지난해 11월 부하 직원으로부터 8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1년 뒤인 지난 12일에는 선배인 이청장이 전철을 밟았다. 특가법상의 알선 수재 및 뇌물수수 혐의였다. 역대 청장 두 명이 1년의 시차를 두고 나란히 구속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국세청 직원들의 사기는 땅으로 떨어졌다. 국세청 내에서는 ‘잔인한 11월’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역대 청장 2명이 1년 사이 잇따라 구속되는 진기록 세워

두 사람이 감옥으로 간 것은 같았지만 내용은 달랐다. 전군표 전 청장은 인사 청탁과 관련해 뇌물을 주고받는 국세청 내부의 일부 잘못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일종의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반면 이 전 청장은 국세청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외부 기업의 편의를 봐주는 뇌물 청탁 비리였다. 특히 ‘이주성 사건’이 충격적인 것은 당시 현직 국세청장이 건설업자로부터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아파트를 뇌물로 받아 차명으로 관리했다는 것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청장은 프라임그룹 백종헌 회장으로부터 “대우건설을 인수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라는 청탁과 함께 19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받아 한 지인의 이름을 빌어 관리했다.

국세청 주변에서는 이 전 청장이 결국 구속되면서 2006년 6월 그의 느닷없는 퇴임 배경과 관련해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당시 퇴임을 전후해 “이 전 청장의 비위와 관련한 구체적인 제보가 청와대에 접수되었다”라는 등 온갖 소문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된 적은 없으나 당시부터 사정 기관들이 이 전 청장을 눈여겨보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자는 이 전 청장이 사퇴하기 3주 전인 2006년 6월 초 한 지인의 친구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서울 강남의 룸살롱 사정에 정통한 그는 “현직 국세청장이 1주일에 2~3차례씩 룸살롱을 드나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 전 청장의 사진을 들고 가 보여주었다. 그는 “맞다”라고 확인했다. “국세청장이 되기 전부터 그가 기업체 관계자들로부터 수시로 온갖 종류의 접대를 받았다”라는 것이었다.

세 차례 그와 만나 이 전 청장이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 술자리에서 어떤 행태를 보이는지 등등을 취재한 기자는 1주일 동안 룸살롱 주변에 잠복해 그를 좇았으나 현장을 목격하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이 전 청장이 갑자기 물러났다.

취재는 그 시점에서 멈추었다. 당시 기자는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지만 강남 유흥가 속성상 사정 기관들도 이 전 청장의 행태를 눈치 챘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룸살롱은 결국 올해 진행된 검찰 수사에서 수사선상에 올랐다. 룸살롱 여주인이 자신의 명의로 수십억 원이 들어 있는 이 전 청장의 차명 통장 100여 개를 관리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동안 이 전 청장은 검찰의 수사망을 두 차례나 아슬아슬하게 벗어났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8월 신성해운에 대한 세무조사를 봐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검찰은 이 전 청장이 강남 룸살롱 세 곳과 관련 있는 인사들 명의로 만든 차명계좌에 수십억 원의 뭉칫돈이 들락거린 사실을 확인했지만 최종적으로 혐의를 밝혀내는 데 실패했다. 이에 앞서 이 전 청장은 지난해 1월 이른바 ‘김흥주 로비 의혹’과 관련해서도 검찰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검찰은 이 전 청장이 국세청 조사국장으로 있던 시절 강남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다 국무총리실 암행감찰반에게 적발되었던 일을 바탕으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조사를 벌였으나 그를 구속하는 데 실패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신성해운 사건 당시 검찰은 이 전 청장의 모든 계좌를 철저히 추적했으나 그를 잡아넣지 못했다. 이번에 서부지검에서 그를 구속하면서 신성해운 수사를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곤혹스런 입장에 처했다”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두 번이나 검찰의 칼날을 피했던 이 전 청장이 세 번째는 피하지 못한 셈이다.

“청탁 대가로 아파트 받은 적 없다” 부인

이 전 청장은 구속되는 순간까지 “청탁의 대가로 아파트 등을 받은 적이 없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구속영장에 관련 내용을 상세히 적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피의자(이주성)는 2005년 11월께부터 2006년 1월께 사이에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음식점 ‘○○○’에서 기 아무개씨를 통해 알게 된 프라임그룹 백종헌 회장으로부터 ‘대우건설 매각 권한을 가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를 통해 위 위원들에게 청탁하여 프라임개발이 주도하는 프라임건소시엄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받았다.’ ‘기 아무개씨가 운영하는 건설회사들이 관련된 세무조사 현안이 발생하게 되면 잘 처리해주겠다는 취지 하에 기 아무개씨에게 ‘내가 이사할 집에 비치할 음향가구와 가구 등을 주문했는데 그 대금을 대신 지급해달라’라고 요구하여 구입 대금 5천8백여 만원을 대납받았다.’ ‘국세청 차장실에서 기 아무개씨에게 지인들 주소지로 굴비 등 명절 선물을 배송해줄 것을 요구해 1천5백만원 상당의 명절 선물을 배송하게 했다.’ 이 전 청장이 부인하고 있지만 다른 관련자들의 진술이 일치하고 있어 그가 혐의를 벗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검찰은 이 전 청장이 과연 프라임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수 있도록 로비를 했는지 추가 조사를 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수사 성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칫하면 불똥이 참여정부 당시 고위층으로 더 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검찰은 “현 국세청 고위직에 대한 수사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라며 현재의 국세청과 이 전 청장의 혐의를 구분했다.

역대 국세청장들은 현재 민주당 의원인 이용섭 청장을 제외하면 모두 검찰 문턱을 넘었다. 대부분은 정치권과 관련되어 대선 등 민감한 시기에 정치자금을 걷는 첨병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이번 이 전 청장 사건은 직위를 이용해 개인적인 이권을 챙긴 사건이라는 점에서 더 질타받아 마땅하다. 세무 행정에 대한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국세청은 간부들부터 더욱 강도 높게 자정 작업을 하는 후속 조치를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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