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야 할 ‘비극의 도미노’
  • 김현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2.2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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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자살 ‘베르테르 효과’ 심각…사회적 예방 대책 시급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에 연예계가 충격에 빠졌다. 최근 자살한 가수 유니와 탤런트 정다빈은 심한 우울증과 압박감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몇 해 전에 서울 압구정동 한 식당에서 정다빈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정다빈은 스무 살 초반의 앳된 얼굴로 연예계 유망주였다. 영화 <단적비연수>에서 어린 최진실 역할로 연예계에 데뷔해서 시트콤 <논스톱>에서 신인으로 활동하던 정다빈은 매우 침착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간장게장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며 간장게장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던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정다빈이 자살을 택한 날은 가수 유니가 죽은 지 20여 일이 지나지 않아서다. 정다빈은 유니의 죽음 직후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유니에 관한 애도의 글을 남겼다.
‘멍…’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정다빈은 ‘한 번도 마주쳐본 적도 없지만… 너무도 갑작스러운, 안타까운… 마음이 아프다…. 하늘나라에서 부디 편안하시길…. 머리가 멍…하다…’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표현했다.
정다빈의 이 글은 그녀가 유니의 죽음을 접한 후 모종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가수 유니, 그리고 탤런트 정다빈의 공통점은 성형 논란으로 인한 악플 스트레스와 유명 스타가 겪어야 하는 일명 ‘스포트라이트 신드롬’(화려한 조명을 받고 인기를 얻어야 안심하는)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정다빈은 유니의 자살에 대해 심정적으로 공감을 많이 했음이 틀림없다. 결국 비약일지는 모르지만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자살로 인한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유명인 자살 뒤 일어나는 연쇄 모방 자살)와 연관되지는 않았나 싶다.
베르테르 효과는 1974년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가 처음 언급한 것으로 괴테의 소설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유럽에서 모방 자살이 유행처럼 번진 현상을 지칭한다.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시대와의 단절로 고민하는 베르테르의 모습에 공감한 젊은 세대의 자살이 급증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 이같은 사례는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
베르테르 효과가 극명하게 증명된 사건은 ‘글루미 선데이 신드롬’이었다. 1935년 레조 세레스가 작곡한 <글루미 선데이>라는 노래를 발표한 직후부터 헝가리인 2백 명이 연달아 자살을 한 데 따른 것이다. 작곡가 자신도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다. 이 걷잡을 수 없는 자살 행렬은 헝가리는 물론 전세계를 덮쳤다.
1936년 4월30일, 파리에서는 소설 같은 자살 소동이 벌어졌다. 세계적인 지휘자 레이 벤추라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콘서트가 열렸다.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은 선율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연주할 곡은 문제의 <글루미 선데이>였다. 영혼을 어루만지듯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우울한 단조의 선율이 흐르다가 갑자기 뒤에서 드럼을 치던 드러머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공연장을 흔들었다. 청중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금관악기 연주자가 드러머의 뒤를 따르듯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았던 것이다. 연주가 끝난 후 남아 있는 단원은 제1 바이올린 연주자 한 사
 
람뿐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잠시 후 천장에서 내려진 줄에 목을 맸다.
1977년 미국에서 록스타 앨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는 동조 자살이 성행했고, 1986년 일본에서 10대들의 우상인 오카다 유키코가 실연을 비관해 투신 자살하자 2주일 동안 청소년이 31명이나 동조 자살했다.
“이은주씨 사망 후 자살자 급증”
베르테르 효과는 영화배우 이은주씨의 자살 사건 당시에도 증명되었다. 이씨의 자살 이후 서울중앙지검측은 “중앙지검 관내에서 발생한 변사 사건을 분석한 결과 이은주씨가 숨진 이후 하루 평균 자살자가 2.13명으로 그전 0.84명에 비해 2.5배 늘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자살 방식 또한 이씨와 같은 방법을 택한 사례가 이씨 자살 이전에는 전체 자살 사건의 53.3%였지만, 사건 이후 79.6%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이씨 사건 이후 전체 자살자 가운데 청장년층의 점유 비율이 증가해 자살자 평균 연령이 54.8세에서 44.9세로 크게 내려갔다. 20~30대 점유 비율이 이씨 사건 전 28.8%에서 사건 이후 49%로 크게 올라가 ‘베르테르 효과’를 단적으로 보였다.
정다빈 자살을 계기로 국내 한 취업 사이트는 20~30대 성인 남녀 1천7백84명을 대상으로 연예인 등 유명인의 자살이 일반인의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설문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여기서 응답자의 96.4%가 연예인의 자살이 일반인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구체적 내용으로는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괜히 우울해진다’가 46.5%로 가장 많았고, ‘무력감이 증가한다’(12.9%), ‘자신에게 닥친 일들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12.5%)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정신적 충격으로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응답도 9%였다.
위의 자료에 비추어볼 때 연예인의 잇단 자살과 수난은 이른바 ‘베르테르 증후군’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연예인의 자살이 단순한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유다. ‘모방 자살’을 방지할 사회적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자살로 사망할 확률이 고혈압으로 죽을 확률보다 높고 간암으로 죽을 확률보다는 약간 낮은 정도이다. 자살로 인한 손실 비용도 엄청나다. 한 연구 보고서는 자살로 인한 국내의 연간 사회경제적 손실액이 3조8백56억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자살자의 수입 상실 등 간접 비용만 3조7백2억원이다. 2005년의 자살자는 1만2천47명으로 전년보다 5백여 명 늘어났으므로 손실 비용은 2004년과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 따라서 2005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30명가량인 셈이다.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2년 만에 또 6명 정도 늘었다. 사회적 병리가 깊어졌음을 보여준다.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최고이며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교통
 
사고로 숨진 사람보다 두 배 가까이(2005년 기준) 많다.
그렇다면 자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신과 의사들은 사회와 언론이 자살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살하려는 이들은 자살 실행 전에 주변 사람에게 자살 의사를 밝히거나 동료 등을 찾아 푸념을 한다. 그러므로 평소 삶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증을 많이 겪는 직업이나 집단 등의 자살 예방 대책이 시급하다. 예컨대 심리적 불안감이 극심한 연예인을 위한 심리 상담 프로그램 운영이 그렇다. 또한 연예인협회는 회원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이런 프로그램을 자체 운용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연예인 자살의 베르테르 효과를 막을 수 있다.
자살자와 유족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 정신과 병원을 찾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아서는 안 되고 정신질환자도 치료하면 정상적 삶을 살 수 있다는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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