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예술 함께 품은 조각 같은 벽돌집
  • 이재언 (미술평론가) ()
  • 승인 2008.06.1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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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뒤셀도르프 근교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숲과 늪이 잘 보존된 자연 속에서 세계적 전시장 명성 얻어

▲ 안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자연-건축-조각-그림이 조화를 이루도록 천장 역시 자연 채광이 되게 했다. ⓒ선 갤러리 제공

독일 뒤셀도르프 근교(노이어 홀츠하임)에 있는 ‘인젤 홈브로이히’(Insel Hombroich) 미술관에 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습관처럼 몸에 밴 예술적 편견이 치유되는 변화에 놀라게 된다. 그것은 화려한 과거의 영광을 자랑하는 왕궁이 아니며, 대자본의 위용과 초현대적 미감을 뽐내면서 도심 속에 우뚝 서 있는 랜드마크 건물도 아니다. 혹은 전리품이나 다름없는 방대한 컬렉션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미술관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버려진 늪지에 조그만 벽돌집들을 드문드문 지어서 전시장으로 쓰고 있는 소박한 전원형 미술관일 뿐인데 세계적 명성을 지닌 미술관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대다수 유명한 거대 미술관을 한 바퀴 돌고나면 많은 것들에 감탄하면서도, 행복감보다는 고행 후 오는 피로감으로 감상의 기억은 감퇴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미술관은 30만㎡가 조금 넘는 제법 넓은 공간이지만 심신이 편안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행복감을 준다. 많은 애호가뿐만 아니라 보통의 시민들이 미술에 대해 갖는 기대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봄이면 사방에서 꽃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낙엽이 쌓여 정취를 더할 자연을 상상해보라. 여름이면 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취해 벤치에서 낮잠을 한숨 잔다 한들 시비 걸 사람도 없는 편안한 곳이다. 그것으로도 더할 나위 없을 터인데 예술 작품까지 부담 없이 편하게 즐기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사람과 환경, 작품이 삼위일체 되는 경험

인젤 홈브로이히는 우리가 경험해온 미술관들과는 전혀 다른 예술 공간이다. 그냥 숲과 늪이 잘 보존된 자연과 작품을 함께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자연과 건축, 건축과 조각, 건축과 그림 등이 우연인 것 같으면서도 세심하게 조화되어 있다.

자연 채광을 위한 천장 역시 첨단의 공법은 아니지만 흰벽과 어울려 하나의 훌륭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17개의 건물이 대부분 벽돌로 소박하게 지어졌는데, 그것 또한 현대 독일인들이 좋아하는 기하학적인 미니멀리즘 양식의 조각이라 할 만한 것이다.

그 안에서는 인공 조명도 없이 자연 채광으로만 작품을 관람한다.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조명과 액자는 기본이거늘 그런 배려(?)조차 없는 곳이다. 아무 설명도, 기본 정보조차 주지 않는 의도된 소홀함(?)이 예술을 자연이라는 맥락 속에서 보아야 한다고 훈계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 이름 맞히기 퀴즈에 긴장할 필요도 없다. 보는 내 자신이 익명이듯, 마주하고 있는 작품도 익명이다. 사람과 환경, 작품이 삼위일체를 하는 가운데 자유롭게 경험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그곳의 소장품들이 무명 작가의 것은 아닐 것이다. 거장 알렉산더 칼더나 이브 클라인 등의 것으로 보이는 작품들 몇 가지만으로도 손색이 없는 컬렉션이다.

▲ 안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17개의 벽돌 건물들을 전시장으로 쓰고 있다. ⓒ선 갤러리 제공

바로 그곳에서 관객들은 예술의 본질에 관해 되묻게 된다. 아울러 점차 관객들은 ‘누구의 것’인가, 혹은 얼마짜리인가 하는 투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드디어 예술작품을 향유하는 데 아무런 전제나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경험하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삶과 예술이 서로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듯 농토에서 직접 트랙터로 농사를 짓는 모습도 목격된다. 이렇게 무공해로 수확한 농산물로 간단한 점심을 제공하는 것 역시 예술과 끼니의 관계를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조건들을 입체적이고 유기적으로 조화시키려는 의도가 더러는 혼돈으로 비칠 수도 있다. 중국 고미술품뿐 아니라 현대미술 작품들까지 다소 체계 없이 진열된 것 같아 처음에는 조금 답답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기들의 설립 취지나 방침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그러한 유기적인 조합과 구성 안으로 혼융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미술관 경내 깊숙이 가면 반가운 이미지들을 본다.

2004 부산 비엔날레 조각 프로젝트 초대작가로 익히 알려진 아나톨 헤르츠펠트의 조각 작업장과 그의 작품들이다. 정말 그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조각 작품들이 녹슬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작업장 마당의 잡다한 오브제들과 공구들이 작가의 열정을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

생활ᆞ휴식 차원에서 즐기는 예술 지향

1980년대 초 부동산 사업자 칼 하인리히 뮐러의 기증으로 시작되어, 화가 고트하르트 그라우브너와 조각가 에르빈 헤리히의 기획 및 설계에 의해 착수된 이 미술관의 모토가 바로 탈 권위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미술관 건립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주변의 많은 작가들과 소장자들이 참여하고 기증해 지금의 모습을 이룰 수 있었다 한다.

처음 그들의 기획 의도가 순수하기는 하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회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인젤 홈브로이히는 입소문을 타고 전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해 성공적인 미술관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이 미술관을 가본 사람들은 만족도를 최고로 꼽고 있다(물론 이 미술관은 인근에 성격이 전혀 다른 랑겐 미술관이 있어 시너지를 얻고 있기도 하다. 일본이 배출한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으로 유명한 미술관이다).

생각해 보면 그들의 발상은 간단하다. 그들의 성공 비결은 보통의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 갖는 기대를 소박하고 솔직하게 충족시키려 한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미술을 멀리 혹은 높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고답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생활과 휴식의 차원에서 자유롭게 즐기는 예술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물과 숲, 그리고 햇살을 즐길 수 있는 가까운 한강 둔치는 대단히 매혹적인 공간이다. 바로 이곳에서 예술 작품까지 보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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