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씨가 마른다
  • 반도헌 기자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7.10.22 16: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빌려 보고, 불법으로 내려받아 보는 문화에 밀려 시장 ‘썰렁’

 
요즘 원하는 DVD 타이틀을 사기란 쉽지 않다. 시간이 조금 걸릴지언정 그나마 온라인 매장들을 통해서는 구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급하게 필요할 경우 다양한 타이틀을 갖추고 있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기는 어렵다. 서점이나 음반점, 또는 대형 할인마트의 한 구석에 DVD 코너가 있지만 최신작이나 묶음 상품이 대다수이다. 대부분의 전자 제품을 구할 수 있는 용산 전자상가에서도 DVD 매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흥행작을 중심으로 한 불법 복제 DVD만이 가판대를 통해 팔리고 있는 상황이다.

1천장 판매도 드물어

한국에서의 DVD 산업은 사양길이다. 뚜렷한 오르막이 없었는데 내리막을 얘기한다는 것이 우습지만 <반지의 제왕>이 출시된 2003년 전후에는 DVD 시장에도 활력이 넘쳤다. <반지의 제왕 1편>은 13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고, 이후에 출시된 2편과 3편도 9만~10만장 가까이 팔려나갔다. 이 밖에도 <매트릭스> 시리즈와 <해리포터> 시리즈가 DVD 시장의 중흥을 이끌었다. 하지만 최근의 DVD 시장은 황폐하다. 영업 자체가 어려운 형편이다. DVD를 찍어내는 최소 단위가 5백장인데 대부분의 타이틀이 이를 소화하기 힘든 상황이고 최소 손익분기점인 1천장을 판매한 타이틀도 드물다. 그나마 <괴물>과 <스파이더맨 3> 정도가 이름값을 했다.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폭스 등의 할리우드 직배사들은 한국 DVD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들의 작품은 소니픽쳐스, 비트윈을 인수한 SM픽쳐스, 드림텍 등에 의해서 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때 직배에 목을 맸던 할리우드 직배사들의 철수는 한국 DVD 시장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잘 보여준다.
DVD 시장이 한국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는 대여 문화이다. 초창기 DVD 시장은 이미 자리를 잡은 비디오 대여 시장에 편입되었다. 비디오 대여점의 한 쪽 구석에 자리 잡아 비디오보다 고화질을 경험하고자 하는 소비자를 찾아갔다. 비디오 대여 시장은 1996년 2만5천여 곳에 달했던 비디오 대여점이 2006년에는 6천여 곳으로 줄었을 정도로 급격히 붕괴했다.
DVD 업계는 직접 구매를 노리는 셀스루 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DVD 셀스루 시장은 쉽게 형성되지 못했다. 이미 대여 문화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이 DVD를 소장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DVD 시장은 일부 마니아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졌고 이는 DVD 시장의 축소를 가져왔다. 이에 대해 DVD 전문가인 이용철씨는 “한국 사람은 영화에 대한 소유욕이 없는 것 같다. 아주 좋아하는 영화가 아니라면 콜렉션으로 DVD를 사는 경우는 없다”라고 말했다.
불법 다운로드 문화가 발달한 것도 DVD 시장 몰락의 한 원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2006년 온라인 불법 복제 시장은 4천억원 대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초고속 인터넷이 가장 발달한 나라이다. 수십 분이면 영화 한 편을 다 내려받을 수 있는 곳도 우리나라뿐이다. 그래서인지 불법 다운로드가 성행해 마니아들조차 굳이 DVD를 구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도 다운로드 문화가 보편화된 중요한 이유이다. 저작권을 보호하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다 보니 불법 다운로드가 영화 감상 방법 중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자리했다. <DVD 2.0>의 김도형 기자는 “10대들의 인식이 영화는 공짜로 보는 것이라고 고정될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IPTV가 대안이 될까

