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세금 ‘물’로 보면서 해마다 ‘펑펑’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 승인 2008.04.2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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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3년 사이 국회는 줄줄이 ‘공사 중’ 광장에 해태상 또 세우고 “기념 촬영용” 멀쩡한 의원 책상·의자 바꿔주기도 김태랑 사무총장 부임 이후 공사 많아져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선거 운동에 여념이 없던 지난 4월4일 오전 10시30분, 국회 본청 뒤 안내실 광장에서 작은 행사가 열렸다. 안내실 양쪽 편에 해태상을 건립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웬 해태상일까. 국회 공보관실은 해태상을 세운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국회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문인 안내실을 확대해 리모델링한 공사에 이은 것으로 국회의 주인인 국민이 쾌적한 환경에서 국회를 방문하고, 국회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국민을 맞이한다는 뜻에서 만들었다.’


해태상에는 각각 ‘국회의사당’과 ‘국민의 문’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국회 사무처가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한 석재 회사에 의뢰해 만들었다. 국회의사당 앞쪽에는 1975년 만든 해태상이 한 쌍 있는데, 이 해태상과 이번에 만들어진 해태상을 비교해보면 금방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새로 만든 해태상이 예술적인 ‘작품’과는 거리가 있는, 말 그대로 ‘그냥’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기법이나 마무리 정도, 기단 뒷면의 허술한 처리 등을 볼 때 그러하다. 육동인 국회 공보관은 “안내실 입구에 현판을 걸까,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민원인들이 사진을 찍기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해태상을 만들었다. 안내실을 사실상 정문 개념으로 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3천7백만원이 들어간 이 해태상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한 국회의원의 비서관은 “왜 의사당 뒤편에 갑자기 해태상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준공식 직후 해태상을 만져보던 한 국회 직원은 “이런 것을 만들기 위해 국민 세금을 쓰다니…”라며 혀를 찼다.


해태상이 건립된 다음 날 안내실 광장에는 또 느닷없이 큰 돌 하나가 세워졌다. 글씨나 아무런 표지도 없는 돌이었다. 이 돌이 어떤 연유로 여기에 세워졌는지 궁금했다. 사정에 밝은 한 국회 직원은 “해태상과 돌을 세우는 데 3억원 정도 들었다. 세운 이유는 모르겠다. 국회 사무총장실에서 안이 나왔다”라고 말했다. 해태상 건립 비용을 빼면 최소 2억원 이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국회 사무처는 “화단을 조성하고 돌을 세우는 데 1억5천6백만원이 들었다”라고 한 국회의원에게 보고했다. 이에 대해 육공보관은 “제헌 60주년을 기념해 국회의장, 사무총장과 아는 한 지인이 무상으로 돌을 기증했다. 글씨를 써야 하는지, 그냥 두어야 하는지 아직 검토가 안 끝났다. 조만간 기증의 의미를 살리는 간단한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조금씩 설명이 다르다.

 

의원마다 2백만원짜리 책상, 70만원짜리 의자

이런 일들은 국회가 국민 세금을 허투루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해양수산부가 이전하고 보건복지부가 입주하는 과정에서 쓸 만한 사무용 집기들을 버리기 위해 밖에 쌓아놓았다가 강하게 비판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국회 주변에서는 이런 낭비 사례의 원조가 국회라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최근에 집중 거론되는 경우는 지난 1월 중순, 국회의원들의 책상과 의자를 교체한 일이다. 17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다 끝나가는 시점에 이런 작업이 이루어진다는 자체도 의문을 낳았고, 국회의원들의 요구가 없었는데도 사무처가 교체를 결정해 말이 무성했다. 한 국회의원의 보좌관은 “바꿔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바꾼다기에 우리 사무실은 거부했다. 책상이 깔끔한데 임기 말에 왜 바꾸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의원들 가운데 20여 명이 책상을 바꾸지 않았다.


의원들의 책상을 바꾸는 데 들어간 돈은 7억4천만원. 책상과 의자 1개당 2백70만원이 들었다. 책상이 2백만원, 의자 하나에 70만원이 든 셈이다. 한 국회의원의 비서관은 “국회 사무처가 비싼 것으로 바꾸어야 국회의원들의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육공보관은 “미리 집기를 구입해 오래 놓아둘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바꾸어 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러면 이때 바꾼 2백70여 개의 의자와 책상은 어디로 갔을까.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조달청 재활용센터에 보내는 것이 원안인데, 군부대에서 원하는 곳이 있어 일부는 군부대에 보내고 남은 것은 조달청 재활용센터에 보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14일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은 ‘민의를 듣지 못하는 국회 사무처는 각성해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했다. 부제는 ‘에너지 절약에 국회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국회 사무처는 야간 경관을 멋있게 하기 위해 조명으로 외관을 장식했다. 국회의사당이 화려하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탈바꿈해서 국민에게 희망의 빛을 전달할 것이라고 국회 사무처는 설명했지만, 새벽 1시까지 불야성처럼 밝혀져 있는 국회 야간 조명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기품이나 희망 대신 원성과 실망밖에 없는 듯하다. 국제 유가가 100달러에 육박해 정부가 겨울철 내복 입기와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 에너지 절약 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국민을 대변해야 할 국회가 이렇게 국민의 뜻을 모를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육동인 공보관은 “조명을 설치하기 전에 선진국 국회의 밤 모습은 어떤지 사진을 모두 보았다. 화려하지 않은 국회가 없었다. 우리의 경우 예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비용을 아끼느라고 조명을 제대로 설치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외국인들이 공항에서 서울로 올 때 제일 처음 만나는 큰 건물이 국회다. 한국의 이미지를 알리는 면에서도 조명은 잘 설치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국회가 지난해 7월24일부터 시작한 국회 안팎 조명 공사에 쓴 돈은 8억7천여 만원. 국회 사무처 추산에 따르면 이로 인해 전기료가 연간 약 2천5백만원 정도 더 든다.


