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뛰어난 ‘언론 괴물’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 조홍래 (언론인·전 연합뉴스 외신국장) ()
  • 승인 2007.07.0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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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월스트리트 저널에도 손 뻗쳐

 
루퍼트 머독이라면 미국에서 삼척동자도 아는 언론 황제이다. 호주 출신의 그가 30년 전 뉴욕 포스트를 인수했을 때만 해도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폭스뉴스를 창설했을 때 그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모기업 다우존스를  5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의했을 때 그는 어느새 언론 왕국의 황제를 넘어 괴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한 언론인이 아니다. 언론과 인터넷은 물론이고 정계·재계·연예계로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최근에는 미국 무대도 좁은 듯 중국으로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가 소유한 사업체의 총 자산은 현재 6백80억 달러로 월트디즈니를 넘보는 수준이다. 처음 진보적 기성 언론에 대항하기 위해 보수 언론 폭스뉴스를 창설했을 때 세상은 그를 보수주의자로 보았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는 보수와 진보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10년 전 그는 공화당에 많은 정치 자금을 주었다. 지금은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에 더 많은 자금을 댄다. 그의 현재 색깔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사업을 확장하는 데 필요하다면 이념과 노선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중국에 진출하는 과정에서도 때로는 비판하고 때로는 협조하는 양면 작전을 구사했다.
그의 수완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있다. 2003년 그의 왕국은 위기에 빠졌다. 폭스뉴스의 시청률이 급팽창하자 의회는 35% 시청률 상한을 설정할 움직임을 보였다. 전방위 로비가 시작되었다. 백악관도 그의 편을 들었다. 그해 말 의회는 시청률 제한 상한을 39%로 높였다. 의회, 행정부, 재계가 모두 그의 수완에 굴복한 결과였다. 35%를 고집하던 공화당의 트렌트 로트 상원의원도 결국 후퇴했다. 알고 보니 로트는 머독과 사업상 유대를 갖고 있었다. 로트가 반대를 하니까 부랴부랴 지분을 제공했는지, 처음부터 그런 관계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는 정계·업계·언론계를 망라한다. 현직 고위 관리를 구워삶는 것은 물론이고 퇴직 관리들의 취업까지 알선한다. 우호 세력은 모든 것을 동원해서 밀어주고 장애물은 가차 없이 제거한다. 최근에는 공화·민주 양당 지도자들과 유대를 강화하는가 싶더니 민주당의 대선 승리가 유력해지자 돌연 힐러리측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민심과 정치의 기류를 포착하는 천재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WSJ의 모기업 다우존스 인수 시도에는 비판도 따른다. 타블로이드 신문 뉴욕 포스트를 가지고도 그처럼 영향력을 행사한 그가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월스트리트 저널까지 손에 넣을 경우 그의 힘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다우존스의 일부 주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하다. 다우존스의 소유자 제임스 오타웨이는 WSJ의 편집권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인수 제의에 응할 태세이다. 머독은 1981년 영국의 런던 타임스를 인수할 때도 편집권 독립을 약속했다. 전직 이사들은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경우에도 같은 일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호주와 영국에서 언론 사업을 시작한 그는 미국으로 무대를 옮긴 지 12년 만에 경쟁자들을 제압했다. 1987년 그는 7개의 TV를 인수하려다 외국인 지분 제한에 걸렸다. 그래서 당장 미국시민권을 획득했다. 케네디 상원의원이 제동을 걸었다. 할 수 없이 아끼던 뉴욕 포스트를 매각했다. 5년 후 뉴욕 포스트를 재매입하기는 했으나 머독이 미국에서 맛본 거의 유일한 패배였다. 이 치욕은 그러나 오히려 그의 욕망을 자극해 언론 왕국 건설을 앞당겼다.

