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카페들의 당당한 외출, “나가자, 오프라인으로”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8.06.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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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발’ 등, 성금 모아 특정 신문에 의견 광고 게재/사진 동호회 회원들은 ‘시민기자단’ 꾸려 집회 현장 추적

▲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돈을 모아 낸 신문 광고. ⓒ시사저널 황문성
네티즌들로 인해 정부가 진땀을 빼고 있다. 정부가 신문에 미국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광고하면 며칠 뒤 이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신문 광고가 실린다.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을 하는 현장에는 어김없이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강제 해산을 시키기 위해 물대포를 뿌려대면 어디에선가 수건과 우비, 천막이 공수된다. 거기에다 ‘우리가 여러분의 배후 세력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김밥이 시위 참가자는 물론 대치하고 있는 전경들에게도 전해진다.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의견을 모으고 돈을 모아 벌이는 일들이다.

서울대 여학생이 전경 군홧발에 머리를 밟힌 지난 5월31일 새벽 서울 종로구 삼청동 현장에 있던 기자의 손에 따뜻한 커피가 쥐어졌다. 온기가 식어갈 즈음 또다시 따뜻한 꿀물을 전해 받았다. 초코파이도 받았다. ‘이런 것이 정이구나’를 느끼게 한 주인공은 포털 사이트 다음의 비공개 카페인 ‘화장발’ 회원들이었다.

이들은 이날 1천7백인분의 김밥을 제공했다. 인터넷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의 음식 카테고리 안 ‘기타갤러리’에 닉네임 ‘독신녀’가 제안해서 모금한 3백만원으로 산 것이다. 글을 올리자마자 금방 돈이 모였다고 한다. 날이 밝자 ‘마이클럽’ 회원들이 장만해 보내온 1천만원으로 수건과 옷가지, 음식을 지원하는 천막이 차려졌다.

네티즌은 정부의 과잉 대응에 민첩하게 대처했다. 몇몇 네티즌들이 ‘도와주자’는 글을 올리자 새벽에도 순식간에 돈이 모였다. ‘마이클럽’과 ‘화장발’은 이미 언론사에 의견 광고를 내기 위해 돈을 모아본 경험이 있다. 학습 효과가 힘을 발휘한 것이다.


“올바른 언론 후원하자” 제안에 닷새간 1천7백만원 모여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한겨레나 경향신문에 처음 의견 광고를 실은 단체는 패션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 ‘소울드레서’다. 일곱 명의 블로거가 모여 한겨레에 ‘우뚝 서라 한겨레’라고 응원 광고를 내자 소울드레서의 한 회원이 ‘우리도 올바른 언론을 후원하자’고 제안했다. 순식간에 3백개의 찬성 댓글이 달렸다. 5월9일부터 닷새간 광고 모금운동을 벌인 결과 1천7백만원을 모아 5월17일자 한겨레와 5월19일자 경향신문 1면에 의견 광고를 실었다. 정부가 12억원을 들여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홍보한 것에 대항해 미국산 쇠고기의 유해성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금액은 많다고 할 수 없지만 반향은 대단했다. 다른 카페나 동호회 사이트에서도 ‘우리도 하자’는 의견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소울드레서를 보고 생활 정보 커뮤니티인 ‘마이클럽’이 광고 성금 모금을 시작하고, 이를 본 요리 정보 사이트 ‘82쿡-나라사랑 모임’이 모금 운동을 전개하는 식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결과 현재 신문에 의견 광고를 실은 단체만 10여 개가 넘는다. 지난 6월2일에는 다섯 개 단체가 모여 만든 광고가 다섯 개 신문에 일제히 실렸다. 연대 모임까지 생겨난 것이다.

연대 모임을 주선한 사진동호회 ‘SLR’ 회원인 박상수씨(37)는 “좀더 많은 사람에게 정부의 잘못을 알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연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2쿡-나라사랑 모임’을 비롯해 ‘뽐뿌게시판’ ‘마이클럽’ ‘DVD prime’이 함께해 5천만원을 모아서 광고를 냈다. 처음에는 한 번만 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회원들이 2차 광고를 원해 6월8일부터 2차 모금에 들어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성금 모금에 동참하는 네티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가진 기술을 동원해 시위를 돕는 네티즌도 있다. 사진동호회 ‘SLR’ 회원으로 구성된 ‘시민기자단’은 집회 현장에서 전경들의 움직임을 찍는다. 폭행 사진을 잘 찍어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다. 폭력 진압이 벌어지기 전에 플래시를 터뜨려 불상사를 막아보자는 것이다.

모임을 만든 허민우씨(28)는 “사무실이 종로에 있다 보니 전경이 폭력으로 진압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다. 시위대가 폭행당하는 장면을 찍는 사람은 있는데 기사화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 네티즌들이 모은 성금으로 지난 5월31일 음식ᆞ수건 등 물품을 지원한 데 이어 6월5일에도 많은 단체들이 음식 지원에 나섰다. ⓒ시사저널 박은숙

패션ᆞ화장ᆞ요리 등 실생활 관련 카페가 다수

활동 첫날인 5월31일에 1백20명이 참여해 5만장에 달하는 사진을 찍었다. 허씨는 “이날 시위대가 12군데로 분산 이동한 결과 언론이 미처 취재하지 못하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시민기자단은 12군데 모두 골고루 분산해 폭행이 이루어질 때마다 플래시를 터뜨렸다. 이날 보낸 메시지만 5천통에 달한다”라고 전했다.

6월1일에는 1백60명이 시민기자단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했을 정도로 점점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허씨는 “고객의 예약된 여행 일정을 맞추지 못해 계약이 파기될 정도로 생업에 지장을 받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정부의 폭력 진압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활동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네티즌들이 모이는 온라인 공간 가운데 정치색을 띤 곳은 별로 없다. 대부분 패션, 화장, 사진, 요리 등 실생활과 밀접한 정보를 주고받는 공간이었다. 평소 정치 이야기가 올라오면 시쳇말로 ‘다구리’를 당하기 십상일 정도로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한 이후 자연스럽게 쇠고기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네티즌들에게 쇠고기 수입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문제였던 것이다.

‘82쿡-나라사랑 모임’ 회원인 김수진씨(36)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와 GMO 옥수수 수입을 추진하는 정부를 보고 건강에 위협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평소 이야기를 나누던 온라인 공간에 걱정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 이야기만 하더라. 최근에 한 네티즌이 ‘명품 백 골라주세요’라고 글을 올렸다가 ‘이런 시국에 그따위 소리를 하느냐’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라며 달라진 카페 분위기를 전했다.

촛불 집회가 장기화하면서 네티즌 참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82쿡-나라사랑 모임’ 회원인 박문수씨(25)는 “정치에 무관심했던 네티즌들이 정치와 삶이 괴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로 똘똘 뭉치고 있다.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 있는 만큼 한국 국민이 똑똑해지고 있다.

정부도 이번 기회를 통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기 바란다. 정부가 이를 실천할 때까지 네티즌들은 행동에 나설 것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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