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거품 붕괴’ 뚜렷해졌다
  • 김형준(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
  • 승인 2006.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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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교수가 진단한 지방선거 결과/열린우리당, 전통 지지층마저 잃어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유례없는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우리당 지지 계층의 붕괴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형성됐던 핵심 지지 계층을 선거 이후 통치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해체했다. 다시 말해, 선거연합(electoral coalition)과 통치연합(governing coalition) 사이에 엇박자가 난 것이다.

선거에서 중산층, 노동자, 학생, 호남지역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선거 이후에는 대북 특검, 민주당 탈당, 집값 상승, 비정규직 양산, 과도한 세금, 경기 침체, 양극화 심화 등이 겹치면서 오히려 이들 핵심 지지 계층의 이탈을 가속화했다. 한마디로 열린우리당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2004년 12월 열린우리당의 절대 고정층은 14.8%에 불과했고, 2006년 지방선거 직전에는 그 규모가 12.5%로 줄어들었다. 반면 같은 기간에 한나라당의 절대 고정층은 20.6%에서 25.3%로 늘어났다. 과거에는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유입층 10%까지 더하면 한나라당은 지방선거 전에 이미 35%의 확고한 지지층을 형성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15%대에 불과했다. 유권자의 정당 지지 판도에서 이미 열린우리당은 참패한 상태였다.  

열린우리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진보 계층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것도 열린우리당에는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한겨레신문의 정기 이념 조사에 따르면,  주관적인 이념 성향을 진보라고 응답한 국민의 비율이 2002년 5월 25.8%, 2004년 2월 23.5%, 2006년에는  16.4%로 갈수록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 계층의 거품이 붕괴됨과 동시에 보수 계층은 결집해 능동화하고 있다. 진보와 열린우리당이 과연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지 의심을 받게 됐고, 무능하고 교만하며 갈등만을 일으킨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반면, 한나라당은 점차 정권 대안 세력으로 인지되면서 ‘나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느끼는 계층이 능동적으로 형성됐다. 여기에는 뉴라이트 세력을 중심으로 한 보수의 결집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 더구나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은 보수 세력을 결집시키고 친한나라당 부동층을 투표장으로 이끌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첫 번째 실질적 중간 평가

이번 선거가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실질적인 최초의 중간 평가였다는 점도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4년 중임이라 제도 속에서 중간 평가가 가능하지만, 5년 단임제인 한국에서는 총선이나 지방선거로 중간 평가를 하게 된다. 2004년 총선에서는 탄핵 바람으로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평가를 하지 못했다. 3년 만에 이루어진 실질적인 중간 평가에서 분노한 민심이 폭발하면서 열린우리당이 몰매를 맞은 것이다.

한국 유권자들은 대선과 달리 지방선거와 총선에서는 인물(30%)이 아니라 정당(70%)을 보고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다.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이 제시한 ‘이번에는 정권을 심판하고 내년에는 정권을 찾아오자’는 메시지가 부패한 지방권력을 심판하자는 열린우리당의 슬로건을 압도한 것이다. 이러한  ‘묻지마 식 응징 투표’의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공천비리 등의 악재가 나왔어도 한나라당 지지층은 오히려 결집되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반하여,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김한길 의원의 ‘경악할 만한 비리’ 발언, 이원영 의원의 광주사태 발언,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부산 정권 발언, 노혜경 노사모 대표의 성형 발언, 김두관 최고위원의 정동영 의장 사퇴 발언 등 이른바 열린 우리당발 5대 악재는 그나마 남아 있던 우리당 지지층을 이탈시켰다. 

한나라당의 압승은 국민의 마음을 얻었다기보다는 반사이익의 성격이 강하다. 이는 선거 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의 승인으로 노대통령 책임 50%, 열린우리당 책임 30%, 한나라당 기대감 9%라는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만약, 한나라당이 지방선거 승리에 도취되어 변화와 개혁을 거부한 채 대세론에 안주한다면 내년 대선에서 세 번째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유권자들은 지방선거에서는 정당을 보고 투표하지만, 대선에서는 인물이나 미래 비전에 표를 던지는 것이다. 따라서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진정성을 갖고 도덕적 우월주의를 바탕으로 국민을 가르치려고 했던 ‘계도적 민주주의’의 망상과 교만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진화하고 시대정신에 충실한 행보를 한다면 얼마든지 지지층을 재결집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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