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경쟁력은 자유 먹고 자란다
  • 한준상 (연세대 교수·교육학) ()
  • 승인 2007.04.0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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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로 일관한 교육 정책, 실효성 못 거둬…세계 명문대 ‘토양’은 자율권

 
현 교육 정책의 근간인 ‘3불 정책’은 정파성이 두드러지는 교육 정책이다. 3불 정책의 뿌리는 공교육의 붕괴 현상과 그것을 막아보기 위해 추진했던 대학입시 제도 개혁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학 입시 제도는 그동안 14차례나 수정·보완되었다. 그 결과가 그들의 기대와는 어긋났다 해도 현 정부처럼 대학 입시 제도의 개혁 문제와 공교육의 정상화 문제를 계층 편향적인 시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이런 식의 교육 개혁에 대한 한국적 현상을 걱정하며, 3불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역대 정부가 취해온 수많은 대학 입시 개혁 정책이 대학에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부여하기 위한 입시 개혁 정책이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언급했지만, 실제로는 대학 통제였다. 정부가 만든 입시안 중 대학이 각각의 사정에 맞는 입시안을 골라야만 하는 ‘입시안 선택권 보장’이 입시 개혁안이었던 것이다. 정부가 대학에 전면적으로 학생 선발권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로 늘 내세웠던 것은 대학 입시가 한국 교육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요한 사안이라는 점, 그리고 한국 대학이 학생 선발권을 행사하기에는 아직도 운영의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논리였다. 그것을 확인하듯 언론을 통해 대학 운영의 부정 사례 같은 것들이 보도되곤 했다.
역대 정부의 대학 입시 개혁은 ‘교육 정상화’라는 명분 아래 ‘정부의 대학 통제’라는 실리를 철저하게 추구했던 정책들이었던 셈이다. 정부가 대학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서 학생 선발권 보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나름으로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정부 스스로 공교육에서의 실패를 속으로 감추어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정치 권력의 속성 때문이었다. 둘째는 정부가 강력하게 지원해온 공교육의 교육력이 학부모의 교육열과 겨루기 힘겨웠기 때문이다. 공교육의 무력함은 입시 학원 같은 사교육 기관의 증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 권력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처방이 바로 대학의 학생 선발권 보장을 보류하는 일과 사교육 시장을 최대한 교란시키는 일이었다.
정부는 이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속박하는 효과적 정책을 개발했는데 그것이 바로 3불 정책이었다. 한편으로는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권력의 힘으로 장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부모의 교육열을 권력으로 폄하하면서 그것의 사회적 정당성을 얻어내기 위해 계층적 이해관계로 포장해놓은 것이 바로 3불 정책이다. 교육 문제를 계층적 이해관계로서 사회에 부각시킨 것은 역대 정권이 보여준 그 어떤 노력에 비해서도 탁월한 것이었다. 그러나 3불 정책의 정당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은 빈약했다. 
3불 정책의 핵심은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학이 대학의 이해관계를 위해 개발한 학생 선발 도구는 그 어떤 것이라도 허용할 수 없다는 논리가 바로 본고사 불용 정책이라면, 그것을 보강하는 정책이 고교등급제를 불용하는 정책이다. 본고사 불용과 고교등급제 불용이라는 두 가지 정책은 고교 교육의 실패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전 장치였지만, 기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교육 현실은 흐르는 공기와 같아서 어떤 자물쇠로도 그것의 유동적 위력을 봉쇄할 수 없으며, 고교등급제가 겨냥했던 목표는 원래 고교 서열화가 아니라 고교 교육의 특성화나 교육 과정의 다양화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아무리 공권력을 동원해서 고교생들의 수능 점수를 공개하지 않게 한다고 해도 학생들 간의 실력 차이나 학교 간의 점수 차이는 어떻게든 사회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그 일은 어차피 입시 학원이나 학부모들이 해낼 일들이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고교들 간에 학력 차가 없다고 우기는 행위 자체가 실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 때문에 오히려 강력한 재정적·교육적 지원을 받아야 할 취약 계층과 소외 지역의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피해를 입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여입학제는 본고사 허용 문제나 고교등급제와는 속성이 다르지만, 대학에 학생 선발권의 자유를 줌으로써 소외 계층에 이익이 더 많이 돌아가게 만드는 정책이다. 정부의 대학 재정 지원의 대안 정책이 될 수 있다. 이런 정책은 정부가 지금처럼 일부 대학들에게 학점제·학사 학위제를 최대한 활용하게 해 재정적 수익을 높이는 식의 고등교육 재정 정책에 비해서는 효과가 상당히 큰 정책이 될 것이다.
