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불러도 걱정 마세요
  • 박관수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치과 조교수) ()
  • 승인 2008.03.1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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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 구강 질환, 치료 받아도 태아에 큰 지장 없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예고하는 임신은 하늘이 여성에게만 내려준 축복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새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하지만 이러한 임신과 새 생명 탄생의 기쁨도 잠시이고 예비 엄마에게는 다양한 고통과 시련이 함께 다가온다. 입덧이 생기고 체중이 늘거나 몸이 붓고 소변이 자주 마려운 증상이 생기기도 하며 이유 없이 나른하고 피곤한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증상 외에도 치과 의사로서 환자에게 많이 듣게 되는 것이 “임신 중에 잇몸이 나빠졌어요”, “아기 낳고 나서 이가 부실해졌어요”라는 말이다. 임신과 구강 건강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사실은 임신 중에는 잇몸 건강이 나빠지는 일이 흔하다는 것이다. 즉 잇몸병(치주염)이 잘 생긴다는 뜻으로 실제 임신 중에 치과에 오신 환자들의 경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비슷한 연령의 남성들보다 잇몸병이 심한 상태를 볼 수 있다.
임신 기간에 잇몸병이 심해지는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원인은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의 변화이다. 호르몬 변화는 잇몸의 저항력을 약화시켜 약간의 관리 소홀이나 치태, 치석 침착에도 염증 반응이 쉽게 일어나게 한다. 더구나 임신 초기를 지나 중기, 후기로 들어서면 체중이 불어나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지게 된다. 생활 습관이 자기도 모르게 조금은 게을러지고 칫솔질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자연히 잇몸병의 주원인인 치태 제거가 소홀해지고 치태와 치석의 침착이 가속화된다. 이러한 잇몸병의 예방과 치료 방법은 스케일링이다. 임산부는 스케일링 같은 간단한 잇몸병 예방 치료법도 몸속의 태아나 본인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꺼리는 일이 많다.
임산부에게 치과 치료는 시기가 중요하다. 임신 기간은 크게 3개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약 3개월 간격으로 초기·중기·후기로 나눈다. 임신 초기는 태아의 장기가 만들어지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대부분의 치과 치료를 피하는 것이 좋다. 임신 중기는 태아가 안정되고 임산부도 임신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치료에 대한 두려움이나 스트레스도 줄어드는 시기이므로 치과 치료에 가장 적당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임신 3~4개월부터 6~7개월 정도까지이다. 임신 후기는 몸이 무거워지고 움직임이 둔해지며 치과 치료용 의자에 일정한 자세로 장시간 누워 있게 되면 혈액 순환에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치료에 최적의 시기는 아니다.

임신 4개월 지나야 치료에 안전해
스케일링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임신 중기에 하는 것이 좋다. 스케일링은 잇몸병이 없더라도 1년에 1~2회 정도 정기적으로 받는 예방적 치료의 일종이므로 임신 기간에 특별히 잇몸병의 증상이나 징후가 없더라도 약 1년 이내에 스케일링을 받은 적이 없다면 임신 중기 정도에는 한 번쯤 스케일링을 하는 것이 좋다.
임산부들이 더욱 걱정하는 경우는 치아 우식증(충치)이나 사랑니 주변 통증 같은 본격적인 치과 치료이다. 임신 기간에는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알고 있거나 혹시 아기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치료를 망설이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가 되면 치과에 오는 임산부가 많다.
충치에 의해 발생한 심한 통증은 일반적으로 신경치료라고 부르는 근관 치료(치아 뿌리의 신경이라 부르는 치수를 제거하고 소독하는 치료)를 해서 없애는데, 대개 여러 번의 치과 방문과 긴 시간의 치료를 요한다. 임산부의 경우는 근관 치료의 과정을 간소화해 치아 뿌리 부분의 치수를 남긴 채로 통증만 제거해주는 치료법을 시행한 후 몇 차례 간단한 소독만 하고 나머지는 임신 이후로 미루어 치료한다. 치료 과정 중에 부분 마취가 필요하고 몇 가지 약물을 치아에 뿌리는데 이러한 정도의 치과 치료는 태아 건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임신 기간에 통증을 일으키는 구강 질환 중 흔히 볼 수 있는 또 다른 경우는 나오다 만 사랑니 주변의 감염증이다. 보통 엑스레이 촬영 후 사랑니의 상태를 평가해서 염증을 조절하는 약물을 복용한 후 염증이 가라앉으면 수술로 사랑니를 뽑지만 임산부에게는 이러한 세 단계의 과정이 모두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엑스레이 촬영시 발생하는 방사선이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되어 있다. 치과 치료를 위해 촬영하는 엑스레이는 방사선 노출량이 비교적 적은 편이고 촬영 부위도 얼굴과 턱, 치아 주변으로 한정되어 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납으로 만들어진 앞치마를 하고 엑스레이 촬영을 하면 태아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과에서도 꼭 필요한 경우에만 촬영을 한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염증을 조절하기 위한 약물의 투여이다. 임신 중에는 불필요한 어떠한 약물도 피하는 것이 좋겠지만 꼭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이 약물 투여를 해야 한다. 사랑니 주변에 염증이 있을 때 치과에서 주로 처방하는 항생제나 진통제류는 태아에 별다른 영향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고려해 약물의 종류나 투여량을 조절하기도 한다. 이 정도로 사랑니 주변의 염증이 잘 조절되어 통증이 경감되는 경우에는 사랑니 발치 수술은 출산 이후로 미루며 아주 가끔씩은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사랑니를 발치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니 발치 자체가 태아나 임산부에 영향을 줄 확률은 매우 낮지만 수술에 대한 스트레스나 긴장감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므로 최대한 조심스럽게 시행한다.
이 외에 임신 중에 잘 생기는 구강 질환으로는 화농성 육아종(임신성 육아종)이 있는데, 이것은 잇몸에 붉은 혹덩어리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이다. 보통사람에게도 나타나지만 임신 중에 잘 나타난다고 하여 임신성 육아종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대개는 출산 이후에 제거 수술을 하면 되지만 통증이 심할 때는 간단히 국소를 마취하고 제거 수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여성이라면 미리 검진을 통해 구강 질환 여부를 확인하고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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