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열기 뺨치는 ‘응원 월드컵’
  • 프랑크푸르트 · 주진우 기자 (acsisapress.comkr)
  • 승인 2006.06.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일월드컵에서도 ‘열두 번째 선수’들의 응원 경쟁은 치열했다. 경기장을 후끈 달군 각 나라 응원단의 ‘성적’을 알아본다.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는 축구 팬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소리 지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악마’들과 결전을 벌이는 자신들의 천사를 좀더 가까이에서 격려하기 위해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배가 나왔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그라운드에서 뛰는 열한 명에 들지 않았노라고 말한다. 이 열두 번째 선수는 공을 상대편 골문으로 밀어넣는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을 때 관중석을 떠나지 않는다. 승리를 경축한다. 자기네가 패배했을 때는 심판을 매수된 야비한 놈이라 매도하고, 상대편이 교묘하게 우리를 속였다고 윽박지른다. 승리를 노래하는 것과 심판을 욕하는 것은 그들이 가진 특권이다.

축구 팬들에게 월드컵은 성스러운 제전이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유일신을 위한 의식에 팬들은 나라별로 최고의 예를 갖춘다. 그라운드의 선수들보다 더 맹렬하고 뜨겁게 월드컵을 치르는 열두 번째 선수들의 ‘응원 월드컵’을 살펴보았다.

 
한국-잘 훈련된 전술과 체력

한국 경기를 보고자 하는 축구 팬은 많지 않다. 경기장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였다. 경기를 보러 온 유럽인들 중 상당수가 “월드컵을 보고 싶은데 다른 경기 표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에 매료된다.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도 볼만 하지만, 한국 응원단의 열정적인 모습에 반한다. 프랑스전을 관전한 존 프랑수아씨(33·프랑스)는 경기 후반부터 붉은악마를 따라서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그는 “이렇게 굉장한 응원은 처음이다. 경기장 입장료의 상당 부분은 한국 응원단이 공연료로 가져가야 옳다”라고 말했다.

한국 응원단의 규모는 작다. 하지만 그들은 강하다. 전술적으로 잘 훈련되어 있다. 개개인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전술과 체력으로 메우는 한국 축구 대표팀의 스타일과 닮았다. 독일 유력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한국 팬들이 수가 많은 잉글랜드 팬보다 더 큰 소리로 지속적으로 응원가를 불렀다고 전했다. 프랑스전을 중계한 독일 방송 RTL의 해설자는 “경기 시작하기 한 시간 전부터 게임 끝날 때까지 노래를 한 차례도 쉬지 않았다.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노래, 함성, 구호, 의상 면에서 냉정하게 평가하더라도 한국 응원단은 결승전에 오를 만하다. 특히 이번 월드컵에서는 시각적 면에서 2002년보다 업그레이드됐다. 프랑스전에서 옆에 앉은 한 호주 기자는 “한국에 붉은옷을 입는 카니발이 있는가? 카니발 때 입은 의상을 가져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붉은 한복, 태극기 원피스, 날개옷···.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얼굴과 몸에 태극 문양이나 응원 구호를 적어놓았다. 중국 CCTV의 축구 해설위원 황젠상씨는 “해설을 하면서 가장 감동적인 일이 있었다면 소개 해달라”는 질문에 “한국 응원단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국 축구의 전투력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응원단의 고질적 병폐는 자꾸 나뉜다는 것이다. 토고와의 예선 첫 경기가 열린 프랑크푸르트에서 교민들은 반으로 갈려 응원을 했다. 한 팀은 프랑크푸르트 메세라는 전시장 한 켠에서 응원을 벌였다. 재독 한인회가 SK텔레콤의 대규모 후원을 받아 응원을 준비했지만 사람은 얼마 모이지 않았다.

다른 한 팀은 프랑크푸르트 마인 강변의 월드컵 지정 응원 장소에서 응원을 벌였다. 많은 교민과 한국 관광객 그리고 외국인들이 어우러져 응원전을 펼쳤다. 이 응원단은 재독 한인회와는 별개의 단체가 만든 ‘붉은 호랑이’다. 외국인까지 붉은옷을 입고 한국팀을 응원했는데 붉은 호랑이들은 흰색 티셔츠를 입었다. 서울에서 온 붉은 호랑이 집행부의 한 임원은 “악마라는 단어만 안 쓰면 붉은옷을 입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2002년에도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의 목사들이 주도해 ‘하얀 천사’라는 붉은악마에 대응하는 응원단을 만들었다. 반응은 싸늘했다.