정부는 지금도 대학들에 이런저런 명목으로 매년 수천 억원에 달하는 국민의 혈세를 지원하지만, 그런 류의 대학 재정 지원이 모든 대학생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소수 대학생을 위한 국민의 혈세는 오히려 국민 교육을 완성하는 데 투자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초·중등 교육의 완성이야말로 국민의 교육 경쟁력을 확보하는 토대이기 때문에, 초·중등 교육의 교육 환경 개선과 학력 증진을 위해 투자되는 편이 교육 재정적으로도 이익이 크다. 대학 재정은 대학이 알아서 확보해야 할 대학 자체의 독립적 일이거나, 아니면 고등교육기금 같은 것을 제도화시켜 상부상조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아예 지자체들이 지역 인재 개발을 위해서라도 해당 지자체에 토대를 둔 대학들에 적극적으로 지원되어야 할 일일 수도 있다.
교육 선진국의 일반적인 추세이지만, 대학은 우리 국민들에게도 필수가 아니라 선택 사항이 될 것이다. 한국의 23~30세 청년층의 대학 진학률은 세계적으로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만큼 대학의 실용성이 큰 것은 아니다. 대학 교육의 실용성은 점점 쇠락하는데 대학의 수만 증가하는 것은 학력의 인플레이션을 의미한다. 대학 재정의 투명성을 위해서라도 대학들의 구조 조정 역시 불가피하다. 그것이 싫다면 대학들은 나름의 특성화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인력 개발을 위한 기능성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교육 연구자들도 “경쟁력 제고와 무관” 공감
 

현 정부가 3불 정책을 고수하는 근거는 그리 논리적이지 않다. 본고사를 치르면 국·영·수 위주의 시험으로 고교 교육이 파행하게 되고, 그 때문에 사교육이 한층 더 팽창된다는 점을 내세운다.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것도 고교 서열화를 막고, 고교들 간의 진학 경쟁을 완화시키며, 학생 개개인의 능력 선발 원칙을 지키기 위해 취해진 합리적 방법이라는 것이다. 기여입학제는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불평등 요소라고 한다. 이런 주장들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3불 정책의 약점들이 하나라도 사실로 나타나야 하는데, 현실은 정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나타나곤 했다. 3불 정책은 2002년부터 제시되었는데, 그 당시 정부가 가장 우려했던 사교육 업체에서 입시 훈련을 받았던 초등학생은 83.1%, 중학생은 75.3%, 고교생은 56.4% 정도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6년 말 비율은 오히려 88.2%, 78.4%, 63.1%로 더 증가했다. 국민들로서는 입시에 대한 대비가 만만치 않았다는 증거이며 학교 교육이 더욱더 불신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부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고교 교육의 정상화, 그 중에서도 학생 생활기록부에 대한 국민적 공신력 역시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상적 삶에서는 하찮은 1, 2점의 점수 차이가 대학 입시에서는 학생들의 운명을 좌우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고교 입시 훈련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학부모들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라 현실이다. 정부가 하라는 대로 순진하게 믿었다가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입시 훈련 업체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수주하는 연구 프로젝트에 친숙한 교육 연구자들이나 교육 정책자들 역시 지금과 같은 3불 중심의 입시 정책은 한국 교육의 경쟁력과 무관하다는 데 공감한다. 다만 입 밖으로 그것을 내놓고 있지 못할 뿐이다. 그런 기운은 3불 정책 지지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서 노출되고 있는 그들의 자신감 결여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정부가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늘 내세우는 전제가 있는데, 그것은 공교육은 피해자이고 사교육은 가해자라는 생각으로 집약된다. 교육 정책자가 이런 논리를 3불 정책에 반영했고, 학교장들은 그런 논리로 학부모의 교육열을 바로잡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모두가 허사였다. 공교육을 피해자로 학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흔히 사교육을 입시 훈련 업체와 동일한 것으로 혼동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입시 훈련 업체들이 사교육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교육의 대명사가 아니다. 교육부가 지금과 같은 입시 정책을 만들어내는 한 입시 훈련 업체들에게는 더 이익만 될 뿐이다.
