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깊어가는 친노 그룹의 고민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6.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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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정연·국참 등, 진로 놓고 의견 분분

 
지난 6월14일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는 휴대전화가 울렸다. 5·31 지방선거 패인부터 민주개혁세력대연합론에 대한 찬반까지, 민감한 당내 현안을 묻는 설문조사 전화였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당원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당내 대표적인 개혁파이자, 친노(親盧) 그룹인 참여정치실천연대이하 (참정연) 회원들이었다. 설문 중에는 참정연의 진로를 묻는 항목도 있었다.

이렇게 참정연을 비롯한 당 안팎의 친노 그룹들이 자신의 진로를 놓고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그룹별로 설문조사도 하고, 온라인·오프라인 토론회를 병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그룹에서는 해체까지 거론될 만큼 논의가 깊고 넓게 진행되고 있다.

먼저 참정연은 설문조사와 함께 전국 순회  토론회를 잇따라 열고 있다. 참정연에는 이광철·유시민·김태년 의원 등 국회의원만 열두  명에다, 김두관 전 최고위원을 비롯해 김두수·김희숙 중앙위원 등 ‘말발’이 센 당내 오피니언 리더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당내 조직보다 결속력도 강한 편이다.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김두관 후보를 3위로 끌어올린 것만 보아도 결속력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순회 토론회마다 가장 논쟁이 활발한 부분은 참정연의 진로다. 지금 형태 그대로 당내 개혁 모임으로 남을지, 아니면 새로운 조직으로 거듭날지를 두고 회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참정연의 진로는 열린우리당의 뼈대인 기간당원제에 대한 전면 재검토와 연결되어 있다. 울산과 광주 토론회에 참여했던 김형주 의원은 “그동안 지나치게 당내 문제, 특히 기간당원제에 집착해 유연성을 가지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참정연은 기간당원제 지키기에 다 걸다시피 했다. 기간당원제로 당을 탈바꿈시킨 주인공이 바로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인 데다, 기간당원제를 정착시켜야 당내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나아가 정치 문화까지 바꿀 수 있다고 참정연은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유시민 장관·김두관 전 최고위원은 기간당원제가 흔들릴 기미만 보이면, 당이 깨질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같은 원칙론에 힘을 보탰다.

참정연, 기간당원제 전면 재검토

그렇게 원칙적인 목소리를 냈던 참정연 안에서도 이제는 기간당원제를 손볼 때가 되었다는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참정연 권태홍 사무처장은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운영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기간당원제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 의견이 내부에서 나오고 있음을 인정했다. 참정연 소속 김형주 의원은 사견을 전제로 “유럽형 기간당원제를 미국형으로 바꿀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정기적으로 당비를 내는 유럽형 기간당원제를 일반 국민도 참여하는 미국식 대중정당제로 방향을 틀자는 것이다. 문턱을 낮추어 민심을 반영하자는 취지다.

이렇게 당내 문제에 대한 논의를 마치고 나면 참정연은 부동산 문제, 사회 양극화, 정계개편 등 당 밖의 아젠더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6월26일 참정연은 새로운 지도부를 꾸릴 예정이다. 하지만 진로를 두고 내부 논의가 장기화하되면 지도부 구성도 늦춰질 수밖에 없다.

참정연과 함께 1219국민참여연대이하(국참)도 당내 대표적인 친노 그룹이다. 국참에는 이기명·명계남씨 등 원조 노사모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국참은 지난 6월11일 오프라인 토론회를 개최했고, 6월13일부터 16일까지 온라인 토론도 병행했다. 토론의 핵심은 역시 ‘앞으로 갈 길’이다.

 
국참의 가장 큰 고민은 당내에서 정동영계로 비친다는 점이다. 지난 2월 국참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동영 지지를 밝혔다. 당시 국참은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 적임자를 선택했다며 지지 이유를 밝혔다. 내년 대선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당 안에서는 정동영계에 흡수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정동영 지지에 따른 후폭풍은 컸다. ‘친노’가 ‘친정’으로 바뀌었다는 얘기가 돌았다. 국참 심화섭 공동대표는 “2월 전당대회 이후 무슨 발언을 하든지 당내에서 정동영계 발언으로 받아들인다. 5·31 지방선거 이후 분파(정동영계)적 이미지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참, 발전적 해체론까지 나와

정동영 색깔을 없애자는 국참의 고민은 결국 조직의 발전적 해체론으로까지 이어진다. 심화섭 공동대표는 “여러 가지 제안 중에 하나일 뿐이다. 지금의 틀이 적당한지를 두고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참은 조만간 2기 집행부를 뽑아 조직을 변화할 작정이다. 이런 시도를 국참의 변화가 아닌 정동영계의 변화로 읽는다는 지적이 나오기는 한다. 한 당직자는 “국참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라고 말했다. 이 당직자는 정동영 전 의장이 대권 전략 차원에서 노대통령을 비판할 경우, 국참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국참의 성향을 분명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지켜볼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조직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참정연이나 국참과 달리, 이광재 의원이 주도하는 의정연구센터(이하 의정연)는 ‘정중동’이다. 지난 2월 전당대회 때 같은 의정연 소속 김혁규 의원을 지원한 이후 이렇다 할 독자적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동영 전 의장이 이광재 의원을 전략기획위원장에 앉히면서 지도부로 끌어들인 점도 작용하고 있지만, 당내 반노 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한 당직자는 “당청  갈등이 불거진 상황에서 의정연 소속 의원들이 친노 발언을 하면 기름을 붓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의정연 활동이 뜸한 사이, 최근 초선의원 19명은 ‘처음처럼’이라는 탈계파 모임을 만들었다.

당 밖의 대표적 친노 그룹인 노사모의 행보도 관심의 대상이다. 5·31 지방선거 도중 초대 노사모 회장인 김영부씨가 해체를 주장해 게시판에서 격론이 오갔다. 지난 6월10일 노사모는 충북 괴산에서 밤샘 토론을 벌였다. 자원봉사단이나 기념사업회로 전환하자는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해체 제안도 나왔지만, 대체로 유지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노사모 노혜경 대표는 “결론을 내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토론회에 참석한 회원들은 초심을 유지하며 노대통령과 함께 가자는 의견이 많았다”라고 전했다.

5·31 ‘쓰나미’ 이후 변화를 모색하는 친노  그룹이 어떤 대권 전략을 내세울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이다. 평시보다 전시에 강한 것이 친노 그룹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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