 
잉글랜드-1천 곡의 응원가

잉글랜드의 게임이 있는 날에는 베를린도, 뮌헨도, 프랑크푸르트도 영국 땅이 된다. 나팔을 불고, 노래를 부르며, 축구를 하는 영국 청년들이 점령한다. 밤늦게까지 그들은 점유권을 내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들의 본부는 언제나 홍등가 앞에 있는 브리티시(아이리시) 펍이다.

경기장은 말할 것도 없다. 잉글랜드 팬들은 경기장이 떠나가도록 우렁차게 노래를 불러댄다. 또 사정없이 야유를 한다. 잉글랜드와 첫 경기를 가진 파라과이는 시작 5분 만에 자살골을 내주고 1-0으로 졌다. 베컴의 프리킥보다는 응원단의 ‘우~’하는 함성에 파라과이가 당했다. 

 
잉글랜드 축구의 특징처럼 응원단은 잔 기술을 부리지 않고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정공법을 쓴다. 특별한 응원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장식도 없다. ‘컴온 잉글랜드’ 외에는 구호도 거의 없다. 그저 국기를 흔들고 끊임없이 노래를 부를 뿐이다. 축구 역사만큼이나 잉글랜드 응원가의 레퍼토리는 다양하다.

가장 사랑받는 노래는 잉글랜드 축구 선수들을 기린 ‘월드 인 모션’. 이 곡은 지금까지 발표된 1천여 영국의 축구 응원곡 가운데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유로96’ 때 발표되어 영국 음반 차트 1위까지 오른 ‘스리 라이언스 송’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경기 중간에 비틀즈와 엘튼 존의 노래가 나오기도 한다. 또 경기의 절정에는 트럼펫 연주를 따라 국가인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Queen)’를 부른다. 'God save our gracious Queen, Long live our noble Queen, God save the Queen! Send her victorious···' 물론 노랫말은 축구와 별 상관이 없다.

어느 경기에서든 잉글랜드 깃발은 꼭 걸린다. 그것도 한가운데. 영국 축구의 자부심이 걸려 있는 것이다. 잉글랜드 팬들은 모두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온다. 그러나 언제나 잉글랜드 흰색 유니폼과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절반이 나뉜다. 응원의 통일성을 해치는 대목이다. 하지만 강력한 태클 같은 잉글랜드의 응원은 결승전에 오를 만하다. 하지만 술 먹고 난동을 벌이는 팬들이 받은 옐로카드가 명성을 갉아먹는다.

 
독일-선수 이름을 외치다

16강전을 앞둔 독일의 클린스만 감독은 “홈 관중의 응원이 선수들에게 힘을 북돋워줘 승리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선수들도 인터뷰마다 독일 팬들의 성원에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본래 독일은 ‘그라운드 후퍼스(Ground Hoopers)’라는 각종 배지를 다닥다닥 단 청색 재킷을 입은 응원단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독일이 경기를 하는 날이면 독일 팀의 흰색 유니폼과 삼색 국기로 나라가 뒤덮인다. 반드시 필요할 때가 아니면 옷을 사지 않는 독일 사람들도 축구 유니폼은 모두 구입했다. 그러고는 거리에 나와 흑·적·황 3색 국기를 흔들며 ‘도이칠란드’를 연호한다. 독일인이 이처럼 열광적으로 국기를 흔들고 다니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라고 한다. 나치 정권이 애국심을 부추겨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오욕의 역사 때문에 공공연하게 애국심을 찬양하는 일이 금기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함부르크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크리스티안 씨(22)는 열흘 을 투자해 골레오 마스코트 옷을 만들어 입고 경기장에 나왔다. 그는 “월드컵은 세계 각지 손님들을 초대해 벌이는 파티다. 파티를 준비하면서 독일인들이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한층 더 갖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30℃도가 훌쩍 넘는 땡볕 더위에 크리스티안 씨는 연방 맥주를 마시며 땀을 닦았다.

독일 응원단은 2002년 한국의 응원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한국의 거리 응원을 본떠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열두 개 도시에 거리 응원장인 팬 축제(Fan Fest) 장소를 설치했다. 거리 응원장은 히트를 쳤다. 항상 초만원이어서 조직위측에서는 팬 축제 장소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장에서 독일 응원단은 카드섹션, 대형 깃발 등을 응원석에서 펼치는 것까지 붉은악마를 모방했다. 그러나 한국보다 잘하지는 못했다. 창의성이 부족하다.

독일은 홈그라운드다. 응원전에서도 독일은 무난하게 4강권이다. 경기장에서 선수를 소개할 때 독일 팬 전체가 선수 이름을 목이 터져라 외친다. 전율이 흐른다. 붉은악마가 차용했으면 하는 응원 방법이다. 독일 팬들은 손가락을 입에 대고 내는 휘슬 소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크다.  
 
