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죽이고 이성을 살리다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7.04.3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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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차분하게 조승희 사건 ‘치유’ 시작…정신 질환 앓는 한인 청소년 많아

 
버지니아테크(버지니아 공대)의 경악과 아픔과 슬픔이 32번의 종소리와 함께 치유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4월23일 버지니아테크는 ‘묵념의 시간’ 행사를 마치면서 대학의 대다수 수업과 행정이 정상을 회복하고 학생들도 강의실로 되돌아갔다. 월요일 오전 9시45분 버지니아테크 교정에서 열린 묵념의 시간 행사는 11분에 걸친 타종으로 이어지면서 32개의 흰색 풍선을 하나씩 차례차례 하늘로 올리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희생자를 추모하고 그들의 영혼들과 작별하는 행사였다. 마지막에는 이 대학을 상징하는 오렌지색과 적갈색 풍선이 화창한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아픔과 슬픔을 띄워 보내고 어떠한 비극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버지니아테크의 결의적 표현이었다.
 
버지니아테크 사건의 마무리는 매우 미국식이다. 이번 비극을 이성적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흥분했던 언론도 여론의 눈총에 자제력을 되찾았다. 당국의 사건 수사는 계속되고 버지니아테크의 학내 안전 조처에 대한 점검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학계는 사건의 핵심인 총기 소지 문제와 정신 질환자에 대한 보호 및 구제 등 사회 안전망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마무리는 사건의 종식이 아니라 치유의 시작이다.
묵념의 시간 행사를 주관한 버지니아테크는 언론에 매우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이번 사건 보도에서 여론의 비난을 받았던 TV 카메라는 행사장 접근이 전면 금지되고 행사에서 배척되었다. NBC 방송 기자는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고 행사장 밖에서 멀리 대학 건물을 배경으로 “대학 당국에 의해 카메라 접근이 거부되었다”라고 보도했을 뿐이다.
버지니아테크 당국의 냉담에 CNN 방송은 기지를 발휘했다. CNN은 방송용 카메라를 현장에 보내지 못하게 되자 해상도가 떨어지는 휴대용 디지털 캠코더를 들고 현장에 잠입해 행사 내용을 브로드밴드 송출 방식으로 전파를 받아 방송했다.
사건 발생 사흘 뒤 NBC가 보도한 조승희의 사진과 매니페스토는 순식간에 전세계 신문 방송의 톱 뉴스를 차지했다. 희생자 처지에서 볼 때 아픈 상처를 반복해서 매일 건드리는 잔인한 행위였다. 조승희의 쌍권총 사진은 어린아이들이 서부 영화의 한 장면으로 착각할 만큼 사실을 왜곡하기에 충분했다. 여론은 이같은 방송사들의 보도 태도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방송사들은 잘못을 시인하고 즉각 조승희 사진 보도를 자제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총기 사건인 이번 버지니아테크 참극에서 가장 눈에 띈 특색은 방송사들의 이같은 흥분과 즉각적인 자기 절제였다. 사건의 후유증 치유 과정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였다. 한국 언론이 흥분은 잘하지만 후퇴하는 시기를 잘 모르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여론의 차분한 반응 역시 눈길을 끌었다. 이같은 반응을 이끌어낸 주역은 미국 주요 신문사들의 사설과 논평이었다. 뉴욕 타임스·워싱턴 포스트·로스앤젤레스 타임스·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시카고 트리뷴·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등 미국 내 유력 언론들은 버지니아테크 사건의 인종 문제화를 처음부터 배격했다. 이들 신문은 사건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감정을 내세우지 않으며 냉정하게 보도하고 비평했다. 조승희 사건은 인종이나 계층이나 국가 간의 문제가 아닌 조승희 개인의 문제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미국 사회 병리의 한 단면으로 정의했다. 치유를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이 앞서야 한다는 지혜였다. 워싱턴의 정치인들도 사건 내용을 냉정하게 직시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를 정치 문제화하지 않았다. 미국 국민들이 한국 대통령의 유감 표명을 보면서 담담한 반응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용의자 조승희가 한국 국적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재미 한인들이 겪었던 초조감과 불안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한국과 재미 한인들은 사건 발생 이후 어떤 일이 자신들에게 닥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사건의 끔찍함과 희생자 수가 많음에 지레 겁먹은 한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같은 불안감은 절망감과 절박감까지 동반했다. 길거리에서 미국인을 만나면 괜히 위축되었다. 괜히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기분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한민족의 민족주의적 감성이 이러한 반응을 만들어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인들, 조승희씨 불쌍하게 여겨


 
한국 정부도 미국 정부의 생각이나 미국민의 여론을 앞질러나가 사과만 생각했다. 정부 차원의 사과 사절단 파견을 미국 국무부에 타진할 정도였다. 미국 정부는 한국의 사과 사절단을 거절했다. 이 에피소드는 한국과 한국민 그리고 재미 한인들이 평소 갖고 있던 미국과 미 국민에 대한 피해 의식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이다.
미국 정부의 사과 사절단 영접 거절은 영주권을 소지한 외국인에 대한 사법권의 행사 범위에 분명하게 선을 그은 중요한 전례를 남겼다. 이번 사례는 앞으로 재미 한인과 한인 사회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영주권자의 권리와 책임 한계와 한도에 대한 새로운 해석 및 적용을 위한 담론이 필요할 정도이다.
미국 정부의 자세와 미국 언론 및 사회가 이번 사건을 보는 시각은 매우 비정치적이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한국 정부가 망신을 당한 이유다. 미국은 이번 버지니아테크 사건을 처음부터 철저하게 비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외교적·인종적·계층적 이슈를 만드는 것을 금기시했다. 미국은 안절부절못하는 한인들에게 ‘조승희 개인의 사건’임을 거듭 강조했다. 미국민은 오히려 조승희를 불쌍하게 보았다. 그가 안고 있던 심리적·정신적 장애에 측은해했다. 희생자 가족들도 슬퍼하기는 했지만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조승희 사건은 재미 한인 사회와 미국 이주를 고려하는 한국민들에게 섬뜩한 경종이었다. 재미 한인 청소년들 가운데 조승희 같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숫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 정신 질환 외에도 마약이나 알코올에 빠져 심신의 낭패를 겪고 있는 한인 청소년들이 많다. 임상심리학자 장수경 박사에 따르면, 인구 대비 정신 질환자 비율은 미국인 전체 평균이나 한인 평균이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한인 청소년들의 학교 내 학업 수준이 미국 청소년들과 비교할 때 월등한 것을 감안한다면 두뇌가 명석한 정신 질환 한인 청소년을 금방 연상할 수 있다. 바로 조승희 같은 경우이다.
조승희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갔다. 그러나 그처럼 끔찍한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지라도 조승희처럼 내부의 갈등과 질곡, 고통을 안고 있는 한인 청소년들은 많다. 이들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자녀를 동반해 미국에 이주한 한인 부모나 조기 교육을 위해 어린 자녀를 미국에 홀로 보내는 한국의 부모가 모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사안이다. ‘조승희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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