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땅에 ‘사람’을 심으니 나무가 쑥쑥 크네
  • 오기출 (사단법인 시민정보미디어센터 사무총장) ()
  • 승인 2008.06.1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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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사막화 막기 10년 땀의 기록/황사 방지 ‘성공 모델 만들기’ 주력…주민 참여 이끌어 ‘결실’

▲ 지난 4월 우리나라 대학생, 고등학생 20명이 비양노르군 조림지에서 나무를 심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몽골의 남부 고비(고비는 몽골어로 식물이 거의 없는 황무지를 뜻함) 지역에서 나무를 심고 있을 때였다. 황사 발원지를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서 온 한 방송국 기자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사무총장님, 뭐 이런 일을 하십니까? 이렇게 황량하고 춥고 건조하고 모래먼지만 날리는데 힘들지 않습니까?”

“저 광대한 사막에 나무를 심는다고요? 어느 세월에?”
“사막에다가 나무나 풀을 심으면 자랍니까? 제가 보기에는 답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기자는 며칠간 편히 잘 곳도,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제대로 없는 몽골 사막에서 강행군에 지쳤는지 굳이 답변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이런 푸념에 가까운 질문을 10년 동안 들어왔다. 그렇지만 대답으로 미소 이외에는 줄 것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10년간 유사한 질문을 받고 많은 말과 글로 내 생각을 전달해보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기후 변화와 사막화의 심각한 상황을 절절하게 목도하다 보니 말 한마디로 때운다는 게 그리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사는 동북아시아에서도 기후 변화와 사막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그 영향이 강력한 황사로 나타나서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정도지만, 황사 발원 지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기후 변화와 사막화로 인해 농토와 초원이 줄어들고, 강과 호수가 사라지며, 가축들이 굶어 죽고 있다. 사람들은 사막 난민이 되어 뿔뿔이 흩어지고, 거센 모래먼지 폭풍이 연중 불어온다.

기후 변화와 사막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황사 발원지의 생태를 복원하는 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의외로 받아들이겠지만 지난 10년 동안 우리 단체의 실무자들과 회원들, 기금을 마련해준 후원자들과 시민들이 열심히 추진해온 목표는 대규모 조림 사업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사막화와 황사 방지를 위한 성공 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뀌는 세월인데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

▲ 지난 5월 몽골 남부 사막 지역의 황사 발원 현장(왼쪽).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1백30km 떨어진 바가노르 군 조림장(오른쪽).

황사ᆞ사막화 방지, 3년간의 시행착오

“황사 발원지에 사는 유목민들은 하나의 나무라도 뽑아 생계 수단으로 삼으려 합니다. 아니면, 나무를 가축의 먹이로 보고 있지요. 이들의 눈에는 뽑아야 할 나무를 심고 있는 우리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겠습니까? 나무만 심는 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사막화 방지와 유목민들의 생존 문제를 결합시킨 새로운 차원의 운동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조림 사업을 하면서도 현지 유목민들의 생활 기반을 어떻게 확보해주어야 할지 수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처음 3년 동안 조림 사업은 처절하게 실패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시와 바가노르 구(작은 호수라는 뜻을 지닌, 울란바타르 시 동쪽 1백30㎞에 위치) 등 여섯 개 지역에 심은 나무들의 생존율은 솔직히 말해 0%였다. 모두 죽거나 사라졌다.

▲ 시민정보미디어센터 오기출 사무총장.
사막화 방지 조림의 경우, 대개 3~5년간 생태가 일부나마 복원될 때까지 가축들로부터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방책을 설치한다. 한 번은 바가노르 구 조림지에 가서 그 마을에 사는 아주머니가 양과 염소를 한 마리씩 들어올려 방책 안으로 풀어놓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그 양과 염소들이 갓 피어난 어린 나뭇잎들을 다 뜯어 먹을 때까지 멍청하게 보고만 있었다. 우리는 사막화 방지 사업을 한 것이 아니라 결국 유목민들이 기르는 가축의 먹이를 심고 키웠던 것이다.