 
브라질-응원가 능가하는 삼바 춤

브라질은 강하다. 4년간 일해 모은 돈으로 월드컵에 오는 순례자가 많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온 세르지오 루이스 씨(58)도 그런 순례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독일월드컵에 옴으로써 월드컵 5회 출장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루이스 씨에게는 월드컵 입장권이 없다. 그는 브라질에서 온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노숙을 하면서 브라질 팀을 따라다니고 있다. 루이스 씨는 “브라질에 너무 많은 스타가 있어서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안 된다. 첫 경기를 브라질에서 보고 아무래도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날아왔다”라고 말했다. 그가 준비한 응원 도구는 하나도 없다. 며칠째 빨지 못한 브라질 노란색 유니폼 하나가 전부다. 브라질 스포츠TV 간판 기자 아벨 씨는 “입장권 없이 독일로 날아온 브라질 사람들은 적게 잡아도 5천 명이다. 축구에 죽고 사는 사람이 브라질에는 셀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브라질 응원단은 조직적 면보다는 선수 개인 기량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브라질 축구 스타일과 비슷하다. 브라질 응원단은 구호는 그저 ‘브라질’‘브라질’을 외치는 것이 전부다. 브라질 응원단은 응원가를 부르기보다 춤을 추는 데 신경을 쓴다. 음악이 나오면 춤추기 바쁘다. 음악이 없으면 노래를 부르며 춤춘다. 삼바 춤을 추는 미녀가 경기장에 분산 배치되지 않는 다면 브라질 응원은 8강권에 든다.

그러나 브라질 응원의 힘은 많은 외국인  팬들로부터 충전된다. 그것은 브라질이 가장 축구다운 축구를 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브라질 경기를 모두가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기 나라의 적수가 아니라면 브라질이 탈락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이런 축구 팬들의 열띤 호응으로 브라질은 4강에 오른다.

 
멕시코-큰 모자 쓰고 ‘오~레’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은 브라질에 결코 밀리지 않는 나라가 바로 멕시코다. 멕시코 게임이 있는 날이면 기차는 멕시코인 차지가 된다. 숫자는 상관없다. 응원을 위해 큼지막한 전통 모자인 솜브레오를 쓰고, ‘오~레오레오레오~레’ 노래를 계속 부른다. 중간 중간 ‘멕시코’를 연호하고 큰 소리로 떠든다.

 
멕시코 과달라하라 시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몬트레 씨(28)는 무작정 휴가를 내고 독일로 왔다. 휴가 기간은 멕시코 게임이 끝나는 결승전까지라고 했다. 사실 그는 멕시코에 돌아가면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몬트레 씨는 “잘려도 신경 안 쓴다. 직장보다는 멕시코가 우승하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그는 포즈를 취하며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러고는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멕시코 팬들은 어떤 경기에 가도 녹색 멕시코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멕시코’를 외친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 지고 있는 팀의 응원단 속에서 ‘멕시코’를 외치기 때문이다. 응원단의 열정은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팀 플레이가 살아나지 않는다. 단합과 조화라는 측면에서 부족해 응원단은 8강에 머물고 만다.

 
체코-붉은옷을 입은 미녀들

6월12일 독일 겔젠키르헨 경기장에서 응원단에 둘러싸인 한 중년 신사가 응원 구호를 함께 외쳤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인을 해주었다. 그는 바로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이었다.

 
체코는 붉은옷을 입고 조직적인 응원을 하는 나라다. 경기 시작 전부터 ‘가자, 체코여!(Cesi dotoho, Cesi dotoho!)’를 연방 외치는데, 구호에는 힘이 팍 실려 있다. 특히 선수들의 이름을 박자에 맞춰 연호하는데 팬들의 에너지를 모아서 선수들에게 전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체코의 얀 콜레르가 부상으로 교체되자 팬들은 기립 박수를 치며 그의 이름을 계속 외쳤다. 얀 콜레르가 실려나가며 그 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체코 응원단에는 유독 미녀가 많다. 응원석에서 만난 클라라 메티코바 씨(22)는 체코 대표팀 5번 라도슬라프 코바치 선수의 여자 친구. 직업은 모델이다. 그녀는 “체코의 모든 여성이 축구 선수와 사귀고 싶어한다. 경기장에 미녀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4강의 전력을 갖고도 아깝게 예선에서 탈락한 체코. 응원단은 8강에 진출하고도 남았다.

 
미국-‘샘스 아미’의 쇼쇼쇼

1무2패로 예선 탈락한 미국. 그러나 미국은 응원전에서만은 16강에 올랐다. 축구 불모지 미국으로서는 놀라운 선전이다. 3-0 일방적으로 패한 체코전에서도 응원에서만은 뒤지지 않았다. 예선전 상대 이탈리아와 가나에는 수와 질적인 면에서 우세한 응원전을 펼쳤다. 미국 응원단의 투톱은 다양한 보디페인팅과 캐릭터 분장. 정치 컨설턴트로 일하는 제이 데이 씨(36)는 부인 르네 씨와 얼굴에 분장을 하고 경기장을 찾았다.

