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수입 강행 안 된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 승인 2008.05.2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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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노회찬 상임대표 인터뷰 / “대안 내는 원외 정당 이루겠다”

ⓒ시사저널 임영무
진보신당 노회찬 상임대표를 만난 곳은 청와대 앞 분수대 근처였다. 지난 5월21일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 10여 명이 이곳에서 연좌 농성을 벌였다. 총선을 앞두고 결별했던 진보정당의 대표 정치인들이 이날 자리를 함께 한 이유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노회찬 대표는 “재협상은 불가피하며 그에 따른 부담은 정부가 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촛불 시위와 관련해서는 “불 꺼진 집안에 촛불이 켜지듯 지금 대한민국의 불이 꺼졌기 때문에 촛불을 들고 나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대표는 또 “고등학생이 길거리에 나오면 정권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징표라는 것은 한국 정치의 오래된 역사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미국의 일방적 요구를 과도하게 들어준 잘못된 협상이라는 것은 이미 확인이 되었다.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관련된 문제다. 반미 국민이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런 점에서 정부가 사건의 핵심과 실체를 분명히 보아야 한다. 재협상은 불가피하며 재협상에 따른 부담은 정부가 져야 한다. 만일 정부가 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쇠고기 수입을 강행한다면 훨씬 더 큰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촛불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을까. 집에 전깃불이 꺼지면 촛불을 켜지 않나. 마찬가지로 국가의 전깃불이 꺼졌기 때문에 촛불을 들고 나온 것이다. 정부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정치권도 이를 바로잡지 못하니까 국민이 직접 나선 것이다.


정부의 대처는 강경하다.

수업 중인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데리고 가서 조사하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찰이 현 정부 들어서 공안 정국을 조성해서라도 충성하려는 듯이 보인다. 학생들까지 길거리에 나왔으면 정책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정부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판단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것으로 오도해서는 안 된다. 유관순 열사가 열여섯 살 때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등학생이 길거리에 나오면 정권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징표라는 것은 한국 정치의 오래된 역사다.


총선에서 진보 정당이 국민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선거 운동을 잘못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누적된 문제가 총선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2005년 10월에 있은 재·보궐 선거에서 가장 강력한 기반을 갖고 있던 울산 북구 지역에서 패배했을 때부터 이미 진보 정당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 수년간의 진보정당 활동에 대한 국민의 냉혹한 평가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의 보수화로 보는 해석이 있다.
국민이 대선과 총선 두 번의 선거에서 완고한 보수 세력을 선택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총선에서 어느 때보다 보수 정당을 선택하는 투표 행위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 진보는 싫고 보수가 좋다’ 이렇게 국민의 생각이 바뀐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실제로 선거 현장을 통해 느꼈던 것은 진보적 대안과 정책에 대한 갈망이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진보적 대안과 정책을 공급하는 쪽이 믿음직하지 못하거나 함량 미달이었다는 것이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진보적인 대안과 정책을 제시하는 정치 세력이 등장하면 오히려 그 이전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고 본다.


진보 진영의 분열이 패배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총선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서 분당한 것이 아니다. 총선 하나만 놓고 보면 자살 행위를 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총선에서 우리가 뭔가 잃는 한이 있더라도 더 길게 볼 때 그 시점에서 갈라서는 게 마땅하다고 본 것이다. 총선에서 손해가 예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 정당의 새로운 복원을 위해서 그렇게 판단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스스로 혁신을 하고 분열되지 않은 상태에서 총선을 치르는 것이 가장 좋았겠지만 혁신이 실패한 상태에서 분화하지 않고 그대로 갔다면 어떤 평가를 받았겠나. 가망 없는 정당으로 보지는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흩어졌기 때문에 더 패배했다고 보지 않는다.


탈당하지 않고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지적도 많았다.
선도 탈당파를 비판했고 마지막까지 당은 하나여야 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까지도 남아 있지 못하게 했다고도 볼 수 있다. 혁신안이 완벽한 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남아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은 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 명분까지 주지 않았다. 특히 조직의 중요한 규율을 어겼는데 국가보안법 피해자라는 이유로 감싸 안으려는 데서 절망감을 느꼈다. 나는 누구보다도 국가보안법에 반대하고 북한에 대해서 우호적인 사람이다. 문제는 당의 기강이 우선이냐 정파의 이익이 우선이냐는 데 있다. 그 부분에서 크게 실망을 했다.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를 두고도 논란이 많았다.
민주노동당이 특정 노동 계층만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영업자까지 포함해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모두 대변하려고 했는데 현실을 보면 어려운 노동자들로부터 멀어져갔다. 민주노총 조합원들과는 가까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들과는 멀어져가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 조합원들 ‘5%만을 위한 정당’으로 비추어졌다. 이에 대해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바꿀 것은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주와 평등의 이념을 재구성해야 한다’라고 했는데 어떤 방향으로 재구성해야 하는가.
늘 혁신하는 것이 진보다.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면 진보도 퇴보할 수 있다. 21세기의 진보적 가치에서도 자주와 평등이 여전히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태·연대·평화 등 그 이외의 다양한 가치도 보듬어야 된다. 또 자주와 평등도 좀더 실사구시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국민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또 무엇을 요구하는지 잘 살피고 이에 맞추어 나갈 필요도 있다고 본다. 교조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 가능성은?
아직은 이야기하기에 이른 것 같다. 기본적으로 민주노동당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바뀌지 않은 민주노동당과 함께하는 것은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국민이 원하지 않을 것이다. 진보신당도 아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 상태다. 둘 다 새로워져야 한다고 본다.


17대 국회를 되돌아보면 감회가 많을 듯한데.
삼성 문제를 국민적 관심과 이해 속에서 사회적 문제로 증폭시킨 것은 기억에 남는 일이다. 그 외 장애인차별금지법이나 호주제 폐지 문제 등이 불완전하게나마 실현된 것이 17대 국회에서의 성과라고 본다. 반면 17대 국회에서도 재벌 정책은 상당히 후퇴했다. 규제를 더 풀려는 시도를 막아낸 것은 다행이지만 처음 출발할 때보다 많이 후퇴한 측면이 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니까 그냥 두어도 된다는 식으로 볼 것이 아니다.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무엇보다 17대 국회 4년 동안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더 심화된 데 대해서는 국회의원 모두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18대 국회에서는 원외 정당으로서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어 삼킨다는 말이 있지 않나. 정당 활동의 지평을 더 열어서 우리에게 부족한 점을 보완해나갈 것이다. 대개 현실 정치에서 원외 정당 하면 다음 선거 때까지 할 일이 없는 정당이라고 보아왔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양한 시도를 할 것이며, 국민이 가려워하는 부분을 정책으로 입안해서 적극적으로 관철시켜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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