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 쏟아지는 중국산 걱정이 ‘한 상’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07.10.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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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5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가락시장. 거래 물량 기준으로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농수축산물 도매시장답게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경매가 끝나자 늘 그렇듯이 노점상과 지나가는 행인들 간 가격 흥정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한 상인이 좌판에 앉아 연신 소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전라남도 나주에서 올라왔다는 그는 “물건을 잔뜩 싣고 왔는데 기름 값도 못 뽑게 생겼다”라고 말하면서 인상을 찌푸린다. 가락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중국산 당근 때문에 낭패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산 농산물 문제는 이곳 가락시장에서도 남의 일이 아니다. 값싼 중국산 상품이 쏟아져 경매에도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름 값이라도 벌기 위해 인근 소매상에 물건을 풀기는 했지만 마음이 착잡하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중국산 제품은 더 들어올 것이 뻔한데, 그렇게 되면 자신을 비롯한 국내 농가는 설 땅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인근 상인들에 따르면 이 같은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매에서 밀린 나머지 홧김에 가지고온 농산물을 모두 버리고 돌아가는 농민들도 적지 않다. 버려진 농산물은 인근의 노점상들이 주워다가 다시 판매하고 있다.

가락시장, 중국산 공습으로 ‘초토화’…‘원산지 세탁’도 기승
실제로 이날 경매에서 부산 당근은 20kg 기준으로 4만원에 낙찰됐다. 그러나 중국산의 낙찰 가격은 7천5백원(10kg 기준)에 불과했다. 가격 경쟁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올해는 수해로 인해 제주산 당근이 종적을 감췄다. 이 자리를 중국산 당근이 차곡차곡 채워가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난 한 소매상은 “기존에는 그해의 수확량에 따라 어느 정도 낙찰 가격을 점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중국산 농산물의 난립으로 그 것이 불가능해졌다. 특히 중국산이 들어오는 날은 말 그대로 똥값이 되어 버린다”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이유로 가락시장 도매상과 공급업자들을 최근 중국산 당근의 유통을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깨져버렸다. 일부 도매상을 중심으로 은밀히 수입산 당근을 유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락시장에 당근을 공급하는 한 업자는 “중도매인과 법인이 적극적으로 동참을 약속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중국산 당근이 유통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공급 과잉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하자 허탈하다”라고 털어놓았다.
 최근 이곳에서 새로운 방식이 등장했다. 중국산 고사리나 도라지를 북한산이나 국내산으로 속여 파는 이른바 ‘원산지 세탁’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가락시장에서 거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산지를 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매에 내놓을 수 없다. 일부의 경우 원산지를 속여 내놓기는 하지만 금방 들통이 나고 만다. 전문가 못지않은 경매인들의 눈썰미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물류의 경우 삶아서 들여오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원산지 파악이 쉽지 않다. 포장지의 원산지 표시만 바꿔 달면 ‘완전 범죄’가 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요즘은 중국산 제품을 속여 파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수산물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현재 이곳에서 유통되고 있는 멸치류의 경우 중국산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도매상들은 은근 슬쩍 한국산이나 북한산에 끼워 판다. 한국산과 중국산의 구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건어물 수입업자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기후나 해안 사정이 비슷해 멸치류 등의 구분이 쉽지 않다. 전문가들도 쉽게 분간하지 못할 정도이다. 이를 노리고 일부 업자들이 원산지 바꿔치기를 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검찰은 최근 북한 브로커를 끼고 중국산 명태를 북한산으로 위장 유통시킨 조직을 적발했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은 북한의 공식 원산지 증명서까지 붙여 통일부 승인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1990년 제정된 남북 교류 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북한산을 국내에 들여 올 때는 면세 혜택을 받고 있다. 수입 업자는 이 같은 맹점을 악용해 20%에 달하는 수입 관세를 상습적으로 포탈해 왔다”라고 설명했다.

