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먹을거리, 누가 책임지나
  • 김창헌 (고려대 정보통신대학장) ()
  • 승인 2007.05.0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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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필자의 딸이 100 대 1의 경쟁을 뚫고 어느 다국적기업의 IT 연구소에 입사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딸은 들어가자마자 한국 연구소의 구조 조정이 시작되었다는 불길한 소식을 가져왔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던 연구소들을 정리해 중국과 인도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한다는 것이다. 한국 연구원 한 명의 인건비이면 중국에서는 4명, 인도에서는 6명을 채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 연구원들의 학문적 수준이나 생산성이 중국이나 인도보다 특별히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굳이 한국에 연구소를 두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국적기업의 구조 조정이 우리 자녀들의 실업 문제로 직결되는 글로벌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국경이 사라진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 분명하다. 기업들은 수년째 미래의 신수종(新樹種) 산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반도체·전자·자동차·조선·철강 등 5대 품목이 10여 년째 한국을 먹여 살리고 있다.
대한민국이 놀라운 경제 성장과 더불어 세계적인 IT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데 기여한 일등공신은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한 인적 자원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미래의 먹을거리를 확보하고  IT를 비롯한 제반 산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어떤 인재를 육성해야 할까? 흔히 지식 정보화 시대에는 글로벌화된 창의력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한다. 필자는 한마디로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인재의 육성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대학마다 글로벌 인재 전형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앞 다투어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영어를 잘하고 주어진 문제를 빨리 잘 푸는 영재를 찾아낼 뿐, 사회가 요구하는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를 발굴하거나 키워내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면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는 어떠한 사람인가? 고등학교 시절 미적분 때문에 수학 시간에 골치를 앓은 아픈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지금 미적분 방정식이 주어지면 주어진 시간 안에 정확히 푸는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인재는 주어진 방정식을 재빨리 풀기보다는 문제로부터 방정식을 도출해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같이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인재를 육성하려면 단순히 전문 지식의 습득만이 아닌 인문학과 교양 교육, 법학과 경영학 등 사회과학을 포함하는 균형 있는 종합적 지식을 수학하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육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 걸림돌은 고교 시절부터의 문과·이과 구분 고착화다. 경직된 문과·이과 구분은 대학 강의실에도 거대한 벽을 쌓아 두 진영 간 소통과 교류를 단절시킨 채 인문학 아니면 자연과학, 한쪽만 아는 인재를 양산하고 있다.


대학의 교과 과정 개편이 주목되는 이유


인터넷 시대에 세계 학문의 지형도는 학제 간 연구와 융·복합을 거듭하며 광속도로 바뀌고 있지만 우리나라 대학들은 여전히 문과와 이과라는 편협한 이분법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대학입시 수험생 숫자는 문과 약 45만명, 이과 12만명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 주어지는 일자리는 4 대 1의 비율이 아니라 1 대 1이다. 이같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일부 대학에서는 내년부터 입시 전형 방식을 개편해 문과 학생에게도 교차 지원을 허용할 방침이다. 또한 단순한 IT 엔지니어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정보통신 관련 법과 제도, 특허, IT 서비스 매니지먼트, 통계학 등 명실상부한 글로벌 IT 리더를 위한 기본 소양을 수학하는 방향으로 교과 과정 개편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실험이 성공을 거두어 수리적 논리와 종합적인 판단력을 두루 갖춘 인재들이 대한민국 미래의 먹을거리를 책임질 날이 앞당겨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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