 
데이 씨는 “월드컵 때문에 미국에서 휴가를 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지만 어려서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꼭 와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폴 데이먼 씨는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 경기장을 누볐다. 그는 축구에서도 미국이 캡틴이 되라는 의미에서 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친구 네 명은 엘비스 프레슬리 복장으로 경기장을 찾았다. 역시 쇼에는 미국인이 강하다. 

미국에서 축구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지만, 축구를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다. 특히 부유층 사이에서 축구 마니아층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축구와 여행을 접목시킨 미국 여행사 ‘SOCCERTRAVEL’의 한 관계자는 “미국에서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월드컵은 물론이고 유러피언챔피언십이나 챔피언스리그 같은 미국과 직접 관련이 없는 여행 상품도 불티나게 팔린다”라고 말했다.

미국 팀의 공식 응원단 이름은 ‘Sam’s Army'다. 미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인 샘(Sam)에 군대(Army)를 붙여 만든 애칭이다. 1994년 미국월드컵 이후 조직되었는데 별다른 특징은 없다. ‘너희가 미국을 이길 수 있느냐’와 ‘우리에게 골을 다오’를 부르다가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는 ‘케이 세라세라’를 부르는데 이는 ‘될 대로 되라’는 뜻이다.

 
일본-사무라이 깃발 휘날리며

엔화의 위력 덕분인지 일본은 엄청난 응원단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대부분의 독일 스포츠 용품 상점에는 일본 대표팀 푸른색 상의가 걸려 있다. 독일과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수다. 어떤 경기든 일본 관중은 양적인 면에서 밀리는 법이 없다. 관중석을 장악한 일본 팬들은 사무라이 깃발 ‘SAMURAI 2006'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나 일본 팬들은 사진 찍는 것만큼 응원을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 그저 ‘니뽄'을 외치고 박수 세 번 치는 게 거의 전부다. 1992년 출범한 일본 국가대표 서포터 ’울트라 니뽄‘은 회원제가 아니고, 국가 대항전 때마다 모여서 응원을 하는 형태여서 결속력이 느슨하다. 재일동포 축구 전문기자 신무광씨는 “일본 팬들은 집단적이지 않다. 1998년과 2002년 월드컵 대회에서는 유명한 곡에 노랫말을 붙여 부르곤 했는데 올해는 그런 것도 잘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일본 팬들이 축구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같지도 않다.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문기자 알렉스 씨는 “일본 팬들은 데이비드는 모르고 베컴만 알며, 웨인은 모르고 루니만 안다.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 선수를 연예인처럼 좋아하는것 같다. 일종의 유행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일본은 일본인 말고는 그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다. 축구에서도 일본은 아시아 주변국의 지지는커녕 비난의 대상이다. 한국전에 응원 온 아지즈 모하메드 씨(22·인도네시아)는 “아시아 친구를 응원하러 왔다. 축구의 아시아 대표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한 취재기자는 “일본이 브라질에 대패해서 예선 탈락한 것은 이번 월드컵에서 몇 안 되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라고까지 말했다.   응원 성적도 팀 성적과 같은 1무2패. 예선 탈락이다.

 
아프리카 5개국-‘검은 돌풍’ 잠잠

상대방에 비해 응원단이 턱없이 적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다. 앙골라 르완다에서 온 댄서 콜뎃 씨(여·24)는 “성기가 크다고 섹스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콜뎃 씨와 동료들은 포르투갈에 패한 다음에도 모여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은 축제에 왔으니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수적 열세에 있는 아프리카 응원단들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다. 상대편과 특별한 인연이 없는 관중은 대부분 아프리카 팀을 응원한다. 한국과 토고전에서 후반전 토고를 연호한 팬들은 거의 대부분 유럽 팬들이었다. 토로를 응원한 줄리아 씨(여·28)는 “토고가 사우스코리아(한국)보다 부르기 쉬워 응원한다. 응원단 규모가 적은 것도 한 이유다”라고 말했다.

믿는 구석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주술사들이다. 토고에서 온 음베키 씨는 “이번 월드컵에서 토고가 가장 큰 사고를 칠 것이라고 부족의 주술가가 말했다. 그는 모든 병을 고치며 미래를 예언한다”라고 말했다. 응원은 주술사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응원에서도 ‘검은 돌풍’은 없다. 모두 예선 탈락이다. 그 이유를 최빈국의 돈 사정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