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젊음에 한 표”
  • 도쿄·임수택 편집위원 ()
  • 승인 2008.02.0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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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부에 38세 최연소 지사 탄생…유권자의 ‘변화’ 열망 업고 선거 압승

 
버블 붕괴 후 살아나는 것 같던 일본 경제가 최근 다시 침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가가 상승하고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정치적 갈등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후쿠다 정권의 인기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집권 초기 60%에 달하던 지지율이 현재 42%까지 떨어졌다.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한 집권 자민당의 구원 투수로 등장한 후쿠다 수상은 대체로 무난하게 정국을 이끌어 가고 있다. 하지만 중의원은 여당이, 참의원은 야당이 지배하는 양분화된 권력 분점 구조 속에서 정국 운영이 순탄치만은 않다. 인도양 급유를 계속하기 위한 신법안을 겨우 통과시킨 여당은 도로 특정 재원의 잠정 세율 유지를 둘러싸고 다시 야당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집권 여당에 한겨울의 따사로운 빛이 내리쬐었다. 다름 아닌 지난 1월27일 실시한 오사카 부 지사 선거에서 자민당이 공천하고 공명당이 지원한 하시모토 토오루 후보가 민주당·사민당·국민신당 등 범야당이 추천한 구마가야 사다토시 후보를 두 배 가까운 압도적인 차로 물리치고 당선한 일이다. 38세의 전국 최연소 지사 탄생이다. 자민당의 타니카키 사다가즈 정조회장이 개표 결과 승리가 확정된 후 “승리는 정국 주도권을 쥐는 데 큰 근거가 될 것이며, 정권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번 선거는 명실공히 여당과 야당의 한판 승부였다. 따라서 승리를 이끈 집권 자민당으로서는 향후 정국 운영에 조금이나마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변호사 출신의 하시모토 씨는 TV에서 법률 상담 프로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탤런트의 길을 걸어왔다. 독특한 헤어스타일에 선글라스를 끼는 파격적인 모습, 튀는 발언으로 탤런트 못지않은 끼를 보여왔다. 그래서 그의 직업은 공식적으로 변호사 겸 탤런트이다. 여러 TV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해온 하시모토 씨는 도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오사카로 이사했다. 무자녀·소자녀가 대부분인 일본 가정과는 다르게 3남4녀, 7명 대가족의 가장이다. 오사카 부립 키타노 고교 시절에는 사립의 강호를 물리치고 전국 럭비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으며 와세다 대학 시절에 가죽 점퍼를 판매하다 부도 수표를 잘못 받아 경찰에 불려가자 그 분함을 이기기 위해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시모토 씨는 거침없는 발언으로도 주목되고 있다. 그는 저서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자는 정치가나 변호사가 되지 못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정치가와 변호사의 시작이다”라고 소개했다. “일본은 핵을 보유해야 한다” “중국에 대한 ODA(정부개발원조)는 일본의 매춘이다”라는 등 여과되지 않은 발언을 과감(?)하게 함으로써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런 미숙한 성격에다 행정 경험이 전혀 없는 하시모토 씨를 집권 자민당이 공천하고 공명당이 지지한 데에는 그의 대중적 인기가 한몫했다.
“좋아질지 아니면 나빠질지는 모르겠지만 하시모토라면 바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강했다”라고 자민당 오사카 부의 간부가 말한 것처럼 현 오사카 부의 최대 관심 사항은 변화이다. 이번 선거에서 정책과 관련한 하시모토 씨의 주장은 눈에 띄지 않았다. 단지 “오사카를 바꿉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만 반복했다. 기존 인물에 대해 오사카 부민들이 기대감을 가질 수는 없었다. 검증되지 않았지만 젊음을 무기로 변화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많은 유권자들, 특히 부동층이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이 점이 바로 일본 제2의 도시인 오사카 부가 처하고 있는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재정 적자를 ‘에너지와 폭발력’으로 치유하겠다”

오사카 부는 인구 8백83만명에 지난해 기준으로 재정 규모가 일반 회계와 특별 회계를 합쳐 4조3천억 엔에 달하는 매머드 도시이다. 도쿄 도와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제2의 도시이다. 이 매머드 도시를 이끌고 갈 지사로 하시모토 씨를 선택한 데에는 크게 경제 살리기와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오사카 부는 전통적인 상업 도시이다. 마쓰시다 산업전기, 샤프, 스미토모 은행, 산토리, 타게다 약품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기업들이 즐비한 도시이다. 그러나 최근에 본사를 도쿄로 이전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사카 출신으로 사업의 거점을 도쿄에 두고 있는 넥스트잇의 나카니시 사장은 “오사카에 남아 있는 기업들은 하청 업체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독특한 기술이 축적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오사카 경기 침체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동오사카의 경우 중소기업들이 밀집되어 있는데 이곳의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침체는 세수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오사카 부 재정 적자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하시모토 씨는 5조 엔에 이르는 재정 적자를 ‘에너지와 폭발력’이라는 젊음으로 치유하겠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플랜은 밝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시모토 씨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은 그가 ‘변화’를 가져올 인물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특히 TV에 많이 노출된 인기를 기반으로 미야자키 현 지사가 된 히가시 고쿠바루 씨와 여러 면에서 흡사하다는 기대감이 유권자들을 움직이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선거 종반에 히가시 고쿠바루 지사가 오사카를 방문해 지원 유세를 통해 인기몰이를 했다.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미야자키 현을 일약 전국적인 현으로 지명도를 높인 데는 히가시 고쿠바루 지사의 영향이 크다는 점을 현의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히가시 코구바루 지사가 당선된 후 미야자키 현은 여러 면에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미야자키 현의 2007년 홈페이지 접속자 수가 전년에 비해 54.8% 증가했다. 현내 2007년 주요 호텔 및 여관의 숙박 객수는 전년에 비해 5% 증가했다. 이 5%는 히가시 코구바루 지사가 매니페스토에서 임기 중 실천하겠다고 제시한 수치인데 일찍이 앞당겨 실천했다. 또한 현의 특산품 판매량은 취임 후 세 배 정도 늘어났다. 한마디로 히가시 고쿠바루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하시모토 씨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이와 같은 미야자키 현의 가시적인 결과가 오사카 부에서도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두 지역과 두 사람은 대이소동(大異小同)하다. TV에서 인기를 모으고 같은 와세다 대학 출신이라는 부분은 비슷하지만, 히가시 고쿠바루 씨는 대학 입학 전부터 미야자키 현의 지역 활성화에 관심이 깊었다는 점이 다르다. 지역적으로도 미야자키 현은 현의 특산물 판매 증진이나 관광객의 유치로 현의 경기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사카 부의 경우는 전통적인 제조업 도시라서 지역 경제 활성화 전략 등이 미야자키 현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살리기와 변화를 갈망하는 오사카 부민들의 뜻은 인기 있는 젊은 사람에게 일단 맡겨보자는 것이었다. 지역 경제를 살리고,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고 과감하게 변화를 일으킬 것을 일단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지난 12월19일 실시된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의 초점도 경제 살리기였던 것처럼 일본 열도도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지방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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