교육 선진국들은 초·중등 교육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타산지석이다. 일본의 경우, 도요타자동차는 영국 사학 명문 ‘이튼 스쿨’을 모델로 한 일본식 엘리트 양성 교육 기관을 설립했다. 일본의 초·중등 교육에 경쟁력을 심어주기 위해서이다. 일본 문부과학부는 올 들어 주5일제 수업 개편 검토, 토요 수업 재개, 국어·영어·수학 등 기본 과목 수업 시간 연장, 독해력 향상 프로그램 도입 등 ‘학력·경쟁력 중시 교육’ 대책을  발표했다. 일본 국민은 이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 바 있다.
이제부터는 일본에서도 ‘여유 교육’이 사라지고, 일제 고사가 실시되며, 학생들 간의 경쟁심 고취를 위해 시험 결과도 공개된다. 이런 대책들은 지난 수십년간 일본 교육을 지배해온 ‘하향식 평준화’에 따른 교육의 질 저하가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국민적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사 자질을 높이기 위한 개혁안도 실행 중이다. 전국 국·공·사립 유치원에서 고교 교사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교사 면허 갱신제’의 도입을 추진 중인데, 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교 교육의 책무성을 신장하는 데 적절한 교육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공교육·사교육  차별 없이 끌어안아야
세계 100위권 대학 중에는 미국 대학이 33곳이나 포함되어 있다. 그들 중에서도 순위가 늘 앞서 있는 하버드·스탠퍼드·시카고 대학 등은 대학 운영의 기법이 독자적이다. 시카고 대학의 경우 노벨상 수상자를 77명이나 배출했지만, 대학의 재정적 토대는 록펠러 집안의 경제적 지원에서 비롯되었다. 실리콘 밸리의 주역인 스탠퍼드 대학 역시 기업가의 헌금으로 세워진 사립 대학이지만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자랑하는 대학이다. 그들은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미국 대학들은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독일 대학의 학문적 그늘 속에 있었다. 이제는 세계 학문의 중심지였던 독일 대학들이 미국 대학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힘이 바로 대학의 자율권이다. 스탠퍼드 대학은 학생 선발권의 정당성을, 하버드 대학은 기여입학제의 정당성을, 시카고 대학은 고교 교육의 평가권을 제대로 행사했기에 다른 대학들보다 앞서게 된 것이다. 이 대학들은 오히려 대학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대학 나름의 이기주의가 반듯하게 서 있어야만 대학의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미국 정부는 대학에 불필요한 간섭을 하지 않는다. 미국 대학에는 3불 정책의 논리가 서식할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들은 대학의 교육 이념과 방침대로 자율적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정부의 간섭이나 통제는 원천적으로 부적절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래도 그 대학들은 세계 기술력의 선두에 서 있으며 과학의 엘리트 교육에도 성공하고 있다. 미국 대학들은 세계 문화 예술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학부모들에게 학교 선택권, 교사 선택권을 주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이를 위한 교육 정책의 본보기이다. 꼴찌로 졸업하게 하는 것은 끝내 학교의 책임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교사들에게 인지시키는 대목들이다.
한국 교육의 경쟁력, 말하자면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적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공교육·사교육을 따로 가리면서 사교육이 우월하다느니, 공교육이 유일해야 한다느니 하는 식의 편견은 없어져야 한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그것이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적 자원 개발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국가에는 소중한 교육 자원이다.
인적 자원 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발하기 위해서 정부는 대학 입시에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개입보다는 오히려 국가 인적 자원 개발을 위해 공교육과 사교육 모두를 함께 교육 자본으로 끌어당기며, 그것을 최대한 인재 개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정책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대학과 중등교육의 연계를 통한 인적 자원 개발 교육 정책 같은 것이 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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