2001년에는 울란바타르 시의 한 초등학교에 학생들과 함께 나무를 심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생활 속에서 환경 문제를 생각할 수 있도록 ‘나무가 우거진 우리 동네’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학생 자신들이 그린 그림대로 마을에 나무를 심게 해 푸른 마을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 다시 그 학교를 방문해 확인해보니 학생들은 그림도 그리지 않고 나무도 심지 않았다. 또다시 실패한 것이다.

당시 우리 단체보다 1년 앞서(1999년) 유엔이 몽골과 중국의 국경 도시인 자민우드에 내건성이 강한 삭사울이라는 나무를 심었지만 물 부족과 전문성 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열악한 상황이었기에 우리도 처음에는 몽골에서 철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막화 방지 혹은 기후 변화에 대해 아무런 경험도 준비도 없이 뛰어든 대가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교훈만은 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실패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실패한 3년 동안의 진행 경과를 복기하기 시작했다.

사막화 방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한국, 일본, 몽골 NGO(비정부기구)와 전문가로 구성된 다국적팀이 몽골로 들어간 시기는 2000년 8월이었다. 한국은 동아시아에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대안을 모색해온 ‘시민정보미디어센터’, 일본은 ‘요코하마 정책 NGO’, 몽골은 몽골 청년 단체인 ‘TNT’가 주관을 했고 산림 전문가, 기후학자등이 참여했다. 이 다국적팀은 1998년 구성되어 2년 동안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지는 기후 변화와 사막화의 위기에 대해 공동 연구를 해왔기에 웬만큼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 자신감이 이론적인 영역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이후 3년 동안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현장을 몰랐던 것이다.

▲ 지난 2004년 바가노르 구 조림현장을 찾은 시민정보미디어센터 일행(왼쪽). 바가노르 구 조림 사업의 성공에는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큰 몫을 했다(오른쪽).

자나깨나 ‘현지화’…‘생존율 95%’의 신화를 쓰다

2007년 6월에는 한국, 중국, 일본, 몽골의 정부 관계자들이 참가하는 동북아 황사·사막화 방지 네트워크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여기서 몽골 대표로 참석한 몽골자연환경부 국제협력국의 가와 엥케국장이 4개국 관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 바가노르 구 단체 조림지의 연도별 모습.
“몽골에는 현재 세계적인 사막화 방지 성공 모델이 있습니다. 생존율 90%의 성공 모델(몽골의 평균 묘목 생존률은 40%)은 바로 한국의 NGO인 시민정보미디어센터가 만들었습니다. 이제 사막화 방지를 위해 이 성공 모델을 국제적 협력을 통해 확산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업 초기 3년 동안 0%의 생존율에서 2004년 이후 3년간의 생존율이 90%로 바뀐 것이다. 물론 앞으로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사막화로 황폐화된 지역의 생태가 복원되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작은 성공이지만 지지부진했던 그동안의 사막화 방지 활동에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을 만한 사건으로 받아들일 만했다.

일단 사막화 방지를 위한 성공 유전자가 만들어졌다. 몽골 정부와 현지 전문가들은 이 유전자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조건이 유사한 지역에 적용할 수 있는 요소들을 담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유전자가 만들어진 것일까? 성공 모델의 핵심은 현지 주민들의 참여다. 특히 사막화 방지 조림 사업과 현지 주민들의 생존(생계와 환경위기를 포함) 문제를 연결시킨 것이 관건이었다. 아울러 사막화 방지 사업 지역의 구청장과 공무원들의 관심이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고리가 되기도 했다.

2003년 우리는 바가노르 구로 다시 들어갔다. 바가노르 구는 사막화와 함께 대규모 석탄 광산 개발로 인해 황사와 탄가루가 깔려 있는 인구 2만명의 지자체다.

바가노르 구청장과 공무원들을 만나고, 학교장과 주민들도 만나보았다. 그들은 우리가 실망해서 다시는 바가노르 구를 찾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심은 나무들을 뽑거나 가축의 사료 정도로 간주했던 그 사람들의 태도는 2003년부터 조금씩 바뀌어갔다.

우리가 사막화 방지 사업을 철저히 현지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조림지 자체를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로 제공하고 환경 교육장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당시 주민의 40%가 실업자였는데 이들 중 100여 명이 매주 두 번 나무에 물을 주는 데 참여했다.