수입 유기농산물로 가공한 식품은 통계조차 없어

 
최근에는 유기농 식품 시장까지도 중국산 제품의 위협을 받고 있다. 때로는 유명 식품업체들이 국산 아닌 중국산을 썼다 해서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실제로 풀무원이 현재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판매 중인 유기농 두부의 재료는 100% 중국산이다. 매년 수천톤 규모의 대두를 수입해 한국에서 두부를 제조하고 있다.
그러나 농민 단체 일각에서는 ‘유기농’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최동근 사무국장은 “중국 농수산물 기준은 우리와 차이가 있다. 유기농산물의 범주에는 저농약과 무농약, 녹색 식품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녹색 식품은 또 다시 A급과 AA급으로 나뉘게 되는데, 우리나라에 흔히 알려진 유기농 식품은 AA급이다. 중국산이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풀무원측은 “여러 단계의 인증을 거치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라고 해명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현재 수입하는 유기농산물 원료는 중국 인증기관(OFDC)을 비롯해 유럽 및 일본 인증기관으로부터 정기적인 검사를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현지에 파견된 국내 인증기관이 최종 검사를 마친 이후에 수입이 허용된다. 때문에 품질로 친다면 국내산보다 나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풀무원은 과거 수입산 콩을 쓰고도 100% 국산콩이라 표기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은 적이 있다. 현재도 제품 전면에 유기농 제품임을 강조하는 글자를 채우고 있다. 원산지 표시는 귀퉁이에 조그만 글씨로 표시되어 있어 소비자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최근 식약청으로부터 권고치를 초과하는 발암물질이 검출되어 논란을 빗고 있는 ‘신송 참기름’(제조 이레식품)도 주목을 받고 있다. 기준치를 8배나 초과하는 벤조피렌이 나왔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결과 이레식품은 그동안 참깨, 해바라기, 옥수수, 대두 등 참기름이나 식용유 원료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옥수수가 631톤으로 가장 많았고, 대두 80톤, 해바라기 36톤, 참깨가 18톤 등 765톤을 지난해 중국으로부터 수입했다. 이를 위해 유기농 인증기관의 인증까지 거쳤다. 그러나 중국에서 수입된 유기농 원료로 벤조피렌이 검출된 문제의 제품을 만들었을 경우 향후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중국에서 가공해서 들어오는 친환경 제품의 경우 아직 수출입 통계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해 인증기관이 없어 고스란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소리이다. 때문에 ‘친환경’이라는 말만 믿고 구입했다가는 화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최동근 사무국장의 지적이다.
그는 “중국 현지에서 가공해 들어오는 밀가루나 음료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중국 현지에서 발행하는 인증서(OFDC)가 국내에서도 그대로 통용되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시중 유통 한약재 10개 중 1개꼴로 중금속 기준치 초과
납, 카드뮴, 수은, 비소 등의 중금속이 함유된 중국산 한약제도 최근 시장에 무차별적으로 퍼지고 있다. 식약청이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 장복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시중에 유통되는 생약 열개 중 한 개꼴로 중금속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기존 제품보다 최대 200배 이상 중금속을 함유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식품위생을 담당하는 기관들의 검사는 오히려 부실해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자료에 따르면 국내 식품 위생을 검사하는 기관 7곳 가운데 4곳의 업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조사 결과인 10곳 중 4곳보다 나빠진 수치이다.
한국식품연구원의 경우 검사를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하지 않고 다른 제품의 검사 결과를  허위로 발표했다가 들통 나 1개월 업무정지를 받았다. 한국어육연제품공업협동조합은 검사 과정에서 표준 용액을 사용하지 않아 제재를 받았다.
이 밖에 상당수 검사 기관이 정해진 검사 방법을 어기거나 실험자가 부실하게 검사를 한 사실이 드러나 적게는 15일, 많게는 석 달까지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그동안 ‘중국산 유해식품과의 전쟁’을 강조했으나 현장에서는 겉돌고 있었던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장복심 의원은 “국민들의 먹을거리인 수입 식품에 대한 안전관리는 ‘제2의 국방’이라 불릴 만큼 중요하다. 식품 안전성을 검사하는 기관의 부적합 건수가 해마다 늘고 있는 만큼 정부 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지적했다.
주강현 한국민족문화연구소장은 “일본의 경우 자국 공무원을 직접 중국에 파견해 종자 선택에서부터 재배시의 농약 사용 여부, 포장 방식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감시한다. 중국산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우선 검사 기관이 바로 설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각 부처별로 나눠진 검사 업무를 일원화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흥수 한국전통가공식품협회 회장은 “우리나라는 현재 식품 안전 관리를 담당하는 부처가 수입 품목별로 다르게 되어 있다. 이로 인해 같은 회사 제품을 검사해도 관련 부처나 연구기관이 내놓는 결과가 다른,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우선 각 부처별로 나눠진 식품안전관리 업무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최근 중국 정부와의 공조 체제를 부쩍 강화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부는 관련 기관의 연구원이나 직원들을 정기적으로 중국에 파견하고 있다. 중국 현지 수출 공장을 점검해 문제점을 시정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정부는 현재 상호 인증제도인 ‘사전 공장 등록제’도입을 중국 정부와 협의 중이다.
서갑종 식약청 수입식품팀장은 “사전 공장 등록제란 비자로 치면 무비자와도 같다. 양국 정부가 공통 기준을 마련하고 여기에 맞춘 공장의 제품은 별도 절차 없이 들여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면 오염 식자재의 수입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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