 
중국 언론 시장에서도 선점해 승승장구


 
그는 정치 기상 변화에 재빨리 적응한다. 영국에서 반노동당 노선을 견지하던 그는 1997년 블레어 총리 시대가 시야에 들어오자 어느새 다우닝가 10번지의 진객으로 변신했다. 노동당 일각에서 언론사 지분 제한 움직임을 보였을 때 블레어 총리가 만류한 사실은 머독의 괴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신출귀몰한 사업 수완은 2006년 미국에서 또 위력을 나타냈다. 그가 그해에 낸 정치 헌금 4백70만 달러 중 공화당이 가져간 몫은 소액에 불과했다.
머독 뉴스그룹의 중국 진출에도 수많은 신화가 만들어졌다. 많은 기업이 중국 진출을 시도했으나 대부분 중도 포기했다. 머독은 달랐다. 그는 먼저 공산당 간부들과 친교를 텄다. 간부는 물론 그들의 아들과도 같이 놀아주는 파격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 결과 폭스뉴스는 중국 국영 방송들의 웹사이트 구축을 도와주고 중국 교두보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세 번째 아내 웬디는 중국 태생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그는 중국 진출을 위해 아내도 중국 여인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웬디는 머독을 만나기 전 홍콩 스타TV에서 일했다. 처음 중국 시장 진출에 제동이 걸리자 머독은 웬디를 십분 활용했다. 그는 언론을 탄압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공산당의 정책을 대놓고 지지하는가 하면 후진타오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주저없이 비판했다.
중국의 권위주의 정치를 비판해온 뉴욕 타임스가 발끈했다. 뉴욕 타임스와 그 자매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2회의 시리즈 기사를 통해 머독의 중국 진출 방식을 공격했다. 머독측에서 발표한 성명이 가관이다. “타임스가 자사 이익을 위해 선의의 경쟁자를 모함하는 행위는 오만이다.” 미국의 두 거대 언론이 중국을 놓고 육탄전을 벌이는 모습을 중국 지도자들은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다. 머독은 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포함해 핵심 정치국원들과 오찬을 나눌 정도로 가까웠다. 그는 중국 지도층이 가장 좋아하는 서방 언론 사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머독의 뉴스그룹은 중국 시청자들에게 가장 많은 뉴스를 쏘고 있다.
머독은 중국 시장에 15년 동안이나 공을 들였다. 그가 노리는 것은 연 5백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 광고 시장이다. 월트디즈니·타임워너·영화 제작사들 모두가 눈독을 들이고 있으나 현재까지는 머독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중국 진출이 순풍에 돛을 단 과정만은 아니었다. 1993년 홍콩 스타TV를 10억 달러에 인수한 후 런던에서 한 연설이 중국 지도자들을 격분시켰다. 현대의 통신 수단 앞에 전체주의도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는 요지였다. 당시 리펑 총리는 스타TV의 중국 송출을 4년간 금지했다. 머독은 덩샤오핑을 접촉했다. 그때 덩샤오핑은 일선에서 후퇴했으나 여전히 배후에서 중국을 좌우하고 있었다. 머독은 자기 소유 출판사로 하여금 덩샤오핑 전기를 출판하게 했다. 덩샤오핑의 딸이 저술한 이 책의 판촉을 위해 뉴욕에서 출판 기념회도 주선했다. 책은 많이 팔리지 않았다. 덩샤오핑에 관한 찬양이 지나쳤기 때문이다.
머독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장애자인 덩샤오핑의 아들과 접촉했다. 그가 만든 장애인 곡예단에 특별기를 제공해 해외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스타TV는 결국 BBC를 제치고 중국 송출에 성공했다. 머독은 톈안먼 사건 때 탱크 앞을 가로막은 청년의 모습을 방영한 BBC의 처사를 멍청한 짓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중국인들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인민해방군 출신 전 간부와 합작 투자로 패닉스 방송을 개국했다. 주룽지 전 총리는 한때 머독이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중국인이 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로 머독에 대한 호감을 표시했다.
머독은 베이징에 집을 짓고 있다. 거의 완공 단계인 이 호화 주택 바로 옆에 은퇴한 주룽지 총리가 살고 있다. 그의 발자취를 보면 언론을 위해 사업을 하는지, 사업을 위해 언론을 이용하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에게 집중되는 관심은 당년 76세의 이 노인이 언제 은퇴 준비를 하느냐가 아니라 그 욕망의 끝이 어딘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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