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봉과 타협하되 꿈은 지킨다”
  • 김지혜 기자 karam1117@sisapress.com ()
  • 승인 2008.04.0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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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초년생 4인의 ‘나의 직업, 나의 고민’ / 현실에 맞춰가며 자기 계발에도 열심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면 직장을 선택하는 우선적인 기준은 대개 ‘높은 연봉’으로 나온다. 이들은 물론 ‘고용 안정성’도 그에 못지않게 중시한다. 그러나 연봉을 꽤 주면서 평생 고용까지 보장하는 직장은 흔하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취업한 직장 초년생들로부터 이들의 직업관과 직장 생활에서 겪고 있는 애환, 고민 등을 들어보았다. 이들 역시 높은 연봉이나 고용 안정성을 기대하며 지금의 직장을 선택했다. 그러나 대부분 직장의 현실에 맞추어가며 일도 잘하고 싶고, 자기 계발을 위해 다른 직종이나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은 충동도 느끼는 등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김호정 하나은행 대리
“연봉은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다”

하나은행에 3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호정 대리(30)는 6천만원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다. 지금은 농담 삼아 돈을 많이 벌면 마흔 살에 은퇴할 것이라고 하지만 연봉에 관한 생각이 그리 절박하지는 않다. 그에게 높은 연봉은 신포트폴리오 관리 정책, 기업의 신용 관리 등 쏟아지는 업무에 대한 대가이지 직업 선택의 최우선 요소가 아니다. 김대리는 “1주일에 100시간 일하는 근무 강도도 나쁘지 않다.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지 철저한 성과급제가 도입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능력에 상관없이 호봉대로 정해진 월급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워커홀릭인가? 아니다. 주말에 일하는 것은 싫다. 단지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것이 좋을 뿐이다. 그는 이런 자신감의 원천을 상당한 노력과 인내의 결과라고 표현했다. 김대리는 “은행은 이직률이 높다. 40명의 입행 동기들이 대부분 지점에 발령받았는데 20명이 1년 이내에 그만두었다. 큰 꿈을 안고 들어와 창구에서 돈을 세거나 펀드 영업을 해야 했을 때 다들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만둔 이유는 돈이 아니라 일에 대한 회의와 자괴감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자신 역시 입사 후 이런 일을 하려고 그 힘든 경쟁을 뚫었는가 하는 회의감에 싸이곤 했다. 그러나 본점의 신용리스크 관리팀에 오기까지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뭐든지 참고 열정적으로 해왔다고 한다. 입행한 후 연봉은 언제나 ‘원하는 일’ 다음 순위에 놓았다. 그는 “직업을 선택하는 데 고액 연봉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주말과 가정은 일보다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김효숙 부천 대명초등학교 교사
“사명감으로 힘든 일 견딘다”

“내가 어렸을 때 선생님은 정신적인 멘토였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부천 대명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김효숙 교사(27)의 말이다. 하지만 임용된 후 교사로서 2년째 접한 현실은 너무 달랐다.

“친구 얼굴에 심한 상처를 낸 아이 부모에게 전화하면, 아이들이 놀다가 한 일로 전화까지 하느냐며 오히려 교사를 탓한다. 선생님이 교육자라는 의미는 사라진 것 같다.”

김교사는 “교육대학에서 배운 것은 수업을 잘 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발령을 받고 교사가 된 후에 가장 필요한 것은 각종 공문을 잘 보내는 요령이다”라며 직업적 회의를 느낄 때도 있음을 고백했다. 특히 수업을 열심히 하는 교사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교단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행정 업무에 능숙하고, 교육청의 프로젝트를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교장, 교감, 교육감으로 승진한다. 수업에만 최선을 다하는 교사들은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만을 위한 교사가 되고 싶지만 현실에는 제약이 너무 많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대여섯 번씩 울리는 행정 처리 요구 전화 때문에 매번 수업의 맥이 끊긴다.”

김교사는 한때 이직도 생각했다. “넓은 세상에서 내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교사라는 직업은 연봉이 많지 않고, 행정적인 업무에 시달리며 무사 안일한 집단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모든 것이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학생들의 인생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계속 남아 있게 된다”라고 털어놓았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에게 정신적인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변함 없다고 말했다.

민지홍씨
“100% 맞는 업무는 없다”

한 회사에 근무하는 민지홍씨(27)는 “100% 원하는 업무, 안정적 고용, 만족할 만한 연봉을 모두 갖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은 80% 정도 원하는 업무, 안정적 고용, 적당한 연봉을 기준으로 지금의 직장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원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창조적인 직업을 원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수명은 짧고, 대부분 대기업의 외주를 받는 비정규직이다. 디자이너의 경우 공급은 넘치는데 디자인을 중시하는 기업은 소수여서 수요가 턱없이 적은 분야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디자인풍은 한국 실정에는 맞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 진로를 과감히 바꾸었다.”

하지만 그녀는 요즘에도 ‘내 일이 과연 창조적인가’를 자문 자답하고 있다. “취업한 지 2년이 넘자 내 일의 핵심이라고 할 창조성마저 거의 고갈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대학원을 다녀서 극복하고자 했다. 창조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면 최소한 창의력이라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씨는 주어진 여건에서 자신을 계발시키는 방안을 찾느라 고민하기도 했다. “내가 순수한 창작을 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디자인 통합 마케팅’을 전공해 지금의 직장에서 역량을 더욱 키워나가는 방향을 모색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현실적으로 타협한 셈이다.”

정주용 롯데정보통신 사원
“샐러던트로 일과 미래 함께 잡는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머리 아픈 직업이다. 좋아하지 않으면 이 까다롭고 세밀한 업무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롯데정보통신에 입사해 9개월째 롯데제과 물류전산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주용씨(28)는 제과의 특성상 사용하는 프로그램 언어가 많아 하는 일 자체가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배우는 재미가 쏠쏠한 데다 자신의 업무 역량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만족한다고 했다. 그는 “연봉이 아무리 많고 편한 일이더라도 적성에 맞지 않으면 못할 것 같다”라고도 말했다.

정씨는 주말마다 미국 회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니며 수업을 듣는다. 그는 “내 업무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도,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연히 들은 회계 수업이 흥미가 있어서 계속하게 되었다. 내 일과 어떻게 연결할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나는 ‘샐러던트(샐러리맨+스튜던트) 열풍’을 직장인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주변의 많은 동료들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취업 기준으로 삼았던 연봉이나 고용 안정성은 누구나 원하는 바이지만 결국 회사에 남아 핵심 인력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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