최근에는 IPTV가 영화 유통 시장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을 태풍의 눈으로 여겨지고 있다.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에 Pre IPTV 형태로 선보인 ‘하나TV’와 ‘메가TV’가 성공을 거두면서 IPTV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비디오와 DVD 시장이 썰렁해지면서 영화 유통의 홀드백 시스템도 무너지고 있다.
홀드백 시스템이란 영화가 개봉되고 비디오·DVD가 출시되고, 케이블과 지상파를 통해 방송되기까지 각각의 시간 터울을 두는 것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홀드백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셀스루 시장은 약화되고 IPTV를 비롯한 온라인 VOD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용철씨는 “IPTV는 DVD의 적이라기보다는 불법 다운로드의 적에 가깝다. IPTV가 좀더 많은 사람이나 오락물 팬의 수요는 만족시키겠지만 희귀한 영화나 대중성이 떨어지는 영화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DVD가 결국에는 단순 감상의 수단이 아닌 소장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DVD를 소장용으로 간주한다면 이에 강력하게 도전하는 것이 차세대 DVD이다. 차세대 DVD는 현재 블루레이와 HDDVD가 기술 표준 경쟁을 벌이고 있다. 블루레이는 소니가 주축이 되어 삼성, 필립스 등이 참여해서 개발한 기술이며 HDDVD는 도시바를 주축으로 NEC, 산요, 인텔 등이 참여해 개발했다. 블루레이는 기존의 DVD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25기가바이트의 용량을 담아내며 더블레이어를 사용할 경우에는 두 배인 50기가바이트의 데이터 저장이 가능하다. HDDVD는 이보다 조금 적은 단일 15기가바이트 더블 30기가바이트의 데이터가 저장된다. 블루레이가 저장 용량이나 화질, 음향 등 전반적인 성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HDDVD는 기존의 DVD와 완벽하게 호환되며 DVD 생산 라인을 그대로 활용해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보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둘의 기술 표준 경쟁은 베타와 VHS의 경쟁을 연상시킨다. 당시 성능에서 우수했던 베타는 표준 경쟁에서 VHS에 밀리는 바람에 완전히 사장되었다. 이 때문에 블루레이와 HDDVD 간의 경쟁에서 섣불리 승자를 점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소니픽처스로 대표되는 블루레이 진영과 유니버설로 대표되는 HDDVD 진영 간의 소프트웨어 대결도 볼만하다. 패자의 경우 완전히 사장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아직 차세대 DVD 플레이어 선택을 보류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차세대 DVD 경쟁이 시작된 미국의 경우 현재는 성능에서 앞선 블루레이가 앞서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김도형 기자는 “차세대 DVD는 기존의 DVD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월등한 화질과 음향을 제공한다. 결국에 DVD는 차세대 DVD로 대체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블루레이와 HDDVD 플레이어 모두 기존의 CD, DVD 재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세대 DVD가 DVD를 대체하는 것에 큰 장애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DVD에 기대

앞으로는 차세대 DVD가 소장용 영화 시장을 형성할 것이다. DVD와는 달리 차세대 DVD는 성공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는 요소가 있다. 우선 풀HD와 같은 디스플레이 시장이 발달하면서 그에 걸맞는 콘텐츠 수요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대로 차세대 DVD는 화질에서 DVD보다 월등한 성능을 갖추고 있어 풀HD로 감상할 경우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다음은 차세대 DVD의 용량이 크기 때문에 초고속 인터넷이라도 다운로드를 받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저작권에 대한 보호가 강화될 것이라는 점도 차세대 DVD가 불법 다운로드와 경쟁할 만한 힘을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극장, IPTV, DVD, 불법 다운로드 중 무엇이든 간에 영화라는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줄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 소비 시장이 어떤 방식으로 재편되든 전체 수요를 유지한다는 점은 각 매체가 희망을 가질 근거가 된다.
차세대 DVD가 DVD를 대체할지라도 당장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적어도 3~4년은 더 버틸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VHS를 대체했던 DVD가 10년도 버티지 못하고 올드 미디어로 전락해 버리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벌써부터 갓 태어난 블루레이나 HDDVD가 몇 년이나 버틸지 궁금해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