최근 2~3년 사이 국회는 한마디로 ‘공사판’이었다. 끊이지 않고 이런저런 공사가 계속되었다. 국회 사무처가 국회 운영위원회에 제출한 2006년부터 2007년 9월까지의 국회 공사 내역은 50건에 달한다. 의원회관 방수 및 보수·개보수 공사에 5억2천여 만원, 도서관 자료 이전에 따른 리모델링에 3억4천여 만원, 의원 사무실 조명기구 교체에 2억7천여 만원, 헌정기념관 기획전시실 시스템 구축에 2억1천여 만원, 사무실 개수에 2억3천여 만원, 국회 어린이집 및 온실 신축공사에 19억4천여 만원, 국회도서관 사무실 개수에 3억5천여 만원, 의원 보좌관실 조명기구 교체에 2억3천여 만원, 본관 계단 조명 설치에 2천9백여 만원, 의원 사무실 회의용 원탁 및 의자 설치에 6억1천여 만원 등이 주요 공사 내역이다. 2007년에는 국회 본청 샹들리에 하나를 교체하는 데 1억4천6백여 만원의 세금을 썼다.


2005년에도 헌정 기념관 전시실 노후 장비 교체 및 정보검색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데 2억6천여 만원, 국회 본관 조경 개선 공사에 9억2천여 만원을 사용했다. 국회 홈페이지와 관련해서도 만만치 않게 돈을 썼다. ‘국회 홈페이지 재구축’에 2004년 7천4백만원·2005년 2억6천여 만원, ‘홈페이지 개선’에 2006년 3억3천여 만원·2007년에 1억여 원을 썼고 2008년에는 1억5천여 만원을 쓸 계획이다.


끊이지 않는 공사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은 갈린다. 의원회관 주변에서는 “김태랑 사무총장이 부임한 이후 특히 공사가 많았다. 사연이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연일 공사를 벌일 이유가 없지 않느냐”라며 의혹어린 시선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뚜렷하게 문제가 있는 사안이 드러난 것은 없다.


육공보관은 “단 한 건도 문제된 것이 없었다. 의혹이 있었다면 뭐가 나와도 나왔을 텐데 전혀 없다. 김총장은 나는 먹고 살 것 있으니 퇴직하는 날까지 열심히 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 1원도 안 받는다고 말했다. 모든 공사는 객관적으로 한다.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도 총장이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 의자를 산다면 수요자인 직원들을 불러 선택하게 하는 식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올 초 7억4천여 만원을 들여 국회의원들의 책상을 바꿀 때 전혀 수요자들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것과 배치된다.

 

공보관 “문제가 된 공사는 없었다”

국회 사무처 공무원노조 하경래 위원장은 “공사가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1년 내내 공사한다. 물론 환경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좋아하는 직원들도 많다. 하지만 의원회관 집기를 교체한 것은 예산 낭비다. 또 지금까지 주로 선거에서 낙선한 정치인들이 계속 사무총장을 맡았는데 이제는 내부에서 승진하는 것을 고려할 때가 되었다. 최근에는 문화국회, 시민국회라고 말하면서 벚꽃축제 예산 일부도 국회에서 지출하고 있는데 국회가 과연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논란이 분분하다”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국회가 ‘마케팅’이나 ‘공사’보다는 입법 능력이나 정책 개발 능력을 강화하는 데 더 주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은 최근 국회의 모습을 걱정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운영위원회를 통과한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실, 기획예산처, 국회 가운데 유일하게 국회의 2008년도 예산만 99억원가량 증액되었다. 인턴 수당, KTX 및 항공기 이용료, 의원 보좌 직원 단기 연수, 헌정회 단체 지원비, 국회방송 전용 채널 운영 등의 항목이다. 특히 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헌정회에 대한 지원은 2007년에 비해 8억6천여 만원이 늘어났다. 그러나 입법 지원 및 정책개발비는 2006년부터 동결되었다.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은 “국회의장이 바뀔 때마다 집기를 바꾸고 국회 안팎 공사를 하는 관행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회는 18대 국회 개원 비용으로 16억원을 잡아놓고 있다. 의원 연찬회나 주차 카드 구입 등보다는 탁자 교체, 도배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이 3분의 2를 차지한다(표 참조). 의원 사무실 정보화기기 교체 비용 13억원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한 국회 직원은 “국회가 예산을 물쓰듯 쓰는 것에 비해 감시나 사후 감사는 솜방망이다”라고 말했다. 국회 사무처가 벌인 각종 공사에 대한 감사는 법적으로 국회 자체적으로 하게 되어 있다. 국회는 감사원법에 따라 감사원으로부터 회계 검사만 받는다.


그러나 감사원 관계자는 “직무감찰을 떼놓고 회계 검사만 하기가 쉽지 않다. 국회 사무처는 정부 부처보다(제대로 감사하기가) 더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2006년과 올해는 ‘지적 사항 없음’이었고, 2007년에는 ‘특근 매식비 사용’과 ‘사무실 운영비 사용’에 대해 지적을 받았다. 국회 관계자는 “최근 3년간 내부 감사에서 특별한 사항이 적발된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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