바가노르 구청은 우리의 사업 방향이 바뀐 것을 확인하고 역으로 제안을 해왔다. 구청도 주민들에게 지불할 인건비를 일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매년 그 규모를 늘려나가겠다면서 우리 단체가 지속적으로 조림 사업을 해줄 것도 주문했다. 재정 상황이 매우 열악한 몽골의 지방정부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들은 약속을 지켰고 우리도 지켰다.

바가노르 구의 학교 교사 중에 환경교사가 있었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 우리는 환경교사에게 우리 조림 사업지를 학생들의 환경 교육장으로 적극 활용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3~4년의 시간이 지난 결과, 사막화 방지 사업의 성공 모델이 하나 만들어졌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90%의 생존율을 확보한 조림지에 관정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물도 없이 90%의 묘목을 살렸다는 것은 오로지 주민들의 참여가 이루어낸 성과다.
자립형 모델의 시작…“이젠 나무 키워 먹고 삽니다”

조림지에서 일을 하는 주민들은 최근 이런 말을 한다. “전에는 가축을 키워서 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나무를 키워 먹고 삽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된 조림지를 지켜내고 있고, 3년 전부터 매년 1년에 하루 나무 심는 날을 정해서 실천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결혼기념일이나 아기가 탄생한 날을 기념해서 세 그루의 나무를 스스로 심고 있다. 사막화 방지를 위해서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지만 사막화 방지는 이제 주민들의 손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사막화 방지를 위해 나무를 심을 것인가, 풀을 심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막화 지역에서는 나무를 심어도 죽고, 풀을 심어도 죽는다. 현지의 주민 공동체가 참여하고, 이들의 생존과 사막화 방지를 연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주민들이 농사를 지었거나, 과일나무를 재배했거나, 초지를 조성해본 과거의 경험을 조사하고, 이런 경험에 기초해서 자연적인 생태 복원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는 지난해부터 새로운 모델을 도입하고 있다. 그것은 주민 스스로 사막화 방지 사업을 하면서 자립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 바가노르구 주민과 우리나라 NGO 관계자들의 합동 조림 현장(왼쪽). 바양노르 군 조림장에 조성된 양묘장에서 자라고 있는 비타민 나무 묘목과 느릅나무 묘목.

시민정보미디어센터는 2007년부터 몽골 중부의 사막화 지역인 볼간도 바양노르 군(물이 많은 동네라는 뜻)에서 사막화 방지 사업을 진행 중이며, 올 5월 3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우리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몽골의 사막화는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참고로 한반도의 7.5배 넓이인 몽골의 사막화 면적은 2007년 현재 국토의 90.1%이며, 이는 1998년에 비해 14%가 증가한 것이다.

우리는 이 지역에 사는 60가구의 주민들을 협동조합으로 구성해 매년 1가구당 묘목 5백 그루와 비타민 나무 100그루를 나누어주려고 한다. 이를 위해 올 4월부터 연간 20만 그루의 묘목을 생산하는 양묘장을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조성하고 있다.

앞으로 협동조합의 구성원들에게 3년 동안 1가구당 바람막이와 물 저장고의 역할을 할 5백 그루의 나무를 80% 이상 살리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한 가구는 100그루의 비타민 나무를 갖게 된다. 3년이 지나면 방풍림도 뿌리를 완전히 내릴 것이고, 비타민 나무는 열매를 맺기 시작할 테니 사업에 참가한 주민들은 생태 복원과 더불어 소득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된다.

우리 단체는 이를 위해 지난 3월 한국의 전문가를 현지 상근자로 장기 파견했다. 그는 나무 전문가가 아니라 주민 조직과 협동조합의 전문가다. 사막화와 황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나무가 아니라 주민 참여가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1년 전, 한국의 기자가 던진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사막화 지역에 나무와 풀을 심으면 사막화를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다. 다만, 황사 발원지의 생태 복원을 위한 사업은 주민들의 생존 문제와 결합해내는 것이 관건이다. 이제부터 이 성공 모델을 확산시키면 된다. 우리는 우아한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황사 발원지 주민들과 함께 치열한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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